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뇨병을 앓고 심장 수술을 받았어도, 달고 짠 음식을 끊지 못했다. 폐암에 걸려 수술을 했어도 담배를 버리지 못했다. 자신을 아프게 한 나쁜 습관을 끝내 끊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진료실에서 만난 또 다른 환자들은 변했다. 혈압약을 먹던 중년 여성은 늘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제 매일 운동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한다. 매일 8 천보를 걷고 있다. 매일 술을 먹으며 비관적으로 살던 남성은 당뇨를 진단받았다. 당뇨약을 먹기 시작하며 음주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당뇨병의 원인이었던 술을 끊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매일 운동하며 식단 조절 중이다. 최근에는 중장비 운전 면허증을 준비 중이다.
변화를 직접 경험한 사람은 바로 나다. 나는 과거 공부하고 일 밖에 몰랐다. 15년간 의사와 환자의 삶을 넘나들며 살아왔지만 나는 건강에는 관심이 없었다. 건강보다는 환자와 질병에만 관심이 많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매일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다. 그래서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변하고, 또 언제 변하는지 나는 이게 너무 궁금했다.
당신은 지금 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있다. 그중 <범이론 모델>은 금연을 돕기 위해 개발된 이론으로 여러 심리학 이론과 건강 행동에 대한 변화를 통합한다. 이 모델에 근거한 변화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숙고 전 : 변화하고 싶지 않다. 변화의 필요성이 없으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2. 숙고 : 변화의 필요성을 알고 변하고 싶어 한다. 6개월 이내에 행동 변화를 고려한다. 하지만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3. 준비 : 드디어 변화하기 위해 결심한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1달 이내에 움직인다.
4. 행동 :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6개월이 넘지 않았다.
5. 유지 : 변화한 행동을 6개월 동안 계속하고 있다.
6. 재발 : 다시 예전 행동으로 돌아갔다.
7. 종결 : 예전 행동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은 변할 때 하나의 단계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다. 순차적으로 이동하거나 빠르게 단계를 넘나들기도 하며, 때로는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1. 숙고 전 단계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건강에 대한 조언을 하면 나타나는 반응이 다양하다. 혈압약을 먹고 있는 환자에게 금연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환자는 내가 그런 뻔한 소리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냐며 화를 냈다. 나는 뻔한 잔소리를 그럴싸하게 하는 게 의사가 하는 일이라며 말하며 진료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건대, 그는 숙고 전 단계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거다.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이 상태에서 건강에 대한 조언은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단계의 환자에게 억지로 조언을 하면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는 단절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제 숙고 전 단계에서는 환자가 원할 때에만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금연을 했을 때의 이득에 대해 더 알고 싶은지 묻는 거다. 만약 환자가 관심이 있다면 그때 대화를 한다. 이 단계에서 변할 의지가 없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2. 숙고
하지만 누군가는 의사의 뻔한 잔소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변하려는 경우도 있다. 이제 막 당뇨를 진단받은 환자에게 금연의 필요성, 당뇨 환자에서 담배를 피우면 심장 혈관 질환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알려주었다. 환자는 흡연이 혈관에 나쁜지 몰랐다며 그 자리에서 금연을 선언했다. 그는 숙고 단계로 변하고 싶어 했다. 6개월 이내에 행동 변화를 고려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 구체적인 방법과 확신이 없다. 만약 이 단계에 있다면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실제 경험담과 근거가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 숙고 단계에서는 다음 단계인 준비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3. 준비
드디어 변화하기 위해 결심한다.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SMART는 specific(구체적), mearsured(측정 가능), achievable(달성 가능), relevant(관련성 있는), time(기간 명시)의 줄임말로 기간을 명시하고 측정가능하며 달성 가능하고 관련성 있는 목표 설정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운동 습관 만들기가 목표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으로 언제까지 할지 현실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매일 식사 후 30분 걷기를 하고 6개월 이내라는 시간도 명시한다.
4. 행동
계획을 실천하고 있지만 아직 6개월이 넘지 않았다. 성공했지만 실패하는 날들도 있다. 운동을 시작했지만 더러 하지 못하는 날들도 있다. 이 단계는 재발에 취약하다. 두 걸음 나가았다가도 한걸음 뒷걸음치기도 한다. 성공에 대한 축하와 실패에 대한 격려가 필요하다.
5. 유지
변하고자 하는 행동을 6개월 이상 반복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재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6. 재발
변화에 장애가 있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가령 운동 습관을 만들던 중 부상으로 운동이 멈추어질 수 있다. 운동하지 않던 과거로 돌아간다.
7. 종결
완전히 변했다. 새로운 습관은 완전히 내 것이 되었다.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변하는 사람은 이렇게 7단계를 거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운동 습관을 만들었던 나 역시 변화의 단계를 거쳤다. 1단계, 숙고 전 단계 -운동이 필요한 건 알지만, 전공의 생활과 출산, 육아에 올인한 시절에는 그럴 만 여유가 전혀 없었다. 운동은 시간과 육체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무려 7년 동안이나 숙고 전 단계에 있었다. 2단계, 숙고 단계 - 드디어 운동의 필요성을 깨닫고 운동이 하고 싶었다. 3단계, 준비 단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하루 중 운동을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 매일 기상 후 10분, 집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홈 트레이닝을 계획했다. 4단계, 행동 - 홈트를 시작했다. 매일 10분이었다. 5단계, 유지- 운동 습관을 유지했다. 계획이 틀어져 운동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7단계, 종결 - 매일 아침마다 운동한 지 수년이 흘렀다. 이제 운동은 완전히 나의 습관이 되었다. 더 이상 운동은 나의 새해 다짐이 아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뭔가 찜찜하다. 운동을 하지 않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6단계, 재발 - 몸이 아플 때에는 잠시 운동을 멈추기도 했다.
삶이 변화하는 계기 = 만남과 경험, 목적
평생 동안 한 단계에 머무르는 사람들도 많다.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다시 이전 단계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기 어려운 거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또한 변화다. 사람은 동기가 있을 때 움직인다. 사람이 변할 때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나는 만남과 경험, 목적이 그 계기가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
1. 타인을 통해 간접 경험 할 때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이 아플 때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돌연사, 암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이야기가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여기에는 문학이나 대중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도 포함된다.
2. 새로운 질병을 만나 직접 경험할 때
새로운 질병을 진단받았을 때에도 변할 수 있다. 건강한 줄만 알았던 자신에게 찾아온 어떤 질병, 질병과 죽음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을 때 그들을 변하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행동에 나섰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알듯이 건강을 잃어본 경험이 전에 없던 행동을 하게 하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한다
3. 목적을 만날 때
앞서 이야기한 직접, 간접 경험을 모두 겪었다. 병원에서 일하며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고 다양한 질병을 간접 경험했다. 환자들의 죽음과 질병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환자가 되어 질병을 진단받기도 했다. 하지만 질병을 진단받고 딱 1달까지만 충격이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모두 나를 건강한 삶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건강한 삶에 관심이 없던 내가 변한 건 딸아이를 출산하고 나서였다. 아이를 낳은 순간 계기가 생겼다. 나를 닮은 딸이 클 때까지 조금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기로 했다. 공부하고 일 밖에 모르던 내가 건강을 최우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목적을 만났기 때문이다.
경험은 확신을 심어준다. 내가 변한 경험으로.그래서 나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만남과 경험,목적이 있다면 변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만약 삶에 변화가 없다면 나는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지 확인하고 볼 일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건 삶의 계기다. 만남, 경험, 목적이 변화의 씨앗이 되어준다. 이 글과의 만남이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되어 준다면 영광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