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얘기는 지루한 걸까. 난 아니던데.
크리에이터 미팅이 있던 날.
같이 뭘 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취향’에 대해 표현하는 사람들 얘기가 나왔고,
그 방향을 제안했다.
나름 괜찮은 분위기. 상대방도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옆 자리 대표님의 코멘트
“난 플랫폼에서 취향 얘기 나오면 바로 지루하던데”
뭐야, 이거 팀킬인가.
‘대표님께서 모범사례로 말씀하신 분들 모두
취향 얘기 하다가 빵 터지신 분들인 걸요..‘
취향.
사전적 의미로는 ‘마음이 가는 길’이다.
마음이 가야 하기에 순간적일 수도 있지만
길을 트기 위해서는 이미 걸어간 사람들이 많거나,
스스로 많이 걸어봐야 한다.
결국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다는 것.
때때로 이를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절제된 어휘력도 필요하다.
내 취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물건은 신발이다.
신발을 수없이 사보고, 신어보고,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최전선에서
메인 아이템을 다루는 마케팅도 해봤다.
임원 면접에서 받은 질문은 나의 ‘취향’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경험이 쌓이면 선택의 순간에서
나름의 기준이라는 게 생긴다.
‘이쯤 되면 ok, 남들은 좋다지만 나는 별로.’ 같은
판단의 기준들.
유행하는 것,
셀럽과 콜라보한 것,
한정판으로 발매된 것,
전 세계에 몇 족 없는 것.
수백 가지 수식어가 붙는 것이라 해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그 취향이 잘 맞는 사람들의 기회를 뺏는 격이기도 하고, 굳이 사봤자 쓰지 않을 걸 알기도 하고.
그래서 적당히 사기 쉬운 것들 중에
내 취향에 잘 맞는 것을 주로 이용한다.
신발, 옷, 가방, 전자기기 모두.
취향을 다듬고 표현하다 보면
그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공감은 곧 응집력.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어서
금방 ‘팀’을 구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적당한 운도 따라야 하지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일을 같이 하는 건
팔 할이 서로의 취향이 맞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음식 취향이 잘 맞는 건 진짜 복이다.
수십 년간 쌓인 가족들의 데이터가
서로 맞는다는 것.
공간을 가꾸는 취향도 잘 맞으면 좋지 않을까.
가장 편하게 있어야 하는 장소들을
서로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일.
카테고리를 떠나서,
취향 얘기가 지루하지 않으려면
표현하는 방식이 재밌어야 하는 것 같다.
글, 특히 긴 호흡의 글.
쇼츠에 절여져 버린 요즘 시대에 참 어렵다.
노력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직접 확인하는 데이터들 상에서는 그렇다.
그만큼 편집의 역할이 중요하고,
시각적인 콘텐츠가 꼭 필요하다.
당장에 이 사진도 그렇다.
대학 컬러가 주제인데,
매치하는 브랜드와 아웃핏 모두
저마다의 취향이 있을 것이다.
해당 매체가 전하는 메시지에 맞는 룩을 보여주고,
취향이 같은 사람들은 여기에 공감하고.
콘텐츠가 팬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똑같은 레인 자켓을 입어도
누군가는 아웃도어 스타일로,
누군가는 사진처럼 캐쥬얼 아우터로 입는다.
브랜드에 대한,
스타일에 대한 취향도 모두 다르기에
같은 취향을 공유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팬이 된다.
우리 집에는 액자가 하나 있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스위스에서
취리히 국립 박물관에서 사 온 포스터.
사이즈, 색, 가격 모두 제 취향에 잘 맞았는데
아내와도 취향이 맞아 구매까지 했다.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고, 취향을 나눈다.
그리고 방 안에는 내 취향의 포스터가 하나 더.
사람의 결과 브랜드의 결이 같으니
자연스레 그 브랜드에 마음이 간다.
브랜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포스터에 담았고.
취향 얘기.
정말 지루하기만 한 걸까.
요즘에는 표현 방식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한다.
방식에 따라 올드하고 지루할 수도,
신선하고 재밌어서 팔로하고 계속 볼 수도 있다.
장수하는 브랜드,
사랑받는 브랜드를 자세히 살펴보면
고객들과 취향을 나눈 곳들이 굉장히 많다.
나이키는 스포츠를,
뉴발란스는 착화감을,
마르지엘라는 해체와 창조를,
포터는 장인정신을,
어웨이는 기다림을.
끝도 없다. 취향 중심의 소통이 이어진 곳들은.
지내온 시간, 과거의 영광에 갇혀 지내지 않도록
계속해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다녀야겠다.
적어도 지금의 분야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