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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Oct 02. 2024

가불해 주세요.

읊조린 문단 속 자조 섞인 유머 한 문장. 

피식, 결국 웃고야 만다. 그의 수싸움에 또 지고 말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마지막 유언에도 위트를 남겨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빽빽한 삶 속에 잠시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쉼표 같은 유머 한 스푼.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어디서 살 수 있는데, 얼마면 되는데?


아이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유산을 생각해 보니, 그건 바로 '쉼표'였다. 아이가 살아갈 다소 뻑뻑한 삶에 물 한 모금 같은 '쉼'이 함께 하길 바란다. 그것은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나 오케스트라 공연, 미술 전시회가 될 수도 있고 숨이 차도록 운동한 뒤, 목구멍 따끔하게 내려가는 맥주 한 잔이 될 수도 있겠다. 휴가지에서 고요히 즐기는 독서면 더할 나위 없겠고. 무엇이 되었든 자기만의 탈출구로 스트레스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삶이 녹록지 않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잠시 정차할 수 있는 단호함과 용기,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남편의 모습 중 가장 부럽고 존경하는 점은 여유다. 나이 차에서 오는 연륜일 수도 있겠지만, 큰일을 겪어 본 사람으로서 웬만한 일에는 크게 동요치 않는다. 데면데면한 느낌도 아니다. 나보다 인생을 몇 해 더 살아본 경력자의 널찍한 숨구멍 같달까.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그의 몸을 거치면 다르다. 속 시끄러운 감정이 '그'라는 여과장치를 통과해 걸러진다. 예민하게 생각하면 결국 손해 보는 당사자는 우리가 되므로 넘길 수 있는 건 자체 필터링을 거치는 무심한 지혜가 지독히도 부럽다.




가정문화를 떠올린다. 

기질, 선척적과 후천적, 유전과 환경. 

유머와 여유는 타고나는 것일까, 습득되는 것일까. 


그가 자란 환경을 되짚어보자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와 지적인 강원도 아가씨가 만나 연고 없는 부산에 터를 잡고 가정을 꾸렸다. 준비해 온 혼수가 다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집이라 새색시의 살림살이는 집 안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의 성실함으로 두 아들을 뒷바라지한 젊은 새댁은 어느덧 지조 있고 격식 있는 안주인이 되었지만, 여유가 들어올 자리는 턱 없이 비좁았을 터. 하지만 그녀에겐 유년 시절 문화가 몸속 곳곳에 남아 흐르고 있었다. 

서울 캠퍼스의 낭만과 지적 호기심을 탐구한 그녀는 자식에게도 삶의 여유를 전수하고 싶었다. 힘든 살림 속에서도 스포츠와 악기, 건강한 식단을 챙기며 심신이 조화로운 삶이 되도록 지휘했다. 여기까지다. 그와 내가 자라온 환경의 다른 점이.


네 남매 속에서 자기 지분 차치하며 자란 난 여유롭지 못했다. 친정엄마는 월급봉투의 속절없는 두께에 셌던 돈을 세고 또 셌었다. 마치 세다 보면 누락된 지폐 한 장이 생길 것처럼 손에 침 묻히며 정직하게 돈을 셌다. 친정집은 유머는 고사하고 가을 아침 햇살의 여유조차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 시절 남편들은 기계처럼 직장을 다녔다 보니, 홀로 자식을 키운 엄마의 하루는 버티기에 급급했다. 그저 아이들 밥 굶기지 않고, 다니고 싶다는 학원 한 개씩은 들려 보내고 위인전과 과학 전집 한 질씩은 구비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위안 되는 삶이었기에.



어른이 된 내가 꾸린 가정은 어떨까.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숫자는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빠듯하게 자식들을 키우며 엇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원가족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 해도 배운 게 그것이라, 습득된 가정문화를 나도 모르게 전수하는 것은 아닐지. 그 시절보다 많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해도 이건 의식적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각자의 어린 시절을 복기하며 우리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문화를 생각하고, 서로의 생각이 맞는 부분을 가치관으로 삼아 자식을 키우고 있다. 정말 마른 수건을 짜내듯 엄마 아빠의 노력이 절절하게 들어가 있다 보니 지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자주 몸을 일으키고, 자연으로, 책 속으로, 많은 경험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는 것은 그들의 삶에 바람과 햇살, 하늘이 들어올 틈이 있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비록 뛰어난 유머 감각은 물려주지 못했지만, 너희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이건 참 고마웠다' 싶은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부모인 우리도 너희와 함께여서 참 행복했다고. 같은 하늘과 별과 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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