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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Dec 11. 2024

입학준비물은 타이레놀

입학통지서가 날아올 시기다. 각종 방학 특강을 앞둔 학원의 알림이 속출하고, 레벨테스트를 앞두고 아이 컨디션 조절하는 집들이 수두룩하다. 시국이 혼란함 속에 엄마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달력의 날짜를 노려보고 있다. 

방학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매체는 각종 파업을 전달하고 있다. 학교급식 파업, 지하철 파업,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까지 일상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었나. 어수선한 시국 속에 가정의 하루를 건사하기 위해서 오늘도 많은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두통을 달고 사는데 이쯤 되면 아프기 전에 미리 타이레놀을 상비해 둬야 한다. 언제 어디서 조용한 머릿속 시곗바늘이 터질지 모르기에 손이 닿을 근거리에 알약 하나는 있어야 안심이 된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머리가 답답한 거 있죠?"


교문 앞, 아이를 기다리며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패딩 무리는 하나같이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보내고 3시간 남짓,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 먹은 설거지나 청소기 한 번 돌렸을 뿐, 건설적인 시간을 보낸 것도, 그렇다고 드라마에 몰입하며 정신없이 빠져든 것도 아닌 이 어정쩡한 시간, 그녀들은 과연 무엇을 한 걸까. 


"수학..... 영어......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어요."


6학년과 1학년을 키우는 남매 맘에 따르면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구멍이 아닌 게 없단다. 중학년까지 집 공부를 시키다가 이제는 학원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시키는데 매달 학원비는 나가면서 좀처럼 구멍은 메꿔지지 않으니 이런 비효율이 따로 없단다. 차라리 한 달 살기를 했거나 원 없이 놀고 싶다는 대로 놀았으면 후회는 없겠다. 학교 수업 열심히 받고, 꼬박꼬박 국영수 학원 다니고, 운동 갔다가 집에 와서 숙제하는 등 야근하는 직장인이 따로 없이 살았는데 지난 13년이 야속하기만 하단다. 

어린 둘째는 제 속도에 맞춰 학교 수업 따라가며 밝고 예의 바른 어린이로 키우고 있는데 가는 학원마다 조용한 독침을 날려 엄마 마음에 치료가 시급해 보였다. 


"지금까지 뭐 했냐 하는 반응이더라고요. 자기가 가르치는 거 잘 받아먹을 수 있게 집에서 준비해 주셨어야 한다, 이 말이더라고요."


주변 예를 들며 '공부는 잘하지만 약은 아이' '잘하고 빠른 아이' 등, 그룹 수업을 같이 하는 아이들의 수업 태도 및 속도를 얘기하셨단다. 돌려까기 당한 아이의 엄마는 집에서 한숨과 함께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뿐이다. 

©unsplash


"결국 다 같이 만나는 건데. 이렇게 어려서부터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모르는 애를 몇 회독씩 돌리는 게 정상인가요?"


몇 바퀴씩 돌리면 결국 아이는 이해한다며, 이제 갓 1년 학교생활을 한 아이들에게 두터운 단어집을 들이밀고 있었다. 한글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각종 비문학 단어를 외우는 아이를 보고 자꾸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게 지금의 속도인 건가 갸우뚱 하고 있었다. 대치동의 선행 속도에 비하면 이건 한낱 예습에 불과하지만 아이의 속도를 학원이 맞춘 커리큘럼에 넣어 따라가는 것이 맞는지, 자꾸만 물음표가 었다. 하지만 넣은 사교육의 세계는 빼는 순간 모든 것이 나락으로 것만 같은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 속에서도 많은 학부모가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누구보다 내 아이의 속도를 위해주고, 지식의 배움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이 바로 잡히길 바라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교육 유튜브를 들으며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자리에 앉아 메모하고, 빨래를 개다가도 '이럴 정신이 있나' 집에 쌓아뒀던 문제집을 다시 꺼내 들춰본다. 먼지의 두께가 문제집의 두께를 능가하기 전에 스케줄을 짜본다. 영어는 4개 영역을 골고루 시키기 위해 원서 읽기와 온라인도서관, 화상영어를 알아보고 맘까페에 들려 학원 정보를 추려본다. 

수학은 기본 2년 선행은 돼야 공부에 대한 예의라는데, 정작 단원평가 100점은 어느 집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개월마다 한 학기 진도가 나가며 테스트를 통해 반이 바뀌니, 친구와 같은 수업을 듣다가도 이내 빈자리를 마주해야 한다. 같은 학원은 다닐 수 있지만 결코 같은 반은 될 수 없는 공부의 세계는 친구의 성적이 늘 궁금하고, 나란 아이의 이름은 점수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학원 선생님의 문자가 왔다. 오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남아서 마저 공부하고 와야 한단다. 

학원에서 알아서 공부를 시킨다니 감사하면서도 또 통과하지 못한 아이는 대체 공부할 의지가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은 있는지 모르겠다. 해마다 원비는 오르는 실정에 다 때려치고 집 공부를 할까 하는데, 지금 중학 입시를 앞두고 모험 수를 두는 건 아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국 타이레놀 한 알만 삼켜본다. 




주변 엄마들의 하소연을 글로 각색해 풀어봤다.

수많은 집들이 앓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타들어 가는 열기로 보일러가 필요 없을 지경이다. 무엇하나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 딱히 해결책이 없는 지끈거림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아이의 정서와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곤 하지만 이러다간 천진난만한 탈락자가 되는 건 아닌지. 나 역시 그들의 현실적 고민에 깊은 공감을 하며 한 손으론 부지런히 우리 집 비상 약통을 뒤지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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