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그리고 다시 북미로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제 한 달, 비용 정산은 일찌감치 해 놨는데 아직 노트북을 켜는 게 썩 내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여행 속으로 다시 빠지기 싫어서인지 글쓰기를 미뤄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을 정말 마무리할 시간. 남미를 아래로 훑고 다시 중미인 쿠바로 올라와 지난겨울 추워서 못 간 캐나다 그리고 미국으로의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
누가 남미가 저렴하다고 했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미의 랜드마크를 가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가기보다는 투어를 이용해야 조금 더 가까이 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4분기 90일 동안 쓴 비용은 약 2,000만 원이다. 8개국, 19개의 도시를 다녔다.
이전 정산(1/4분기 유럽 정산기, 2/4분기 중남미 정산기)과 마찬가지로 이동비용은 도착하는 곳 기준으로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포틀랜드로 이동했을 경우, 그 비용은 미국 비용으로 책정했다.
지인들의 후원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행경비가 상당히 초과되었다. 결국 마지막엔 2번의 항공 마일리지(아르헨티나-쿠바, 시애틀-한국)와 가족 찬스로 오빠에게 목돈을 빌려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 남미 체감물가 상위 Best 3 :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 아르헨티나 > 칠레
[동물들에겐 천국이지만, 여행자에겐 두려운 갈라파고스]
에콰도르는 사실 그리 비싼 나라가 아니다. 수도인 키토나 레포츠의 천국 바뇨스만 해도 충분히 저렴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바로 갈라파고스다. 몇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자국 항공사만 취항을 하기 때문에 내국인에겐 자비롭지만, 외국인에겐 한 없이 불친절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갈라파고스를 출발하기 전 20 달러의 추가 비용을 공항에서 지불해야 하고, 갈라파고스 섬에 도착해서는 입도 비 항목으로 100 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 항공권까지 포함하면 여행 시작부터 백만 원은 훌쩍 쓰게 된다. (2인 기준)
섬 내부의 물가도 비싸긴 마찬가지. 식료품은 물론이고 선크림 등의 공산품 물가는 모로코보다도 비싸다. 먹고, 자는 것만 해도 미국 뺨치게 비싼 이곳에서 노는 것은 더 비싸다. 섬이다 보니 즐길 수 있는 건 무조건 물놀이! 배를 타고 나가지 않고 도보로 즐길 수 있는 해변도 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갔다면 섬 투어 정도는 해 줘야 예의지 않겠는가. 하루 다이빙과 하루 스노클링을 깎고, 깎아 33만 원(2인)에 했다.
비용 대비 만족도를 따진다면 별 네 개 정도 되시겠다. 바다사자, 거북이, 이구아나, 부비새 등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기존의 여행작가들이 너무 ‘환상의 섬’이라고 포장해 놔서 그에 대한 실망도 못지않게 크다.
2. 남미 체감물가 하위 Best 3 : 쿠바 > 콜롬비아 > 볼리비아
[쿠바는 사기꾼의 나라가 아니다]
쿠바에는 두 가지 화폐가 존재한다. 내국인용 CUP와 외국인용 CUC. 나도 항상 헷갈리기 때문에 그냥 쿠바 페소와 외국인 페소로 쓰겠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다. 때문에 사람들의 소득이 높지 않고, 서민들의 생활을 위해 별도로 쿠바 페소가 존재한다.
1 외국인 페소 (대략 1 USD) = 24 쿠바 페소의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길에서 핫도그와 콜라 하나를 쿠바 페소로 살 경우 20페소로살 수 있다. 대략 0.83 외국인 페소가 된다. 그럼 천 원 정도의 가격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걸 외국인 페소로 산다면 3천 원~4천 원 정도의 가격으로 사야 한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쿠바 페소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환전소에서 편하게 환전도 할 수 있고, 동네에서 쿠바 페소로 뭐든 살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인이 가는 관광지는 가격을 외국인 화폐로 받으며, 메뉴판 또한 외국인 화폐로 표시되어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예로 들자면 현지인에게 10 쿠바 페소인 것이, 외국인에게는 10 외국인 페소로 적용된다.
이런 것에 대해 쿠바 페소로 먹으면 싸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운다고 할 수 있을까? 여행자가 현지 사람의 혜택을 누리겠다는 건 놀부 심보나 다름없다. 물론 돈 없는 배낭여행자에게는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 어느 부분에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남의 것을 자기가 누리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여행자들이 이런 이유로 쿠바를 싫어한다. 하지만 쿠바는 정말 매력적이고, 저렴하며, 생각보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쿠바를 오해하지 말기를.
3. 기념품은 페루 쿠스코와 미국 포틀랜드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쇼핑 본능을 깨운곳은 영국 런던과 미국 포틀랜드 딱 두 곳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페루 쿠스코까지. 앞의 두 곳은 퀄리티면에서 그리고 다양한 상품을 볼 수 있는 매력이 있고, 쿠스코는 남미 중에 가장 싸게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똑같은 기념품들을 보게 된다. 알파카인 듯 야마인 듯 비슷한 모양의 열쇠고리와 털모자, 스웨터 등이 그것이다. 야마 열쇠고리가 페루에서는 1 Sol (360원), 볼리비아에서는 5 Bob(830원)이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비싸다. 스웨터의 경우에도 페루에서는 2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는데, 내려가면 3만 원 이상이 된다. 아르헨티나나 칠레의 물가는 페루, 볼리비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기념품 품질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우리가 경주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은 물건들이 있을 뿐이다. 가짓수는 많은데 예쁘지도 않고, 갖고 싶지도 않은 것들 말이다.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나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 같은 유명 관광지도 마찬가지다. 정말 예쁜 엽서 한 장이 없어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포틀랜드는 다르다. 아기자기한 작은 샵들이 많고, 아티스트 작품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어 사고 싶은 엽서도 많고, 스티커도 예쁘고, 장식품도 너무나 갖고 싶게 만들어 놨다. 물론 그중에 산 건 엽서 한 세트뿐이지만 말이다. 직항이 없기 때문에 포틀랜드 만 가기는 번거롭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 서부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가기를 추천한다. 무엇보다 맥주가 환상적으로 맛있고, 미국 식당답지 않게 음식도 엄청 맛있다.
총 9개월 경비를 정리해 보니 약 5,500만 원이 들었다. 관광, 교통, 숙박, 식대 모두 비슷하게 1,000만 원 근처로 사용했는데 이 중 가장 많이 쓴 것은 역시나 교통비다. 아마 우리가 마일리지로 두 번 이동하지 않았다면 그 비용은 2,000만 원 정도가 됐을 것이다. 장거리 이동에 버스를 탔다면 경비가 더 많이 절약됐겠지만 그랬다면 9개월 안에 이 여행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몸도 상당히 축나고-
270일간의 우리 여행은 지난 4월 끝이 났다. 인터뷰를 하며 다니느라 여행기도 많이 남기지 못했고, 여유로운 여행을 하지도 못했지만 계획했던 ‘장기여행’을 끝냈다는 마음이 후련하다. 그리고 우리에겐 2차 여행이 남았기에 다시 여행자의 신분으로 돌아간다는 기대감도 있어 여행은 끝났지만 아쉬움이 그리 크게 남지 않는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게 될 하반기 2차 여행, 4/4분기 경비 정리는 연말쯤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