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떠났지만, 나는 남아서 쓰는 출간 후기
'세계여행을 떠날거야'라며 원대한 포부를 밝혔던 시절이 있었다. 2년 쯤 그렇게 말만하고 다녔을까.
주변 사람들은 '너라면 진짜 갈 것 같다'며 나의 여행을, 우리의 여행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계획부터 실행까지 3년이 되는 동안 남편은 기자로서의 커리어가 끊길지도 모를 큰 도전으로 이직을 했고, 나 또한 한량처럼 일하고자 했던 유약한 마음을 접고 쉬지않고 프로젝트를 맡아 여행자금을 마련했다.
통장에 돈이 모이고, 조금씩 여행에 대한 계획이 선명해 지자 우리는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어떤 여행을, 어디로, 어떻게 떠날까?
장기간 한국을 떠난다는 것,
그 기간동안 일을 접는다는 것,
그리고 소득 없이 돈만 쓴다는 것.
어찌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이런 것들을 감수하며 '세계여행'이라는 말로 퉁칠 수 있으려면, '그냥 세계여행'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더 있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틈만 나면 여행 주제에 대해 얘기했지만 안타깝게도 컨셉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음악이라고는 화이트노이즈처럼 재즈 어플을 종일 틀고, 요리는 여느 신혼부부처럼 레시피보면서 따라하기 바쁘고, 스포츠는 월드컵 정도는 되야 관심을 갖고, 둘 다 없이 자라 투자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멋진 취미하나 갖지 못하고 살았기에 대중적으로 혹은 매니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우리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랑 동갑인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아 볼까?"
"외국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물어볼까?"
이런 대화가 이어지다 어느 날 잠들기 전 남편이 말했다.
이민 간 사람들을 만나볼까?
이민 간 사람들은 뭐 해먹고 살아가는지, 정말 궁금했다. 정신 없이 노느라 대학시절을 훌훌 날려버리고, 하고 싶은 일 찾겠다고 여기저기 회사를 옮겨다니며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워홀을 갔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후회를 마음 한 곳에 우겨 넣고 살던 터였다.
그래서 우린 한국을 떠났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인터뷰를 한 후에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 수도 있고, 정말 떠난다면 현재시점에서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이민을 떠난지 얼마 안된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찾았다. 우려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신청해 줬고, 다들 호의적으로 대해 줬다. 인터뷰이 신청을 받으며 청년들이 정말 세계 곳곳에서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라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인터뷰는 유럽에서 시작됐다. 한 번 인터뷰가 시작되자 우리의 여행은 인터뷰여행이 됐다. 처음부터 큰 방향만 정했을 뿐 구체적인 루트가 없었기에 여행 경로는 당연히 인터뷰를 따라 결정 됐다. 인터뷰를 하고, 빨리 글을 올려야겠다는 마음에 유럽에서는 삼시세끼 미트볼을 먹으며 종일 이케아에서 원고를 쓰는 날도 적지 않았다.
기대가 많았던 유럽, 제일 궁금했던 캐나다, 인터뷰이 찾기 어려웠던 미국, 기대하지 않았던 남미와 한국을 돌아왔다 다시 떠났던 호주 그리고 한국에서 만났던 인터뷰까지. 그렇게 우린 10개월의 여행기간 동안서른팀을 넘게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그 결과물이 2년만에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국경까지 갔다가 취소된 인터뷰
-좋은 마음으로 인터뷰 했다가 한국 사람들의 무례함에 인터뷰이를 힘들게 했던 일
-자신감 넘치게 인터뷰 했는데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인터뷰이
-원고 다 써서 보냈는데 소개하지 말라던 인터뷰이
이런 몇 가지 속상했던 에피소드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도와주신 분들이 더 많았기에 예쁜 모습으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우리 글이 포털에 노출 될 때 마다 '이민 조장글이다', '한국이 더 좋다', '나이들면 향수병 걸린다', '군대는 갔다왔냐', '불효자다' 등 달렸던 댓글들이 신경이 안 쓰였다면 거짓말이다. 사실 댓글은 우리보다 인터뷰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내용이 많았기에 노출이 되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이 프로젝트를 이어갔던 이유는 사람들이 단순히 '한국에서의 삶이 팍팍하니까 나도 좀 나가볼까'하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뭘까,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급격한 경제발전 때문에 '내 자식은 고생시키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키운 우리 부모세대의 그늘에 가려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자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직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시대의 불행에 맞물려 새로운 꿈을 꾸기 어려운 후배들에게 조금 다른 세상이 있다고 내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그 흔한 차도, 전세집하나도 없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닿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쨋든 책이 나왔고,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러니 여러분, 책 좀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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