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책 리뷰 -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3. 정당한 자기 망각
‘나도 그랬다. 컴퓨터 앞에 앉아 동이 틀 때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글줄을 뽑아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다음에 술 마시는 행위를 즐겼다. 신문 위에 피와 땀을 쏟아붓고 나면, 술 마실 자격을 얻었다. 그래서 늦은 오후에 느껴지는 긴장과 불안, 모든 세포가 일어서서 술 한 잔을 부르짖는 것 같은 느낌은 이유가 있고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그것은 하루 분량의 에너지를 소비한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렇게 술 마시는 일은 정당화되었다.’
요즘 시대에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8시간 동안 피와 땀을 각자의 업무에 쏟아붓는다. 월급을 위한 희생으로 오늘 하루 에너지를 완전히 소비한 우리가 술을 마시는 건 정당하다. 인간답지 않은 삶이 당연한 사회는 어떠한가. 혼밥과 혼술이 당연해졌다. 더는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찰나의 순간 느끼는 찌릿한 외로움. 열심히 살기 위해, 혹은 관계로부터 숨어버리기 위해, 각자의 이유로 혼자라는 자유로움을 너무 많이 즐기고 있다. 외로움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건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술이 훌륭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정당하다.
‘알코올은 우리에게 보호막을 둘러쳐서 자기 발견의 고통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준다. 그 보호막은 극도의 안온감을 주지만 극도로 교활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허상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허상이면서도 진정한 실체처럼 간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캐롤라인은 중요한 부분을 찌른다. 술은 우리에게 편안한 보호막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술에 취해있는 몇 시간 동안 행복해질 수 있지만 결국 술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는다. 절망적인 현실을 아침에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크게 괴로운 일이다. 이런 생활은 아침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기 전 모든 상황을 절망적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소용돌이에 갇혀 구조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업무 시간이 지나면 구조대가 오리라. 나만의 편안한 둥지에서 나를 보호해줄 술을 홀짝거릴 수 있는 시간이 오리라.’
‘편안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소심함이나 두려움,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좀 더 깊고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방정식은 더욱 강력하고 완전한 내용으로 바뀐다. ‘고통+술 = 자기 망각’이라는.’
4. 관계 거부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은 이제 자주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에 속한다. 자기혐오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부모, 사회의 교육 아래 유망했던 아이는 겸손을 배운다. 공부를 잘했지만 언제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존감을 느꼈다. 심지어 이런 방식으로 자존감을 느끼는 것이 더 고급스럽고 어른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성인이 된 유망한 아이는 생각만큼 자신이 사회에서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몸에 새겨진 겸손한 태도는 여전하나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존감 하락은 물론 자기혐오에 치닫는다. 이러한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다가오길 바라면서도 무능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친밀한 관계를 고통 속에서 거부한다.
‘당신이 만약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한다면, 자신은 그런 관계를 맺을 자격이 없다거나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그것을 원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알코올은 당신에게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알코올이 그런 오만 가지 갈등을 녹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밀한 관계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당신의 마음을 힘 있게 긍정해준다. 인생? 받아들이자. 깊은 유대감? 받아들이자. 어루만짐도, 위로도, 사랑도 모두 받아들이자.’
술을 마셔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술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자연스럽게 행해졌어야 할 사랑도, 위로도 가능하게 해 준다. 방식이 술이면 어떠한가? 우리가 원하던 것이 술을 마시면 이루어진다는데.
5. 마무리
리뷰를 쓰면서 저자 캐롤라인 냅이 그랬던 것처럼 술을 마시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끝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술을 마시고 있다. 이 책은 이 정도로 자기 편향적으로 읽히도록 구성되어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술의 매력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앞부분이 마음을 찢고 들어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앞부분은 술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정도로 그치고 뒷부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알코올 없는 삶이 역시 좋은 삶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것이다. 내가 앞부분에 대한 리뷰를 한 것만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술을 정말 좋아하게 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너무 이 책을 술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책의 백미는 저자의 심리묘사와 통찰에 있다. 에세이지만 드라마에 가까운 이 에세이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기자이자, 매력적인 여성, 성공한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한 사람의 인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책 <명랑한 은둔자> 역시 즐겁게 보았지만, 이 책이 나에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