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후회는 예측에서 시작했다.
느낌이 오곤 했다.
‘이 사람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아.’
‘이 사람은 무언가 숨기고 있어.’
‘이 사람을 가까이 두면 인생이 꼬일 것 같아.’
좋지 않은 결과가 느껴졌다. 항상 좋지 않은 것만 느낀다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 딱 좋은 사고방식이다. 오랫동안 내 감각을 믿는 것보단 ‘좋게 생각하는 게 나에게 좋을 거야.’라는 낙천적인 기대감으로 나를 설득하곤 했다. 많은 자기 계발서도 낙천적인 생각을 더 좋은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열두 살부터 대부분의 선택을 스스로 판단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과 약간 다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옳다는 굳은 생각과 자존심으로 꽤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내렸다. 판단은 나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었고 그 때문에 상당히 자존심이 강했던 것 같다.(지금도 그 자존심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내가 그 당시 알지 못했던 건 그 판단이 사회적인 통념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판단이었기 때문에 틀리더라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나는 공부를 ‘내 방식’대로 하고 싶어 했는데 그 방식이 어떻든 간에 나는 ‘공부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맞는, 그러니까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결과를 가져올 만한 범주 내에서 내 멋대로 선택했던 거다.
사회적인 통념에서 크게 떨어진 판단(좋지 않은 결과를 느꼈지만 무시하고 내린 판단 중에서)을 하더라도 좋지 않은 결과는 부모의 울타리에 박혀 제대로 그 결과를 느낄 수 없었다. 부모의 울타리는 생각보다 높고 튼튼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울타리에서 벗어난 스물넷부터 스물아홉 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 예견을 무시했을 때 나에게 어떤 시간이 주어지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그 감각’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고 나서야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나에겐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알아차리는 감각이 있다.’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알아차리는 감각’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감각이었다. 감각을 믿었기에 감각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 시작했고, 그런 근거들이 모여 논리가 되어 주었다. 논리를 근거로 자신감 있는 주장을 할 수 있었고 이건 꽤나 나를 날카롭게 보이게 했다. 그건 직장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감각이었다. 다행히 겁이 엄청 많아진 건 아니라서 내 감각으로 느낄 수 없다면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런 행동은 괜찮은 확률로 좋은 성과를 가져왔고 굉장한 실패를 가져다 주진 않았다. 엄청난 실패를 하지 않는다는 건 회사에서 먹히는 능력이다. 다만 정말 중요한 것에 문제가 생겼다.
감각을 믿으면서 사람에 대한 예측은 더욱 확고해졌다. 사람은 관계를 교류하면서 예측할 만한 요소들을 계속 던져준다. 예측할 만한 감각을 깨우기 쉬웠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그 사람이 던져주는 요소들을 통해 예측하기 시작했고 그 예측의 끝은 언제나 그 사람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완벽한 사랑을 찾는 나에게 사랑을 시작하는 일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어려워졌다.
‘저 사람은 참 좋은데 사랑하기 시작하면 힘들어질 거야. 나도 그 사람도.’
여기에는 꽤 괜찮은 근거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 좋은데 모든 것으로부터(좋든 나쁘든) 조금씩 회피하는 행동을 보인다.* 이건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열기 굉장히 어렵다는 걸 시사했다. 설령 만나더라도 꾸준히 상대방의 '도망침'을 꾸준히 따라가며 내가 이해한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하는 어려운 사랑임을 예측하게 한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끝까지 회피적인 성향을 가지고 살아 가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굳어 있으면서 변화하는 생물이다. 주변 사람들의 말, 나의 행동, 피치 못할 여건들, 본인의 생각에 의해 바뀐다. 다만 1, 2년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다만 그 1, 2년 때문에. 그 1, 2년 버티는 걸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어떤 사랑도 시작할 수 없었다. 내가 버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나를 믿어준 그 사람에게 나는 굉장히 나쁜 사람이 될 것이고 나는 자책감에 빠져 살게 될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끝이 보였다.
그래도 시작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어쩌면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데, 내가 내 생각보다 꽤 강인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시작하지도 못한 걸 후회한다. 내가 예측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그렇게 단정 짓지 않았다면, 더 큰 마음으로 그 사람을 이해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잘난 사람처럼 예측하고 시작도 하지 않은 걸 계속 후회한다.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알아차리는 감각’을 이용해 스스로를 ‘외로운 안전지대’로 밀어 넣는 것 같아 부끄럽다. 그만 느끼고 싶지만 이제 ‘그 감각’은 내 숨과 붙어있는 듯하다.
*회피적인 성향은 내가 갖고 있는 성향이다. 이 성향을 형성하는데 ‘그 감각’이 크게 일조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