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반항적으로, 밀당하듯
헤세는 데미안의 첫 등장부터 그를 보통 사람과 다르게 표현한다. '데미안은 소년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 소년이다. 그는 심지어 어른보다 성숙해 보인다.' 헤세는 소년 데미안을 '낯선 신사'로 묘사한다.
첫인상은 굉장히 중요하다.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난 수많은 매력적인 사람들을 봤고 그들은 흔히 잘생겼거나 예쁘다고 묘사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첫인상은 취향, 성격을 반영한다. 입은 옷에서 드러나는 취향. 얼굴, 표정에서 유추할 수 있는 성격. 이 모든 과정은 본능적이다. 보통 사람과 다른 취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첫 만남에서. 그게 관심은 아닐지라도.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에 대한 권위자(선생님)의 해석을 뒤집는다. 멍청한 어른, 뛰어난 아이라는 진부한 설정은 오랫동안 있었다. ‘나 홀로 집에’가 대표적이다. 멍청한 아저씨 둘을 때려잡는 맥컬리 컬킨도 비범하지만 ‘데미안’은 그것과 다른 차원에 있다. 뛰어난 어른도 미치지 못할 범접할 수 없는 아이. 데미안은 비범하다.
'카인과 아벨'은 구약 성경 창세기에 수록된 이야기. 카인은 사람이 낳은 최초의 사람. 아벨은 최초로 사망한 사람.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써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다. 하느님은 그 벌로 카인을 영원한 유랑 생활에 몰아넣고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했다. 이때 카인은 추방되면서 하느님에게 '카인의 표식'을 받는다.
- 위키 백과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학교 선생님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헤세는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아마, 살인에 대한 비난과 그 비겁함에 대한 설명. 살인을 하게 되면 카인처럼 이마에 무시무시한 표식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고루하고 교훈적인 이야기. 이 정도였을 것이다.
이제 데미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카인이나 그의 이마에 찍힌 표식에 우리가 설명 들은 대로 만족할 수는 없잖아. 그의 비겁함에 대해 일부러 훈장을 주어 표창했는데 그 훈장이 그를 보호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니, 그거 정말 이상하잖니."
맞다. 이상하다. 보통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그가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이상하다고 주장하기에 더욱 이상해졌다. ‘훈장’이라니. 표식을 훈장이라는 단어로 순식간에 대체하여 전체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만들어내는 순발력. 그는 확실히 천재다. 천재의 이야기에 어떤 첨언을 하겠는가.
'카인의 표식'은 살인자의 표식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다른 자식(또는 그 후손)이 카인을 해치지 못하게끔 하느님이 보호해주고 있다는 보호자의 표식이다. - 위키 백과
데미안은 이후 '카인의 표식'에 대해 실제로 이마에 찍힌 표식이 아닐 거라 주장한다.
'표식은 들고 다니는 어떤 물건이다. 카인은 비범한 정신과 담력을 가졌고 그의 후손들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카인의 후손이 무서워 그 우월함을 깎아내린다. 그들이 들고 다니던 비범한 ‘카인의 표식’을 이마에 찍힌 표식, 천벌로 묘사한다.'
데미안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용기와 나름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늘 몹시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거든. 겁 없고 무시무시한 족속 하나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몹시 불편한 일이었지. 그래서 이제 이 족속에게 별명과 우화를 덧붙여 놓은 거야. 복수하기 위해, 견뎌 낸 무서움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 별로 해롭지 않게 억제해 두기 위해."
아마 다른 사람이 이런 반항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즉시 별로라 생각했을 거다. ‘뭔데 이 아이는 제멋대로 해석하고 잘난 척하는 거지?’ 하지만 데미안이 이야기하고 있다. 비범해 보이는 친구가 이런 반항적인 이야기를 하다니!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조금 의심 가는 부분을 구글링하여 맞는 이야기인지 확인해보았지만 그다지 틀린 구석도 없다. 그의 반항적인 해석은 합리적이다. 나도 모르게 그를 비범하다 인식한다. 매력적이고 반항적인 이야기엔 이런 힘이 있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에 대한 반항적인 해석을 대략적으로 마치고 떠나버린다. 애매한 의문을 수없이 남긴 채.
"대략 이렇게 해서 그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날조되었을 거야. 아, 참 너무 오래 붙들어두었구나, 그럼 안녕!"
싱클레어는 혼란스럽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반항적인 이야기를 하고 저렇게 가버리다니. 의문이 머리를 잠식한다.
'카인이 고상한 사람이고 아벨이 겁쟁이라니! 카인의 표식이 하느님의 보호라니! 신은 아벨을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
싱클레어에게 지혜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데미안은 그렇게 휙 가버려선 안됐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깊게 생각하도록 했다. 데미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자신을. 완전히 이야기를 끝마치지 않으면서. 싱클레어는 생각들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빠져들었다.
맞다. 비범하고 싶단 건 특출나게 다르게 보이고 싶다는 것이지 착해지고 싶다는 말과 다르다. 그러나 비범하다는 게 반드시 나쁘진 않다. 깊숙한 심연까지 맑은 사람은 비범한 사람이다. 언제나 종류의 차이는 존재한다. 표현하는 단어가 한 곳으로 모아질 뿐이다. 모 유튜버는 첫사랑 이야기를 하다 말고 비범하게 관심을 끈다. "디저트 사주면 이야기를 계속하지.”
비범한 사람은 처음부터 비범해 보인다. 그 첫인상에서 모든 관심이 시작된다. 관심의 끈을 유지하려면 비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잊혀지려 할 때마다 한 번 씩. 사람은 절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왕이면 매력적이고 반항적인 이야기를 하자. 실없는 소리를 하면 사람은 당신을 평범하게 보기 시작한다. 탄탄한 이야기와 함께 밀당을 한다면 누구나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모든 걸 연기하려 든다면 상대방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비범해진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당신의 취향과 성격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건 고립되었음을 의미한다. 매력적이고 반항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과 평범한 생각을 공유하기 어려운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데미안은 철없는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싱클레어에게 다가간 건 친구가 간절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범함은 평범함 위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참고.
헤르만 헤세, 데미안, 전영애, 민음사, 1919
이연,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세요, 유튜브, 2021
카인과 아벨,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C%9D%B8%EA%B3%BC_%EC%95%84%EB%B2%A8 , 위키백과, 2021
프리다 칼로,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