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랑땡 May 08. 2022

종종 솔직해져야 하는 이유.

때때로 스토리의 힘은 놀랍기 짝이 없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넷플릭스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 일지’. 이 스토리들을 지난 한 달간 동시 다발적으로 지켜봐 온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최근 행동에 영향을 주었단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는 솔직하게 그녀 자신을 고백한다. 신분 상승의 욕구, 그로 인해 들고 다니는 책 한 권. 그로 인해 만난 남자. 결국 다시 하강의 욕구를 느끼는 그녀와 그로 인한 괴로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주와 현은 그들 앞에 닥칠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고백해야 하는가. 아닌가. 충분한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들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우리에겐 도움이 필요하다고. 둘 사이에 생긴 생명을 지키고 싶다고.


‘나의 해방 일지’의 미정은 평생 내면의 욕구를 고백하지 못했다. 가족에 있어서 그녀가 짊어져야 할 역할. 그것에 짓눌리는 인간의 모습은 보편적이다. 결국 그녀는 해방을, 고백을, 솔직함을 이야기한다. ‘날 추앙해요.’


세 스토리 모두 감정에 대해 억눌려 있는 자신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방식은 다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을 고백하기도, 도움이 필요함을 고백하기도, 누군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했던 본능을 고백하기도 한다.


솔직함에는 결국 고백이 따른다.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충분히 참아왔고 억눌려있었기 때문이다. 억눌려있어 본 적이 없는 자들은 고백하지 못한다. 고백해야 할 스토리가 없다.


사회 속에서 솔직함은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공포를 가져다주고 우리는 솔직함을 누른다. 솔직함이 억눌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분출의 행동, 그것이 고백이다. 그리고 분출은 카타르시스와 함께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준다.


최근 봤던 일련의 고백 스토리에 고무된 나는 고백한다.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점철된 삶에 대한, 나에게 하는 고백, 미안함. 그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자존심은 추락하고 고백의 카타르시스가 분출한다.


100m는 족히 올랐던 한강 그 분수처럼 뿜어져 솟구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