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중수쯤 되었을까?
잠이 안 와 거실로 나왔다.
하나님을 만나야겠는 밤.
그러나 한참을 들여다봐도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집중한다고 분명히 눈을 부릅떴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나는 직장 안에 있는 듯하다.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일, 앞으로 개선해야 할 일, 더 나은 아이디어를 꺼내야 할 일.. 사랑스러운 동료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내 맘 같이 움직여주지 않는 미운 동료가 떠올라 눈썹을 지푸리기도 한다. 고개를 휙휙 내젓고 다시 시편 51편을 읽기를 세 번째.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_시편 51편 17절 말씀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는 말씀을 붙잡을까, 오늘 주시는 말씀은 이것이겠구나 하던 차에 하나님은 내게 "제사"라는 단어를 주목하게 하셨다.
직장에서 커다란 타이틀을 얻고 난 후 나는 응당 그래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뭐든 해내야 한다고 생각되니 그저 최선을 다해 (어쩌면 조금은 과한 최선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제사가 될 수 있을까? 주님은 제사를, 번제 그 자체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마냥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_시편 51편 17절 말씀
상한 심령을 구하시는 하나님.
나의 삶은 단순 제사일까, 상한 심령일까?
잘 굴러가는 것만 같은 이 인생에 내 마음이 상할 수는 있을까? 나는 꼭 굴러가다 어딜 부딪혀 아파야만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질 수 있을까? 아무 일 없이 없어도 주님을 애타게 찾을 수는 없을까?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는 이는 신앙의 하수이고,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찾는 이는 신앙의 중수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어도 하나님을 찾는 삶이 바로 신앙의 고수라고 하더라.
신앙의 급을 나누어 레벨을 평가하자는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삶을 되돌아볼 뿐이었다.
20대에는 가진 것을 다 잃어 너덜너덜 구멍이 난 일상을 살았다.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삶이었다. 그렇게 나는 신앙의 하수임을 깨달았다.
인생의 반쪽을 만나고 난 후 모든 것이 찬양의 제목이 되었다. 눈을 뜨면 남편이 있음에,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삶의 보금자리에 살고 있음에. 하루의 반을 차지하는 직장에서의 승진도, 더 큰 역량을 길러낼 수 있는 기회도 내게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선물과도 같았다. 처절함을 지나 간절함으로 받은 하루하루에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의 고백을 드리곤 했다.
그렇게 나는 신앙의 중수가 되었다.
그러다 이 인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있는 삶. 소중한 이들과 불편한 마찰 없이 살아가는 삶. 리더로서 자연스레 자리 잡아가는 삶.
하나님이 없어도 무난하게 살아지는 그런 삶이었다. 어딘가 이상하고 허전해도, 크게 무너지는 것 같지는 않은 그런 평범한 일상들. 무난하게 사는 친구를 그토록 부러워했는데 어느새 나름 무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모태신앙에 목사인 남편을 둔 사모로 살고 있으니 교회를 떠나는 일은 없지만 내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한 걸음씩 두 걸음씩 저 멀리로 옮겨지는 것 같다. 그렇게, 신앙의 고수는 되지 못하고 있다.
아. 내가 정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구나.
내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있으면서 그것을 실제로 깨닫지도 못할 정도로 둔하게 지내고 있구나. 말씀을 읽어도 읽을 줄 모르고, 말씀을 들어도 들을 줄 모른 채로.결국 끊임없이 내 생각과 내 마음에만 골똘히 집중하고 있구나.
눈을 질끈 감고 예수님을 생각했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인자하심.
날 향한 사랑이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나의 신랑 되신 예수님을. 그 사랑을 만나고 내 인생이 얼마나 풍부했는지를. 그의 사랑이 가져다주었던 참된 평안과 행복을 다시금 떠올려봤다.
영원한 사귐. 더 친밀히 누리는 그 분과의 교제.
하나님이 진정으로 구하시는 제사. 그가 절대 멸시하지 않으실 상한 심령.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관계를 갈망하게 하는 통회하는 마음.
하나님께 집중하니 오늘의 만나를 족히 내려주신다.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을.
아무 일 없이도 주님을 당연스레 찾는 삶을 살고 싶다.
아무리 열심히 살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는.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드릴 수 있기를.
진정으로,
신앙의 고수가 되고 싶어라.
오늘의 찬양 “어노인팅_이것이 영원한 삶”
https://youtu.be/v6EXq6fZX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