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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Aug 27. 2022

욕해도 괜찮아, 하나님 앞에선!

오늘의 묵상

최근 들어 나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이 있다.

키워드는 후회일 것이다. 그러지 말걸, 그러면 안 됐는데 하는 일종의 자책.


원체 그런 성향이기도 하지만, 결혼 후 획득한 사모라는 부캐는 날 더 후회하게 만들고 있다.


사모는 퇴근길 통화도 조곤조곤해야 한다. 일터에서 겪은 속상한 일을 큰소리로 떠들다가는 동네 어느 누가 나를 알아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모는 친한 친구들 앞에서도 본이 되어야 한다. 모든 며느리의 공공의 적인 시어머님의 흉을 보다가도 문득 이 친구들에게 본이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비단 사모라서가 아니라, 바른생활 여인네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면 속상한  있어도  탓을 하지 않아야 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짐짓 조용히 인내할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의 입은  머리가 아는 만큼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은사 목사님은 내가 무슨 일만 있으면 사람들에게 쪼르르 달려간다고 하시더라.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더 의지하기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그래. 하나님 앞에 언젠간 고침을 받고 싶은 나의 약점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욕해~ 하는 거룩한 캔디가 되고 싶달까. 마음만 앞선 나는 방법을 몰라 죄책감의 늪에서 허덕이던 차였다.


그 늪에서 꺼내 주신 말씀은 바로 시편 35편의 다윗의 시다.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함께 부끄러워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소서_시편 35편 26절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억울하여 마음이 힘든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원수를  힘껏 원망하고 욕하며 심지어 저주를 퍼붓고 있다.


그들을 이해하고 품게 해 달라고,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연약한 나를 용서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이 상황을 다 보지 않으셨느냐며 잠잠히 계시지 말아 달라고! 힘든 나를 보며 기뻐하는 저들을 막아달라며 날 것의 감정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마구마구 던져내고 있다.


아니, 잠깐.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까지나 욕에 욕을 한다고?


번쩍 스치며 지나갔다.

하나님께 나는 참 가식적으로 기도해왔구나.


정직한 영을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는 한 차례 스스로를 정화한 후 거룩함에 걸맞은 정답을 가져가려고 했던 것 같다.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는 역사를 의지하기보다 나는 정답을 알아, 나는 그들을 사랑할 수 없으니 그 연약함을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거야, 엄마 아빠 앞 다 큰 맏이처럼 굴었다. 막상 나는 다 크지 않았는데 말이다.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면 떼쓰고 울고 부는 막내딸 같은 어린 마음인걸.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는 잘 안 하게 되고, 날 이해해줄 것 같은 엄마나 친한 친구들에게 남 탓 가득 뭍은 원망 같은 하소연을 하는 거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_고린도전서 1장 25절, 29절


사람의 지혜가 아니다. 나의 노력과 머리로 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만큼 성숙해.

나는 원수도 이만큼 품으려고 하고 있어.

너는 원수에게 만큼의 이해밖에  해주니?

너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깨달아야지!


하나님 앞에서 발버둥 치려 노력하고 성경을 아는 만큼 지혜로우려 했던 나의 마음은 어느샌가 나의 자랑으로, 남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은 아닌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_요한복음 15장 1절 말씀


변화는 나의 영역이 아니구나.

가지에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맺게  주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바로 이런 뜻이구나.  안에 거하라는 그의 말씀은 먹음직스러운 회개의 열매를 가져오라는 말이 아니다. 다윗이 했던 것처럼 서러움, 외로움, 억울함, 이기적임, 분노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그러모아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예수님은 나의 감정을 가장 잘, 지혜롭게 다루어 주실 분이다. 서러움을 거두시고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외로움을 지나 임마누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신다. 억울함을 풀어주시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시며, 이기적임을 이웃사랑으로 변화시켜주신다. 분노를 털어놓고 차분함으로 그의 말씀을 경청하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


다 안다고 자부하며 고백했던 나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완벽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성숙이라는 강박을 던져두고. 나를 완벽히 이해하시는 하나님께, 성숙을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는 욕하며 나갈란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하나님 앞에서는 욕해도 괜찮으니까.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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