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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Jul 15. 2023

내가 짊어진 하나님이 아니데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의 부담감 떨치기

하나님의 영광.


뼛속까지 모태신앙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궁극의 비전. 나도 그랬다.  모태신앙인 나의 정체성은 마치 가슴팍에 굳게 달려진 명찰 같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여름 수련회에 강사로 초청된 목사님들은 한 번씩 그 사실을 꼬집곤 했는데, 알고 보면 우리 같은 열심 있는 모태신앙 청소년들은 소명과 비전을 워딩으로만 알고 있지 진실로는 절절히 깨닫지 못했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진짜 소명을 찾으라고 했다. 어느 정도 동의가 되었고 웃음이 피식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박힌 진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에 목매어 살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내 마음을 표현해 본다면, 그 삶은 온통 지뢰밭이었다. 친구 앞에서 말실수를 한 날, 부모님의 속을 썩인 날, 직장에서 내 단점을 드러내 보이고야 만 날. 시어머님께 더 잘하지 못한 날. 뒤돌아서면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했다는 사실에,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을 했다는 죄책감에 나는 나를 더 채찍질하는 날이 수도 없이 많았다.


최근에 직장 동료와 저녁을 먹으며 툭툭 꺼내둔 속 얘기가 생각난다.   


누를 끼치지 않아야, 내가 하나님 믿는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 피해가 안 가지.
그래서 저녁에 맨날 후회하고 그래. 그러지 말걸, 조금 더 잘할걸.


무례한 크리스천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어떻게서든 나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 그 중간쯤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물론 진심이었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났으면 좋겠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니까. 나를 도구 삼으시는 하나님께 붙들려 사용되려면 정결해야 한다. 일도 잘해야 하고, 사람들에게도 잘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는 나의 삶은 좋아 보여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렇다 보니 하루가 온통 지뢰밭일 수밖에. 나는 사실 숨겨진 죄성으로 뒤덮인 사람이거늘. 여기도 죄, 저기도 죄, 뒤를 돌아보니 어이쿠, 또 죄.


번아웃의 삶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살던 차였다. 하나님이 내게 너 뭐가 그렇게 급하니? 물어보실 정도로. 그러게요 하나님. 그런데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네요.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어 기어코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 나는 왜 미친 듯이 경주마처럼 살고 있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험담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너는 아직 멀었어.

그렇게 노력해 봤자, 너는 여전히 부족해.


거울에 비친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 위로 스쳐 지나간 말들이었다. 최선을 다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인격적으로 일하기 위해 의식하고 참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은 내 속사정은 모를 거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면 최대한 잘 해내기 위해 퇴근 후 집에서 새벽 2시 3시까지 눈 부릅뜨고 머리를 쥐어짜낸다는 걸. 결과로만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 시대긴 하지만, 그래 그렇구나.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짜내 최선을 다해도, 평생 믿고 따르던 그 열심히라는 가치를 끝까지 믿어봐도, 나는 결국 아등바등하는 꼴 밖에는 안되는구나.


그리고 그날은 남편의 설교가 있는 날이었다.


이삭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을 테스팅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진심은, 사실 나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나를 의지하고 믿고 따라오라는 하나님의 초청이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소망이자 미래인 이삭을 주저 없이 바치려 했을 때야 비로소 숫양을 준비해 두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며,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지금 모리아로 떠났는가?  

내게 있어 이삭은 어떤 것일까?


나는 모리아로 떠나지 않았으며, 나의 직책이 바로 이삭임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뿌옇게 흐린 워딩만이 머리를 맴맴 돌고 있을 뿐, 결국에는 내 열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가려 했던 나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번제로 올리라 말씀하셨다. 하나님 퇴사를 하라고요? 아 그게 아니라, 모든 일 가운데 자신을 먼저 두라는 뜻이구나. 당장 급한 업무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얼굴을 진득하게 바라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데. 해야 할 일이 오만가지에 떠오르는 잡다한 스트레스가 무수한 상황에서 성경 한 장을 눈으로만 훑고 기도 잠깐하며 형식이라도 지키면 다행이랄까. 하나님 그 분과 진정으로 깊은 교제를 나누는 일은 나를 내려놓고서야 시작할 수 있다. 나의 관심과 나의 모든 생각을 이끄는 그 이삭을 내려놓아야만.


설교 말미에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설계하신 롤러코스터에 타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내가 발을 조금 더 열심히 구른다고 더 빠른 속도로 가는 게 아니듯, 이 기구에 타 있는 이상 당신의 열심과 헌신으로 그분의 은혜를 얻어가는 게 아니라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그분의 자비로, 그분의 의로 나는 이 모든 삶을 얻게 된 거라고. 그러니 우리는 그저 그 은혜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나의 열심은 나를 지치게 할 뿐, 하나님의 열심으로 나는 오늘 이 은혜를 누리는 거구나. 나의 모든 삶을 완벽하게 설계하시고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을, 오로지 그분의 능력이었음을 나는 어느새 또 잊고 살았었네. 내 가슴팍에는 사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 석자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꼴이었다. 친한 동생이 그랬다. 언니는 링거 맞고 좀 누워있는 삶을 살라고. 하나님 다 하시는 분이니 걱정 말고 누워있으라고. 링거 맞은 채로 자꾸 일어나면 되겠느냐고. 어느새 벌떡 일어나 주삿바늘을 홱 떼내고 저벅저벅 걸어 다닌 기분이다.


그동안 몸에 스며든 죄와 죄로 인한 피로감이 싹 가시는 저녁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첫째로 모리아산에 가기로 했는데. 여차저차 한참을 꾸물럭 대다가 성경을 읽었다. 주말이지만 여전히 분주한 이 마음을 데리고 억지로 성경을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아유 이제 됐다 하려는데 하나님이 한 번만 더 읽으라고 해서. 꾹 참고 마가복음 11장을 한 번 더 읽기 시작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라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_마가복음 11장 22절-23절


성경은 때론 문맥 파악이 어렵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예수님의 의도를 도통 모르겠고. 오늘은 이 구절이 그랬다.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셨는데, 다음에 베드로가 발견하곤 예수님께 이 무화가 나무가 말랐나이다 하니 갑자기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으라, 의심하지 않으면 이 산을 바다로 던질 수 있다, 구하는 걸 받을 수 있다라니.


두 번 읽을 때는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에 세 번째 읽으니 하나님이 통찰 하나를 던져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_마가복음 11장 24절


키워드는 믿음이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 그 말씀을 이미 받은 줄로 알고 사는 것은 나의 삶에 크나 큰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열심이라는 죄에서 자유케 하실 하나님의 말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나면 평안하고 자유해질 나의 일상.


이것을 깨닫고 나니 자연스레 터져버린 한 가지의 기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선함으로만 영광 받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동안은 내가 잘할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기도를 해왔었는데. 나의 한계를 깨닫고 나니 이런 나의 부족함에도 당신의 존재가 크게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치 실수는 많아도 희한하게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는 신입처럼. 사람들은 그에게 인복이 있어 다행이라는 소리를 종종 했는데, 하물며 내게는 하나님이라는 큰 복이 계신것을! 잘난 모습만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려움에도 친히 도우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또한 하나님의 영광 아닌가.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 내가 하나님을 짊어지려 했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커다란 덩치의 아빠를 등에 업고 한 걸음을 떼려니 얼마나 낑낑댔을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_마태복음 11:28


하나님이 나를 짊어지고 가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일은 부담이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일.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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