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양과 한판 뜰 뻔..
연구실에는 기상천외한 인간이 있었다.
이름하여 "이중고". 당시 그의 별명을 여기에 사용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몸 때문에 고통을 받고,
또한 그 힘든 몸을 이끌고 수많은 노가다성 작업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이중고라는 별명이 생긴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고는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었다.
그는 음식에 있어서도 예술적인(?) 경지를 자랑했다.
연구실 사람들이 함께 회를 먹으러 갔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은 회를 한 점씩 집어 먹었지만, 중고는 남달랐다.
그는 젓가락을 쫙 벌려 일렬로 놓인 회 일곱여덟 점을 한 번에 긁어모아 입에 넣었다.
마치 바다를 훑는 저인망 어선처럼 회를 입속으로 끌어올리는 그의 기술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말했다.
"왜 안 먹어요?"
이미 먹을 게 없어진 후였다.
삼겹살 파티에서도 중고는 남달랐다.
그는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갈 때마다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집어 먹었다.
사람들은 고기가 더 익기를 기다렸지만, 중고의 철학은 단호했다.
"삼겹살은 김 나면 먹는 거예요."
그 고기는 돼지 삼겹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중고는 배가 고픈 나머지 연구실에서 준수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 시작했다.
한 냄비, 두 냄비, 세 냄비...
결국 그는 라면을 일곱 개나 먹어 치웠다.
연구실 사람들은 경악했다.
필자조차도 한창 클 때 네 개를 먹어 본 적이 있었지만, 일곱 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라면 일곱 개는 그야말로 "전설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중고의 철저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매번 계란을 풀어 넣어 라면을 완성했고,
후식으로 만두 한 봉지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었다.
연구실 사람들은 그를 "끝판왕 대식가"라 불렀고,
입맛이 없을 때면 그 친구가 가끔 생각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고는 뷔페에 가면 약해졌다.
모두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음식을 가져오는 동안,
중고는 몇 접시만 먹고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왜?"
연구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경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가져오기 귀찮은 걸까?"
한 번은 연구실 MT로 제주도 우도를 방문했을 때였다.
두툼한 제주 오겹살이 숯불 위에서 익어가고 있었지만,
그 고기는 너무나도 느리게 익었다.
중고는 기다리다 지쳤다.
결국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식욕이 다 식어버렸어..."
모두가 그 장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졸업 후, 중고는 놀라운 결심을 했다.
그는 복싱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해 날씬한 체형으로 변신했다.
매일 "라면 일곱 개"의 유혹을 참아내는 그 청년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지금도 입맛이 없을 때면 그의 말이 떠오른다.
"왜 안 먹어요?"
물론, 그때는 이미 먹을 게 다 사라진 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