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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Oct 11. 2024

나의 글에 대한 확신

작가 애런 소킨을 좋아한다. 그는 책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의 대본을 쓰는 각본가다. 어쨌든 글로써 사상과 철학을 표현하니 작가는 작가다. 내 인생 원탑 드라마로 꼽는 <웨스트윙>이 소킨의 대표작이다. 자유주의의 진보적 이상을 표현하는 세련된 필치가 압권이다. 물론 쓸데없이 대사가 많고, 시청자를 가르치려 든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양반의 작품에 연설문 작가(speech writer)라는 직업이 자주 나오는데, 언젠가 해보고 싶다. 정치인의 언어로 대중을 감동시키는 일이 고도의 예술처럼 느껴진다.

     

어제 『연구소의 탄생』에 들어갈 맨해튼 계획 글을 다 쓰고 나니, 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번 편은 힘들었다. 영알못 주제에 영어 자료를 오래 들여다봐서 그런가? 결국 해야 할 다른 작업은 손도 못 대고 쉬기로 했다. 기분전환 겸 소킨의 드라마 <뉴스룸>을 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웨스트윙>의 N 번째(너무 많이 봐서 몇 번인지 모르겠음) 정주행을 끝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뉴스룸>도 이제껏 서너 번은 봤다. 웬만한 에피소드와 명대사는 다 외울 정도다.

     

그런데 1화 시작하자마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두 주인공 윌 매커보이(앵커)와 맥켄지 맥헤일(PD)의 “좋은 뉴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미 잘 아는 장면인데도, 유독 새롭게 다가왔다.


요컨대 뉴스는 시청률과 무관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100만 명이 보는 자극적이고 파파라치 같은 뉴스보다, 100명만 보더라도 진실을 알리는 뉴스가 좋은 뉴스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이 봐야 시청률이 오르고, 시청률이 올라야 광고가 많이 들어오며, 광고 수익이 커져야 방송사도 먹고살기 때문이다. 이런 먹고사니즘에 맞서 올바른 목소리(광고를 주는 회사를 비판한다든지)를 내기란 쉽지 않다. 강유원 선생도 갈파했듯, “자기 목이 걸려있는 일에 소신을 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좋은 뉴스에 대한 이 대화는 작가인 내게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나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글보다, 단 한 명일지라도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려한다. 즉 내 글은 독자보다는 작가 본위다. 물론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쓰려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가 글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독자는 결과일 뿐이다. 글에 따라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독자의 수와 무관하게 나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것을 많은 사람이 읽어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아니라도 어쩔 수 없다.

     

사실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브런치 초창기만 해도 혼란이 있었다. 내 글이 인기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구독자 100명을 목표로 시작한 브런치였지만, 그것도 내게는 버거운 숫자였다. 다른 작가들은 100명은 말할 것도 없고 1,000명 대도 가뿐하게 찍는데… 그래서 내 글을 브런치의 인기 작가들 글과 비교해보았다. 뚜렷한 차이가 보였다. 내 글은 길고, 무겁고, 딱딱했다. 거기다 주제도 마이너했고. 하긴 마이너보다는 컬트가 더 어울리겠다. 당시 썼던 글들의 제목이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수정주의 논쟁>, <전통적 과학 관념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한국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나도 진짜 감 없었다. 대체 이런 걸 누가 읽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기조를 바꾸지는 않았다. 아니, 못 바꿨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나는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말랑말랑한 글, 일상 에세이, 해외 여행기는 아예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런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남들이 듣고 싶어 할 말은 회사에서 쓰는 보고서로 충분했다.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했다.

     

그러다 내 글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고, 결정적으로 출간하면서 확신이 생긴 듯하다. 내가 쓰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고, 구독자 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믿음 말이다. 첫 출간 제의를 한 웨일북이 그래서 고맙다. 웨일북과 함께 낸 『최소한의 과학공부』는 내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꿨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몇 위에 올랐다거나, 몇 쇄를 찍었다거나 하는 건 곁가지다. 내 글에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갖게 해줬다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

     

다음은 『연구소의 탄생』 차례다. 아직 미완성인 이 책은 『최소한의 과학공부』보다 작업 난도는 높은데, 읽는 재미는 덜하다. 연구소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관심을 갖기 어려운 주제라서 더 그렇다. 그래서 브런치에 올리는 초고를 매번 읽어주는 분들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댓글까지 달아주는 분들께는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여러분 복 받으실 거예요…). 이 책이 지향하는, ‘연구소의 역사를 다룬 과학 교양서’는 이제껏 없었다. 그래서 『연구소의 탄생』은 많이 팔리지는 못해도, 첫 깃발을 꽂는 책은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 고생해서 쓸 가치가 있다. 그 고생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나는 내 글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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