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대웅 Nov 08. 2024

나의 벽돌책 사랑

고백하건대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 속도가 너클볼이라면, 사는 속도는 포심 패스트볼이다. 그래서 서재에도 읽은 책 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다. 가끔은 양심에 찔리기도 한다. “누가 이 서재를 보면 책 엄청 많이 읽는 줄 알겠네” 싶어서. 그나마 작가가 되기 전에는 완독하는 책들이 좀 있었는데, 요즘에는 아예 없다. 책 쓰는 데 필요한 부분만 빠르게 읽는 발췌독이 일상화되어서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읽지도 않을 책을 꾸준히 사고 있다. 지금은 여유가 없지만 언젠가는 다 읽을 거라고 정신승리를 하면서.

     

유독 내가 사 모으기 좋아하는 책은 이른바 ‘벽돌책’이다. 말 그대로 벽돌처럼 두껍고 무거운 책이다. 벽돌책은 여러모로 단점이 많다. 첫째로 가격이 비싸다. 보통 책은 2만 원 이내면 쌉구매하는데, 이건 4~5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둘째로 읽기가 어렵다. 이게 단지 분량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분량이 많은 만큼, 서사도 다층적으로 엮이고 논점도 배배 꼬이는 경우가 많다. 셋째로 관리가 힘들다. 이거야말로 최대의 단점이다. 벽돌책은 들고 다니면서 읽기 쉽지 않고(집에서만 읽어야 함), 읽다가 그만두기도 어려우며(그때까지 읽은 게 아까움), 책장의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벽돌책은 살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가장 책다운 책이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논리가 치밀하며, 서사도 탄탄한 경우가 많다. 물론 나는 두꺼운 책이 곧 좋은 책이라고 믿는 단순무식러는 아니다. 하지만 얇은 책 중에 퀄리티가 떨어지는 사례를 많이 본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SNS에나 어울릴 글을 억지 편집해서 분량을 늘려놓은 책이 싫다. 공교롭게도 이런 특징은 작고 얇은 책에서 많이 발견된다. 반면 벽돌책은, 외국 학자가 묵직한 학술적 논의를 다루는 번역서인 경우가 많다. 읽는 데도 오래 걸리지만, 한 번만 읽어서는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소장 가치가 있다.

      

나도 이런 벽돌책들을 꽤 갖고 있다. 브런치에도 소개해보려 한다.



     

내 벽돌책 중에서 분량과 무게에 있어 압도적 1황이다. 무려 1,500페이지에 2.5㎏이 넘는다. 이 책은 정말이지 들고 읽노라면 손목이 나갈 것 같다. 아마 흉기로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20세기 세계 경제의 기본틀을 짠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전기다. 사실 케인스를 다룬 책은 이미 많은데, 이 책이 유별나게 두꺼운 이유는 그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정치학자, 철학자로서의 복잡한 사상적 궤적을 보여준다. 역자인 고세훈 교수는 영국 정치에 정통한 학자로서, 글쓰기에 아주 엄격한 이다.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가는 책이다.

     

다만 30페이지 정도 되는 저자와 역자 서문만 읽고 나머지는 안 읽었다. 서문이 워낙 훌륭한지라, 그걸 읽으니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착각이 들어서(…). 그래도 뭐 언젠가는 다 읽을 것이다.

     

전체 분량으로 따지면 앞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넘어서는 책이다. 총 1,800페이지에 살짝 모자란다. 다만 그걸 한 권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래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는지, 두 권으로 쪼개서 나왔다. 그렇다 해도 1, 2권이 각각 8~900페이지 정도 된다. “그를 둘로 나눠도 두 사람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던 MLB의 리키 헨더슨을 찜쪄먹을 레전드 벽돌책이다. 이 책의 진정한 위엄은 주석과 참고문헌에 있다. 그것만 244페이지로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이다(ㄷㄷㄷ).

     

이 책은 순수한 충동구매의 산물이다. 한때 좋아했던 좌파 평론가의 소개 글을 읽고 바로 질렀다. 평론가는 좌파의 불모지 한국에서 이런 책이 번역되었다며 감격에 겨워했는데, 그 흥분이 글을 읽는 내게도 온전히 전해졌다. 그래서 두 권 합계 8만 원이 넘는 책을 고민 안 하고 샀다. 하지만 사놓고 한 줄도 안 읽었다.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다. 유럽 사회주의 100년의 역사를 묵묵히 읽어내려가기에는, 이미 내 생각은 많이 변해서. 그저 이런 초레어한 책을 낸 출판사와 자들을 리스펙트하며 기부한 셈 치려고 한다.

     

앞의 두 책에 비하면 소박한 책이다. 1,000페이지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위엄은 분량이 아닌 내용에 있다. 바로 고대 그리스에서 17세기 영국까지, 2,000년에 가까운 시간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힘’이라는 개념 하나에 집중해서만. 주장하는 바도 매우 선 굵으면서도 독창적이다. 근대 과학혁명은 자연을 힘의 관계로 파악하는 데서 비롯됐는데, 이런 생각의 원천은 고대에까지 닿는다는 것이다. 즉 근대 과학혁명의 완성인 뉴턴의 중력 개념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자력(원거리에서도 작용하는)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가능했고, 자력은 인류 지성사에서 이미 오랜 탐구의 대상이었다는 논리다.

     

당연하지만 다 안 읽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과학공부』를 쓸 때 중요하게 참고해서, 군데군데 발췌독하기는 했다. 이 책도 언젠가는 다 읽어야 하는데.

     

미드 <더 퍼시픽>을 보고 산 책이다. <더 퍼시픽>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태평양 전선을 그린 전쟁 드라마다. 특히 일본군을 잔혹하고 막장스럽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국가에 충성한다는 이유로 승산도 없는 싸움에 자폭하듯 달려든다. 이 대목에서는 인문학적인 질문생길 수밖에 없다. 대체 무엇이 평범한 청년들을 이러한 전쟁 로봇으로 만들었나? 그래서 이 시대의 일본을 비판적으로 다룬 자료를 찾다가, 어디선가 본 리뷰에 꽂혀서 이 책을 샀다. 일본 군국주의 시대 천황이었던 히로히토의 일대기지만, 부제에서 보듯 근대 일본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분량은 940페이지 정도.

     

이 책은 절반 정도 읽다가 말았다. 다름 아닌 등장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일본인이 나오는데, 그 이름이 매우 헷갈린다. 비슷한 이유로 악명 높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맞먹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도 이름 때문에 앞으로 자꾸 되돌아가게 되는데(“지금 얘가 아까 나왔던 걘가…?”), 그 버퍼링에 지쳐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경제학사를 한 번쯤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샀다. 내 벽돌책이 다 그렇듯 이것도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다. 경제사상사라는 제목만 보면 경제학의 흐름을 무미건조하게 일람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학문적 객관성보다는 이념적 지향이 뚜렷한 책이라서 그렇다. 즉 비주류-좌파 경제학(마르크스주의, 포스트케인스주의, 제도주의, 역사학파…)의 입장에서 주류-자유주의 경제학(고전파, 공리주의, 신고전파 종합, 시카고학파…)을 비판하는 게 목적이다. 경제학 책이지만 그것의 배경을 이루는 사상과의 맥락에서 서술하기 때문에, 수학이 등장하는 부분들 빼고는 읽을 만하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벽돌책 중에 유일하게 완독한 책이다. 읽는 데 한 6개월은 걸린 것 같다. 읽다가 지루하면 다른 책을 읽고, 그러다 다시 돌아와서 읽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겨우 다 읽었다. 하지만 지금 이 책의 내용을 말해보라고 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래도 브런치에 이 책의 리뷰는 썼다. 이렇게라도 읽었다는 인증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이 지나간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