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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Nov 19. 2024

냉정한 평가의 시간

평가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으나,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혹독하고 냉정한 평가가 당장은 빡쳐도 장기적으로는 발전의 동력이 된다. 내 책 『최소한의 과학공부』도 마찬가지다. 출간 후 1년 가까이 지났으니 나름의 평가를 해볼 시점이다.

     

그럼 어떤 기준으로 이 책을 평가할 수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지표는 책의 판매량과 그것의 반영인 인세다. 그중 인세는 브런치 작가들도 꽤 관심이 있을 듯하다. 몇 달 전 첫 인세를 정산했는데, 얼마라고 밝히기는 그렇지만… 이제껏 일의 대가로 한 번에 수령한 수입 중에 가장 많은 금액이었다. 하긴 1년 2개월을 작업했으니 가성비로 보면 많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어쨌든 첫 인세는 몽땅 아내에게 줬고,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나는 아는 바가 없다.

     

사실 인세보다는 출판사 내부 평가가 궁금했다. 웨일북 정도의 출판사가 나 같은 무명작가의 책을 낸 것은 꽤 도박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지금쯤 후회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었다. 첫 인세 정산을 받으며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폭망이래도 상처받지 않을 테니, 이 책의 객관적인 평가가 알고 싶다고. 내가 평소 칼 같다고 생각했던 담당 편집자님의 답은 이러했다.

     

“폭망은 절대 아니고요. 신인 작가가, 셀럽도 아닌데 이 정도 한 건 의미가 있죠. 저희가 올해 유명한 분의 미술책도 냈는데… 그건 이 책만큼 안 팔렸어요. 다만 과학 교양서 시장이 저희 생각보다 작은 건 분명한 듯해요. 그리고 과학 베스트셀러의 고정된 순위를 흔들지 못했다는 점도 아쉽죠. 이 책이 잠깐 치고 올라가긴 했지만, 결국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했으니까요.”

     

아는 분은 알겠지만, 과학 베스트셀러 순위는 여간해서 큰 변화가 없다. 일단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종의 기원』 같은 고전들이 몇 년째 높은 순위를 점하고 있다. 거기에 정재승, 김상욱, 김범준, 최재천 같은 네임드 교수들이 한 번 책을 내면 바로 순위권에 들어온다. 작년에는 뜬금없이 유시민이 과학책을 내면서 한바탕 생태계를 교란하기도 했었다. 편집자님 말씀은, 『최소한의 과학공부』가 이렇게 견고한 순위 구조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지만, 롱런은 못했다는 뜻이리라. 내 기억에도 인터넷 서점 3사의 10위 안에 든 적은 없고, 10~20위에서 몇 주 깔짝대다가 내려왔던 것 같다.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다. 그래도 출판사가 후회하지는 않는 듯해서 다행이지만(하지만 후속작 제의 따위는 없긔).

     

그렇다면 독자들의 평가는 어떨까. 가장 직접적인 지표는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리뷰일 것이다. 그 대부분을 읽어 보았다. 호평이 90%, 별로라는 평이 10% 정도 된다. 호평에는 구체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 “문과도 이해하기 쉽게 썼다, 과학이 삶과 밀접한 이유를 알려준다, 소개하는 역사적 사실이 재미있다.” 반면 별로라는 이유는 이렇다. “생각보다 어렵다,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제목은 최소한이나 내용은 그렇지 않다.”

    

그중 감동받은 리뷰가 두 편이 있다. 첫째는 독서모임에서 읽고 올린 글이다. 글쓴이의 문장만 봐도 상당한 내공이 느껴졌다. 리뷰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일단, 저자가 글을 정말 잘 쓴다. 권위적이지도 않고 경박하지도 않고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도 덤덤하게, 많은 정보를, 과학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자신이 보유한 인문학적 교양을 적절히 드러낸다.”

- [출처] 네이버 블로그 책 읽는 참새

    

글을 정말 잘 쓴다니, 작가에게 이만한 극찬이 있을까.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글 잘 쓴다는 칭찬이 가장 듣기 좋다. 누가 내게 글 잘 쓴다고 하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공부, 운동, 예술에 죄다 재능이 없었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던 분야가 글쓰기라서 그럴 테다. 지금도 글을 잘 쓰는 것은 내 필생의 목표다. 작가라면 글 잘 쓰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그게 그렇지 않다. 내 담당 편집자님도 하신 말씀인데, 출간 작가라고 다 잘 쓰지 않는다. 심지어 문장의 기본 규칙도 모르는 작가들이 허다하다.

     

둘째는 어떤 학교 선생님의 리뷰다. 아무래도 선생님이라 그런지, 이 책을 과학의 교습 방법과 연관지어서 읽으신 것 같다. 특히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과학교육에 좋은 시사점을 전해주고 있다. 과학은 역사적 맥락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필요에 의해 생겨나고 발전하는 과정에 기초하여 교육이 전개되어야 할 필요성을 과학 학습의 경험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과학과 수학이 맥락없이 교육되면서 과학을 어렵고 수학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은 교육자로서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 [출처] 네이버 블로그 솔푸른샘

    

『최소한의 과학공부』는 과학 지식을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사람들이 과학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인식에도 변화가 생기기를 바랐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과학은 상아탑과 실험실 속에만 있지 않으며 우리 삶에 깊이 스며있다는 것, 어떤 목적 없이 그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지적인 기쁨을 얻는다는 것. 이 리뷰를 쓰신 선생님은 나의 이런 의도를 알아봐 주신 것 같다. 흔히 행간의 의미를 파악한다고 하는데, 이분이 딱 그렇게 하셔서 작가로서 고마웠다.

     

이 두 편 외에 좀 아리송한 리뷰도 있었다. 어떤 분이 이 책을 ‘고등 수행평가 생기부 추천 도서’라며 소개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생기부면 생활기록부 아닌가? 근데 생활기록부랑 책이 무슨 관계인지… 물론 ‘추천’이라는 걸 보니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 다만 정확히 이 책을 어디에 어떻게 추천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교직에 계시는 구독자분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인터넷이 다 그렇듯 호평만 있는 건 아니다. 드물게나마 혹평도 있다. 혹평도 엄연한 평가이고, 특히 내용에 대한 비판이라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다음 책이 나아진다. 실제로 나는 혹평에 무딘 편이기도 하다. 대학원 내내 하도 혹평을 많이 당해서, 학위논문 초고 발표할 때쯤 되니 웬만한 비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유독 눈에 띄는 두 혹평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둘 다 인터넷 서점의 한 줄 평에 짤막하게 올라왔다.

     

첫째는 “과학은 인문학이라는 깨어계신 분들ㅋ”이라는 평이다. 우선 뒷부분의 정치적인 조롱(깨어계신 분들은 특정 정당 지지자를 뜻함)은 고민할 가치조차 없다. 문제는 앞부분의 ‘과학은 인문학’이라는 규정이다. 나는 책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도 한 적이 없다. 물론 근대과학은 중세 자연철학에서 분화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다뤘지만, 설마 그걸 저렇게 이해한 거라면;; 오히려 나는 인문학이 어설프게 과학에 우월의식을 갖는 경향에 비판적이다(그래서 이런 글도 썼다). 중세 자연철학이 근대과학으로 진화하는 그 지난한 논의(지동설, 기계론, 계몽주의…)를 건너뛰고 저렇게 ‘과학 = 인문학’이라는 단순무식한 규정으로 퉁치다니,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둘째는 더 황당한데,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굳이 마지막에 독박육아란 말을 쓸 필요가 있었나 싶네요. 아무리 문맥상 나온다지만”이다. 이분이 문제 삼은 독박육아는 본문이 아닌 에필로그 감사의 말에 나오는 단어다. 집필하는 동안 육아에 헌신한 아내에게 미안함과 감사를 표하면서 썼는데, 이게 왜 쓰면 안 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책 쓴다고 육아 의무를 방기한 나를 질책하는 의미인지, 독박육아는 소위 페미들이 잘 쓰는 단어인데 너도 페미냐는 의미인지, 아무튼 알 수가 없다. 더 이해 안 가는 것은 본문에 수많은 과학 개념이 나오는데, 그건 다 건너뛰고 마지막 페이지의 독박육아에 꽂힌 이분의 독특한 감성이다(그래도 책을 끝까지는 읽은 모양이니 다행이려나).

     

아무튼 호평이든 혹평이든, 모두 책에 대한 관심일 테니 나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돌이켜 봐도 『최소한의 과학공부』 집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일이었다. 브런치에서도 참으로 많은 작가님이 책을 사주시고(여러 권을 사신 분도 있다ㅠㅠ) 리뷰를 써주셨다. 그분들께 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또한 받은 만큼 나도 돌려 드리고 싶다. 이 공간에 함께 있는, 문장 한 줄 개념 하나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작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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