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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Dec 06. 2024

10년의 감사함

로이킴(2024),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 이제 세 번 만났는데 어떻게 사귀어요? 너무 빠르잖아요.”

“원래 소개팅하고 세 번 만나면 사귀는 거예요. 그것도 몰랐어요?”

     

소개팅 50여 번 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 운명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잘 통하는 상대임에는 분명했다(예쁜 건 기본이고). 나는 그리 재미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런데도 소개팅녀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빵빵 터졌다. 그리고 내가 고른 음악에 늘 감탄했다. 자기는 문과생을 처음 만나보는데 확실히 감성이 세련되었다며. 이런 반응들을 접하니 나도 괜찮은 남자가 된 듯한 근자감이 생겼다. 그래서 세 번째 만나는 날, 이제 정식으로 사귀면 어떻겠냐고 고백공격을 감행했다. 허를 찔린 소개팅녀는 너무 빠르다며 난처해했다. 하지만 그런 뻔한 내숭이 통할 리가. 결국 구렁이 담 넘어가듯 ‘오늘부터 1일’을 합의하게 됐다.

      

아마 그때 소개팅녀는 몰랐을 것이다. 세 번 만에 어영부영 사귀게 된 소개팅남과 10년이나 같이 살게 될 줄은. 맞다. 2024년 12월 7일 결혼 10주년을 맞은 구 소개팅녀 현 아내의 이야기다. 파릇파릇하던 30살 대학원생은 이제 만으로도 빼박 40대라고 절망하는 애 엄마가 되었다. 그래도 마냥 억울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당시 34살이었던 남자친구도 45살의 아재로 삭아버렸으니(그래도 나는 다이어트 성공함). 그나마 아내나 나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서울-대전 장거리 커플로 만났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주말만 만날 수 있는 만큼 하루하루가 늘 소중했다. 그래서 만난 지 반년 만에 프포즈를 했고, 또 반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연애와 신혼 때 같이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결혼식 직후 아내가 해외연수를 떠났고, 돌아오자마자 또 주말부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로소 가족답게 살게 된 건 결혼 6년 차가 되어서였다. 그때는 그렇게 떨어져야 했던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슨 일이 있을 때 곁에 있지 못한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긍정적인 면도 없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기에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느낀다.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하면, 과거에 대한 지나친 미화일까.

     

실제로 우리는 결혼 생활 내내 싸운 적이 별로 없다. 감정이 상할 만큼 크게 다툰 적이라고 해봐야 손에 꼽는다. 결혼 10년을 통틀어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다. 안 싸운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결혼을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안 싸우는 것만으로 얼마나 성공적인 결혼인지. 그게 얼마나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 물론 우리가 안 싸우는 데에는 나보다는 아내의 지분이 훨씬 크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던한 성격이지만, 어떤 지점들에서는 남들이 이해 못 할 만큼 예민하기도 하다. 아내는 그걸 다 받아준다. 물론 나를 100% 이해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사람이 이러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이 앞서서다. 반면 극T(로 추정되는)인 나는 그러지 못한다. 어떤 결과가 주어졌다면, 반드시 그에 부합하는 원인이 있어야 납득한다. 이것만 봐도 아내가 나보다 훨씬 대인배임을 알 수 있다.

     

자연의 법칙은 인간사에도 대부분 적용된다. 그 궁극의 원리 중 하나는 시간이다. 바위도 바람을 맞으면 결국 풍화하듯, 사람의 감정도 익숙함이 깃들면 깎아지기 마련이다. 10년 세월의 풍파를 맞아온 나와 아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애 초기의 그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일 수는 없다(마지막 키스가 언제였냐고 묻지 않긔). 이건 자연현상처럼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설렘과 떨림은 짜릿하지만 불안한 감정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상승과 하강의 파도를 자주 탈 수밖에 없다. 어릴 때는 그런 격렬한 감정이 사랑의 전부라 여겼으나, 나이가 들어보니 사랑의 스펙트럼은 훨씬 넓음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간은 바위를 풍화시키지만, 와인을 숙성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로이킴의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을 자주 듣는다. 원래 음색 때문에 믿고 듣는 가수인데, 이 곡은 유독 가사가 좋다. 마치 우리의 결혼 10주년을 축하해주기 위해 쓴 것 같다. 특히 이 부분. “저물어 가는 노을도 / 그리고 찾아올 밤하늘도 / 우리 함께한 시간만큼 / 아름다울 거예요” 보통 사랑 노래는 시작의 설렘과 절정의 격함을 찬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곡을 부르는 화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다르다. 오래된 연인들에게 찾아오는 익숙함 역시 사랑일 거라고 말해주는 감성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로이킴은 음색만 깡패인 줄 알았더니, 세상사에 대한 사유의 폭도 넓은 듯하다.

     

오직 남편 하나만 믿고 10년의 세월을 견뎌온 아내에게 감사한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려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그러니 시너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이만큼 믿음직한 파트너가 또 있을까. 1990년대 시카고 불스의 경기를 보면 톱니바퀴 같은 콤비 플레이에 전율이 느껴진다. 마이클 조던의 훼이크 몇 번에 수비수들이 움찔하는 동안, 스카티 피펜은 엉뚱한 구석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는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조던이 패스를 찔러주면 피펜은 노마크로 슛을 성공시킨다. 마치 결혼 10주년을 맞은 우리 모습 같다. 아내와 나도 그만큼 "척하면 척"이다. 3연패를 두 번이나 이룬 조던과 피펜처럼 우리 부부도 최고의 파트너라고 믿는다. 지난 10년 동안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 험난한 세상 함께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다.

10년 만에 다시 꺼내본 청첩장... 저 때만 해도 내가 문장을 굉장히 길게 썼구나 싶다(새삼 반성이;;).


뜨겁게 사랑했던 계절을 지나
처음과는 조금은 달라진
우리 모습을 걱정하진 말아요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을 보며
사랑을 약속했던
우리의 마음은 영원한 거라

저물어 가는 노을도
그리고 찾아올 밤하늘도
우리 함께한 시간만큼
아름다울 거예요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처음의 설렘보다 이 익숙함을
소중해할 수 있는 것
때론 맘 같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솔직해지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일 거야
내가 아는 사랑인 거야

바다가 지겨워지고
숲이 푸르르지 않다고
그 아름다움을 잊는다면
사랑이 아닐 거예요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처음의 설렘보다 이 익숙함을
소중해할 수 있는 것
때론 맘 같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솔직해지고
이해할 수 있는 것

내가 보고 느끼고 듣는 모든 것엔
그대가 물들어 있어서
없이는 나 살 수 없어서

너가 노래가 된다면 나만 알고 싶고
그 어떤 가사보다 아껴 부르며
간직하고 싶은 것

그게 사랑일 거야
내가 하는 사랑인 거야
그래, 그게 바로 사랑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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