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과거와 현재가 전혀 다른 행위가 되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아무나 글을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글을 써서 이름을 알리려면 신문, 잡지, 출판사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했다. 편집자가 모든 원고를 검토했고, 무엇을 실을지 선택했다. 연재는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 자리에 오르려면 신문 문예란, 문학상 공모전, 잡지 투고 등을 거쳐야 했다. 이렇듯 과거의 글쓰기는 생산보다는 허가의 문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오래된 질서가 무너졌다. 인터넷의 폭발과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세상이 뒤집힌 덕분이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아도 누구나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산업사회에서 공장이 제품을 대량 생산했다면, 정보사회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이 콘텐츠를 끝없이 찍어낸다. 과거에 활자 인쇄기와 지면은 극히 한정된 자원이었다. 이제는 0과 1의 디지털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다. 출판비는 ‘0’에 수렴하고, 발행주기는 ‘즉시’가 되었으며, 유통 속도는 ‘실시간’이 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기술이 좋아졌다는 사실이 아니다. 글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거의 글은 권위 있는 제도의 승인이 필요했다. 또한 완성된 결과물로만 존재했고, 독자 앞에 나서기 전까지는 비공개였다. 그러나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글은 선택받은 일부의 결과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채널에서 기획하고, 실험하고, 연재할 수 있는 과정이 되었다. 이 거대한 변화는 글의 주도권이 제도에서 개인으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 시대의 글쓰기는 펜 대신 키보드를 사용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플랫폼은 글의 형식, 독자와의 관계, 글을 쓰는 사람의 사고방식까지 바꿔버린다. 같은 글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든다. 즉 플랫폼은 도구가 아니라 환경이자 방향에 가깝다. 이를 고려해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어디에 올릴까?"가 아니라, "이 플랫폼은 나에게 어떤 글을 쓰게 만드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네이버 블로그를 떠올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는 국내 최대 포털이 운영하는 플랫폼답게 검색에 강하다. 어떤 주제든 블로그 글이 상단에 등장한다. 그래서 조금만 신경 써서 글을 쓰면 생각보다 쉽게 조회수를 얻을 수 있다. 이웃 추가, 댓글, 공감 같은 커뮤니티 기능도 있어서 누가 내 글을 보고 있다는 감각을 일찍부터 체험할 수 있다. 시작하기도, 눈에 띄기도 가장 쉬운 플랫폼인 셈이다. 이 점에서 네이버 블로그는 글쓰기의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네이버 블로그에서 오래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이곳의 규칙은 ‘잘 쓰는 글’보다 ‘잘 노출되는 글’에 유리함을. 최신 글이 위로 올라오고, 인기 키워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빠르게 잡아야 해서 제목은 점점 자극적으로 바뀐다. 내용은 짧고 단순해진다. “쉽게 ~하는 법”, “정리해 드립니다”, “추천 TOP5” 같은 형식이 반복된다. 물론 이런 정보 제공 글도 글쓰기의 한 방식이다. 다만 그렇게만 쓰면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사람들이 클릭할 만한 말’을 우선하게 될 수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독자를 모으기에는 좋지만, 나만의 목소리를 기르기에는 쉽지 않은 공간이다. 즉 글쓰기의 입구로서는 훌륭하나 작업실로 쓰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좀 더 조용하고, 깊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 바로 티스토리다. 티스토리는 네이버처럼 요란하지 않다. 똑같은 블로그로 보이나 작동 방식은 다르다. 이곳에서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주제에 깊이 관심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구글 검색이 티스토리를 밀어준다. 구글은 네이버처럼 최신 글만 띄우지 않고, 오래된 글이라도 잘 썼다면 계속 상단에 올려둔다. 그래서 티스토리에서 한번 잘 쓴 글은 몇 달, 길면 몇 년 동안 유입을 만들어낸다. 글을 소비재가 아니라 자산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플랫폼이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티스토리는 처음에 거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이웃 문화도 약하고, 공감 기능도 단순하다. 글의 노출은 전적으로 콘텐츠의 질과 검색 최적화에 달려 있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사람에게 티스토리는 잔인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오래 남을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곳에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자극적인 제목을 안 붙여도, 유행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티스토리에서는 시간이 가장 공정한 편집자다. 꾸준히 쌓인 글은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아카이브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작가의 신뢰를 쌓는다. 네이버 블로그가 시선을 모은다면, 티스토리는 기록을 모은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정보나 분석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어떤 사유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걸 고민하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곳이 브런치다. 브런치는 플랫폼이라기보다 잡지사나 출판사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글을 ‘게시’하는 것이 아니라 ‘발행’한다. 또한 작가로 승인받으려면 운영진에게 자신의 필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브런치가 애초에 글의 품질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브런치에는 에세이, 논픽션, 스토리텔링, 비평 등 사유의 형태를 갖춘 글이 많다. 브런치에서는 글이 정보를 넘어 작품처럼 다뤄진다.
브런치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글의 조회수보다 글의 밀도와 가치가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이 사람 글은 믿고 읽을 만하다”라는 인식을 얻으면, 독자는 숫자보다 질적으로 늘어난다. 메인화면에 큐레이션되면 많은 독자에게 노출될 기회도 있다. 실제로 출판사 편집자나 기획자들은 지금도 브런치를 꾸준히 지켜본다. 잘 쓰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많은 신진 작가가 브런치를 통해 출간의 기회를 얻는다.
브런치는 수익 모델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약점도 있다. 물론 최근 ‘응원하기’나 '멤버십' 기능의 도입으로 부분적인 수익화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플랫폼 자체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네이버 블로그나 애드센스로 수익을 만드는 티스토리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브런치는 여전히 글의 완성도나 작가의 목소리를 중심에 둔 플랫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네이버 블로그가 “얼마나 눈에 띄게 쓰는가”의 싸움이라면, 브런치는 “얼마나 잘 쓰는가”의 싸움이다. 작가 고유의 문제의식, 관점, 문체가 없으면 글이 묻히기 쉽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 사람들 긴 글 안 읽잖아. 다 SNS에서 짧게 보고 말지 않아?” 그래서 많은 이들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 등으로 향한다. SNS는 플랫폼이라기보다 드넓은 광장에 가깝다. 형식의 제약이 거의 없고, 무엇이든 올릴 수 있다. 글자보다 ‘순간’이 중요하다. 감정 한 줄, 사진 한 장, 지금 떠오른 생각 하나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반응은 빠르고, 공유는 순식간이다. 바이럴이 터지면 단 하루 만에 수만 명이 글을 볼 수도 있다. 즉 관계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데는 어느 플랫폼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그 속도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있다. 콘텐츠가 너무나 빨리 뜨고 사라진다. 불과 몇 시간만 지나도 새 글에 파묻혀버릴 정도다. 그래서 SNS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 새로운 것을 던져야 한다. 그냥 새롭기만 하면 안 된다. 더 자극적이고, 더 재밌고, 더 감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글은 얇아지고 생각도 분절된다. SNS는 글의 대중화를 이끌었지만, 글의 파편화를 주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이곳에서 작가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작가로 ‘보이기’에는 쉬운 공간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글쓰기의 문턱을 무너뜨렸다. 과거라면 편집자의 승인 없이 세상에 나올 수 없던 글들이 이제 발행 버튼 하나로 전 세계로 퍼진다. 누구나 연재할 수 있고, 독자를 모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글쓰기의 민주화이고 해방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자유의 이면에는 잘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다. 플랫폼은 어떤 글을 쓰게 할 것인지를 계속 유도한다. 그럼으로써 글을 읽는 방식과 의미를 은근히 바꿔낸다. 예컨대 네이버는 최신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며 지금 당장 도움이 되는 글을 요구한다. 티스토리는 깊이와 축적을, 브런치는 문장력과 서사를, SNS는 속도와 반응을 요구한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 글이나 써도 된다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플랫폼이 보이지 않는 기준을 통해 글쓰기의 방향을 설계하고 있다.
이 구조 속에서 글 쓰는 사람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더 많은 조회 수를 얻으려고 제목을 바꾸고, 알고리즘에 맞춰서 문장을 잘라내며, 바이럴을 의도해 자극적인 소재를 고른다.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환경적 압력인 셈이다. 이 압력 속에서 작가는 "왜 이 글을 쓰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읽힐까"를 고민하는 존재로 변해간다. 플랫폼은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글의 방향을 은밀하게 통제하기도 한다.
하지만 플랫폼이 원하는 글과 독자가 오래 찾는 글은 또 다르다. 플랫폼은 평균적인 글, 쉽게 소비되는 글, 트렌드에 맞춘 글을 위로 올린다. 반면 독자는 “이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 “이 사람만의 관점”을 기억한다. 트렌드에 정확히 맞춘 글은 트렌드가 끝나면 낡는다. 자신만의 질문을 자기 언어로 밀어붙인 글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살아난다. 플랫폼이 속도를 본다면, 독자는 밀도와 신뢰를 본다. “이 사람 글이라면 길어도 읽을 만하다”는 믿음이 생기면, 독자는 더 이상 숫자가 아니라 글쓴이를 따라간다.
플랫폼 밖에서 벌어지는 기회는 이 논리를 증명한다. 출판, 강연, 협업 제안은 플랫폼에서 가장 크게 터뜨린 작가가 아니라, 주제를 깊게 파고들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한 작가에게 돌아간다. 트렌드를 따라간 글은 플랫폼이 바뀌면 사라진다. 그러나 방향성을 가진 글은 플랫폼이 달라져도 계속 연결된다. 플랫폼은 글을 퍼뜨리지만 글의 가치까지 만들어줄 수는 없다. 가치 있는 글은 플랫폼 안에서가 아니라, 플랫폼 이후에 증명되는 셈이다.
그래서 작가주의는 플랫폼 시대에도 유효하다. 여기서 말하는 작가주의란 거창한 예술가의 고집이 아니다. 플랫폼의 논리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던지고 싶은 질문을 자기 언어로 밀어붙이는 태도다. 물론 처음에는 플랫폼 외곽의 비주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트렌드는 반드시 소멸하고, 독자는 비슷한 글들에 지친다는 것. 그때 살아남는 것은 주류가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글이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오래 남은 텍스트는 그 시대의 주류를 답습한 것이 아니었다. 당대의 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지배적 사고에 균열을 냈던 글들이 시간이 흘러 고전이 되었다. 플랫폼 시대에도 이는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작가주의는 낭만적인 고립 선언이 아니다. 트렌드의 수명을 넘어서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플랫폼은 현재를 점유하지만, 작가는 시간 자체를 점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