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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는 어떻게 글이 되는가

by 배대웅

초창기 과학자들은 지금으로 치면 오타쿠와 비슷했다.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밤이면 지하실에 틀어박혀 알 수 없는 실험을 했다. 유리병 속에서 번쩍이는 불꽃, 벽에 빽빽이 적힌 기호들, 책상 위에 쌓인 실험 노트들. 가족과 이웃은 그들을 못 말리는 괴짜로 여겼다. 그러나 바로 그 엉뚱한 ‘덕질’이 근대 과학의 씨앗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상인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그랬다. 그는 낮에는 옷감을 팔고, 밤에는 유리 조각을 갈아 렌즈를 만들었다. 이 기묘한 취미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으로 보였다. 하지만 레이우엔훅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처음 관찰했다. 그 결과를 수백 통의 편지로 써서 영국 왕립학회에 보냈으나 조롱만 당했다. 학위도, 경력도 없는 상인이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동물들’을 보았다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뒤 다른 학자들이 그 실험의 재현에 성공하자, 결국 인정을 받았다. 그는 1680년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오늘날에도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100년 뒤 영국의 윌리엄 허셜은 하늘에서 비슷한 일을 해냈다. 그의 본업은 음악가였다. 오보에 연주와 작곡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틈만 나면 악보 대신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부엌에서는 금속을 녹여 거울을 주조했고, 정원에는 직접 만든 망원경들을 설치했다. 낮에 연주가 끝나면 밤에는 어김없이 동생 캐롤라인과 하늘을 관측했다. 그리고 1781년 천왕성을 발견했다. 태양계의 행성은 모두 알려졌다고 믿었던 천문학자들에게는 일대 충격이었다. 한 음악가의 취미가 우주의 경계를 다시 그리게 한 셈이다.


두 사람의 발견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믿었던 세계를 뒤집어 버렸다.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눈에 보이지 않던 생명의 차원을 열었다면, 허셜은 망원경으로 눈에 닿지 않던 우주의 한계를 확장했다. 둘 다 제도권 밖의 아마추어였고, 둘 다 순수한 흥미에서 출발했다.


이렇듯 초창기 과학사는 곧 ‘취미의 역사’였다. 정규 교육이나 제도가 아니라, 덕질이라 할만한 일상의 행위가 과학을 탄생시켰다. 평범한 직업인들로 구성된 ‘호기심의 공동체’는 밤마다 모여 실험을 나누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꼼꼼히 책으로 엮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돈을 대주는 곳도 없었다. 오직 오타쿠적 열정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집요한 기록들이 모여 과학이라는 인류 문명의 금자탑을 세웠다.


여전히 유효한 덕질의 가치


세기가 몇 번 바뀐 지금도 이러한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여전히 흥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흥미를 갖고 깊이 파고드는 사람만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를 ‘몰입’이라고 불렀다. 몰입은 외부 보상이 아니라 내적 흥미에서 비롯된다. 흥미는 시간 감각을 지우고, 피로의 한계를 넘어선다. 바로 그 상태에서 인간은 가장 창조적으로 사고한다.


보통 ‘덕질’이라는 말에는 비하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러나 덕질은 지적 탐구의 사유 구조와 그대로 닮아있다.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덕후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의미 생산자’다. 덕후는 대상을 반복적으로 관찰하고, 패턴을 분석하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이는 과학적 탐구나 학문 연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야구팬이 선수의 통계를 분석하고, 팝 마니아가 시대별 음향 기술 변화를 정리하며, 여행자가 한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기록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그 순간 이들의 행위는 이미 ‘자료화’ 단계에 들어선다. 취미가 사유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좋아하는 주제에 몰입하는 사람의 인지 구조는 4단계를 밟는다. 질문 → 탐색 → 정리 → 표현. 이는 글쓰기의 단계와도 일치한다. 질문은 주제를 세우는 일, 탐색은 자료를 모으는 일, 정리는 논리를 만드는 일, 표현은 글로 써내는 일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흥미를 느끼면 사람의 뇌는 ‘보상’ 대신 ‘계속 알고 싶다’라는 신호를 만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이해할 때 나오는 도파민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질만이 아니다. 그것은 호기심을 지속시키는 연료이기도 하다. 그래서 흥미가 생기면 피로가 줄고 집중이 오래간다. 이 상태에서는 작은 정보 하나에도 반응이 커지고, 기억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결국 흥미를 따르는 사람은 억지로 하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회로로 움직인다. 의지로 버티는 대신, 흥미가 스스로 동력을 만든다. 그들이 굳이 결심하지 않아도 다시 책상 앞에 앉고, 자료를 펼치고, 문장을 쓰는 이유다. 요컨대 흥미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사람이 배우고 쓰게 만드는 생리적 장치다. 이렇게 볼 때 “좋아하는 것을 쓰라”는 감성적인 조언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뇌에 가장 부합하는 행위다.


흥미를 설명하고 싶은 열망


오늘날 덕질은 그저 취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가 되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가 될 수 있다. 시대의 변화가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인터넷 플랫폼이 개인의 호기심을 기록으로 바꾸고, 기록을 지식으로 확장하는 시대가 됐다. 예전에는 연구자가 독점하던 정보와 분석 도구들이 이제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통계 데이터, 음원 차트, 전자책, 학술 논문, 뉴스 아카이브 - 모두 클릭 몇 번으로 접근 가능하다. 이제 개인은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지 않아도 ‘탐구’할 수 있다. 덕질이 학문 연구의 사적 버전이 된 셈이다.


덕질이 글로 이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흥미가 지속되면 자료가 쌓이고, 패턴이 보이며, 결국 해석이 생긴다. 그 해석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글로 이어진다. 요컨대 좋아하는 대상을 설명하려는 열망이 곧 글쓰기의 출발점이다. 이 메커니즘은 분야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작동한다.


야구는 덕후가 가장 쉽게 전문가가 되는 영역이다. ‘기록의 스포츠’라는 별칭처럼 다양한 기록이 특징인 종목이라서 그렇다. 즉 기록만 볼 줄 알면 여러 각도에서 게임과 선수를 분석할 수 있다. 특히 게임 이론과 통계학을 접목한 세이버메트릭스의 발달은 야구에 대중화의 혁명을 가져왔다. 방대한 경기 데이터가 모두 공개되면서 일반인도 통계 분석을 통해 전략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


김형준 기자는 이 변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는 원래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던 야구팬이었다. 새벽마다 중계를 보고, 경기 데이터를 분석해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덕질로 가득한 그의 글은 단순한 팬의 감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세이버메트릭스를 활용해,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가 되었고, 20년 넘게 글과 방송을 통해 야구 통계를 소개하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한 평범한 야구팬이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국내 최고의 전문가가 된 셈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니까 계속할 수 있었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이 말은 지식의 생산 원리를 정확하게 대변한다. 흥미가 지속을 가능케 하고, 지속이 축적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덕업일치, 새로운 작가의 탄생


팝음악에는 임진모 평론가가 있다. 그는 음악 덕질이 한 세대의 감수성을 기록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시작은 라디오였다. 십대 시절, 그는 방송에서 흘러나온 비틀스와 카펜터스의 곡을 들으며 감탄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이 덕질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늘 기록했다. 제목, 가수, 가사, 발매 연도, 프로듀서의 이름까지. 그렇게 어느 곡이 어떤 시대에 만들어졌는지, 그 곡이 당대의 정서를 어떻게 품었는지 메모했다. 이 습관은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원서를 읽으며 자신만의 곡 해석을 기록했다.


임진모의 ‘팬 노트’는 한 시대의 ‘음악 연대기’로 자라났다. 그의 평론에는 평범한 감상 대신 복잡한 사회가 들어 있다. 록의 저항은 시대의 분노를, 발라드의 서정은 1980~90년대 도시 청년의 외로움을, K팝의 산업화는 세계화 이후 자본의 흐름을 조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사회학 전공자로서 사운드 뒤의 시대정신을 읽어낼 줄 알았다. 그의 문장이 비평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사가 된 비결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가사를 베껴 적던 소년이 대중음악사를 서술하는 지식인으로 성장한 셈이다.


조승연 작가의 출발점은 언어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단어의 어원과 발음이 이동하는 경로에 집착했다. 낱말 카드에 어원을 적고, 지도에 화살표를 그려 문명의 이동을 표시했다. 외국어를 배우면 그 언어가 탄생한 도시와 무역로, 종교와 전쟁의 흔적까지 따라갔다. 이 집요한 ‘언어 덕질’은 세계사 노트로 확장되었다. 연표를 그려 문명 간 접점을 찾고, 한 문장 옆에 또 다른 문화를 끼워 넣어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조승연이 작가가 되는 데에도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결정적이었다. 다만 그는 학술연구가 아닌 스토리텔링을 택했다. 언어, 역사, 문화의 상관관계를 잇자 방대한 정보가 ‘줄거리’를 갖게 되었다. 그의 책이 쉽게 읽히는 이유다. 출발이 학자가 아니라 덕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좋아하는 주제를 친구에게 설명하듯 풀어내는 톤, 비유와 사례로 다리를 놓는 방식, 장과 장을 ‘클리프행어’처럼 이어 주는 구성. 이 모든 것은 지식보다 흥미가 앞설 때만 가능하다.


이슬아 에세이스트의 덕질 대상은 생활 그 자체였다. 버스 창가의 빛, 편의점 계산대의 한숨, 가족과 친구의 짧은 대화. 그녀는 사소한 장면을 메모로 포착하는 데 능숙했다. 그리고 원고 청탁이 오지 않자 아예 실험에 들어갔다. 하루 한 편, 정해진 시간에 이메일로 직접 보내는 연재. 분량은 짧게, 톤은 솔직하게, 관찰은 구체적으로. 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생활의 촘촘한 부분을 더 집요하게 보았다.


핵심은 유통 방식의 전환이었다. 플랫폼에 기대지 않고 독자와 일대일 관계를 맺었다. 구독은 단순한 결제가 아니라, “내일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약속이 되었다. 이 긴밀한 구조는 글의 품질을 끌어올렸다. 읽히는 대상이 뚜렷하니 주제가 선명해지고, 피드백이 즉시 돌아오니 문장이 단단해졌다. 무엇보다 그녀는 일상의 디테일을 연구자의 실험 노트처럼 기록했다. 작은 감정의 결도 놓치지 않는 태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는 기술, 그것을 독자의 삶과 접속시키는 문장. 이 세 가지가 그녀의 성공 비결이었다. 이슬아라는 브랜드는 일상 덕질이 하나의 창작 비즈니스로 지속 가능함을 증명한 사례다.


쓸모없는 흥미의 위대함


우리는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밤새 뭔가를 파고들다가, 갑자기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는 일.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 “야 이놈아, 그게 밥이 되냐, 돈이 되냐?” 하지만 그때 우리가 하던 일은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순간이었다. 밥과 돈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일 뿐이다. 그 위에 의미를 쌓는 일, 그것이야말로 글이다.


좋아하는 일을 향한 몰입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남들 보기에 사소한 취미라도, 그 안에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언어로 옮긴다면 당신은 이미 작가다. 작가란 특별한 사람들만 갖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미국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라는 연구기관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가 연구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의 초대 소장을 지낸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는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라는 책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과학의 위대한 발견들은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호기심 기반의 탐구에서 나왔다. 과학자는 쓸모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야 하며, 오히려 그 쓸모를 모르는 채로 탐구에 몰입해야 한다.” 실제로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자기학은 실용성과 무관한 순수 이론으로 시작되었지만, 전화와 라디오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의 정수론도 훗날 컴퓨터 암호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이렇듯 ‘쓸모없는 지식’이야말로 오랜 시간을 지나 가장 근본적인 쓸모를 발휘한다는 믿음이 플렉스너의 지론이었다.


그러니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이 강조하는 효율을 내려놓고, 당신의 흥미를 끝까지 파고들면 된다. 플렉스너가 말한 ‘쓸모없는 지식’이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듯, ‘쓸모없는 흥미’ 또한 새로운 언어를 낳을 것이다. 글쓰기란 자신이 사랑하는 세계를 가장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끝까지 탐구하는 집요함이 사유를 깊게 하고 문장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덕후의 글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미 한 세계를 끝까지 살아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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