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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흔해진 시대에 한 권을 더한 까닭

『연구소의 승리』 출간에 부쳐

by 배대웅

소식부터 전합니다. 제 신간 『연구소의 승리』가 출간됐습니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 이후 1년 10개월 만에 나온 두 번째 책입니다. 제목보다는 부제가 이 책의 방향을 잘 말해줍니다. “연구소는 어떻게 과학을 발전시키고, 산업을 키우며, 사회를 바꾸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2년간 세계의 연구소를 추적하고, 그들의 흔적을 기록했습니다.


제 브런치를 구독하는 많은 분이 이 책의 초고를 읽어보셨을 겁니다. 바로 작년 초부터 올해 중반까지 연재한 <연구소가 만든 역사> 매거진입니다. 당시 한 편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댓글로 감상과 비평을 남겨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꾸준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감사의 글’에는 브런치에서 함께해 주신 여러 작가님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에서도 감사의 글을 썼지만, 그때는 필명으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작가님들의 실명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지난 시간 많은 작가님과 구독이 아닌 동료로서 이어진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김예은, 김정현, 김하진, 라이진, 류제욱, 박상진, 박정옥, 신정애, 이소희, 윤이창, 장주희, 전윤희, 최경미, 최재운, 태지원 작가님 -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책을 내면서 고민도 들었습니다. “요즘처럼 책이 흔해 빠진 시대에, 내 책 한 권을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급격히 줄어드는데, 책을 내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의 시대가 열리면서 누구나 쉽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된 까닭입니다. 이 작가들은 SNS에나 어울릴 법한 문장들을 책으로 포장합니다. 그 내용 또한 천편일률입니다. 위로와 공감이라는 미명 아래 공자님 말씀처럼 뻔한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저는 책으로 다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사유의 활로를 여는 일입니다. 책의 본령은 감정의 진열과 소비에 있지 않습니다. 책은 지식을 더하고 사유를 심화해야 합니다. 『연구소의 승리』도 이 목적에 충실합니다. 이 책에서 저는 과학과 연구소라는 두 개념을 통해서 인식의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이 키워드들이야말로 인류문명이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는 지금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해석적 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근대 이후 세계가 과학의 지식을 제도화해온 방식을 탐구합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협회,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미국의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와 NASA, 그리고 한국의 KIST까지. 이곳들은 과학의 연구공간만이 아니라, 국가의 비전과 시대정신을 만들어낸 지적 엔진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역사를 따라가며 “과학이 어떻게 사회를 설계했는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 책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기획에는 있었지만 제 역량의 한계로 빠진 내용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적인 성실함'만큼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근대와 현대, 서양과 동양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기록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소의 설립 문서들을 찾아 읽으며, 그 시대의 정치·경제적 배경도 함께 확인했습니다. 서술의 연결고리를 확보하고자 정부의 공식 문서, 연구소의 정책보고서와 기관사 자료, 과학사가들의 전기, 평전, 논문 등을 교차 검토했습니다. 그리하여 쓰려는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는지, 시대의 맥락과 맞물리는지 검증했습니다. 요컨대 이 책은 화려한 수사보다는 사실로 세운 책, 감정의 흐름보다는 논리로 다진 책입니다.


저는 첫 책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내면서 다짐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글보다, 한 사람에게라도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겠다.” 세계 연구소의 제도사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다룬 이 책을 통해, 그때의 다짐을 재확인합니다. 책이 흔해진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선명한 사유의 구조를 세워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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