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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02. 2021

내 이름을 불러줘

그저 나로 살면 되는 일이다

엄마는 얼마전에야 이름을 찾았다.

우리 엄마 이름은 장귀례.

엄마는 늘 '현주엄마'였다. 엄마라는 호칭앞엔 내 이름이 붙어다녔다.

그랬던 엄마가 드디어 엄마이름을 찾았다.


집안의 모든 통장이 아빠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걸 나는 얼마전에야 알았다.

왜 그랬는지 난 엄마한테 화를 냈다.

여지껏 자기통장 하나 없이 어찌 살았냐고.

왜 같이 고생해놓고 억울하지도 않냐며 악다구니를 쳤다.

진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내 이름과 함께 살아온 것이 한두해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화가 난 이유를 .

돈이라는게 개입되어 더 민감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동안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불리운 댓가가 자기명의로 된 통장하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로만 살기를 고집했다.

아주 잠시동안 부모님그늘에서 감옥처럼 살때조차 나는 나를 놓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싸웠었다.

결혼을 해서도 부모가 되어서도 누군가 내 이름이 아닌 다른 호칭을 쓰는게 몹시 불쾌했다.

학부모 모임에선 자연스럽게 누구엄마로 부른다.

아이가 중심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겠지만 이상하게 난 그런 호칭이 익숙치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자기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진데 나는 유난을 떨며 내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랬다.


함께 운동하며 어울리는 동생들이 몇있다.

그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언니'다. (씁쓸하지만 내가 그 중 나이가 젤 많다.)

당연히 내게 그녀들은 그녀들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그 중 한 친구는 친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름을 불러야 할 일도 있으니

조심스레 이름을 물어봤다.

'찬이엄마'란다.

아니 애 이름말고 니 이름말야...

자긴 '찬이엄마'가 더 좋단다.

갑자기 뒤통수를 암팡스레 맞은 듯 했다.

그랬다. 그녀에겐 그 이름이 자신의 이름보다 그저 더 좋았을 뿐이다.

여전히 난 그녀의 실제이름을 모른다.


내 이름만을 고집하고 프로필 사진에 아이 사진 넣은 걸 자신을 잃는 거라며

경멸하던 나는 얼마나 편협한가.

누구로 불리건 '나'는 나일뿐인것을 겨우 이름하나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내가

잔망스럽기까지 하다.


호칭은 여러모로 나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결혼도 안한 사람인것 같은데 여사님이란 호칭을 쓰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누구씨로 부르면

내 일이 아니어도 흥분하기 일쑤였다.

웃어넘겨도 될 수많은 호칭에 뾰족하게 굴면서 짚고 넘어가려 했었다.


엄마는 어쩌면 내 이름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을수도 있었다.

아빠의 아내인게 때론 편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엄마는 나의 보호자로 낳고 품으며 지켜왔고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반자였음을

나는 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정작 엄마를 힘들게 했던건 매사에 조금도 희생되지 않으려는 나의 바락이었을지도 모른다.


얼마전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찾았다.

내게 자랑하듯 '장귀례'라는 이름이 씌여진 통장을 내보였다.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며 엄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든 아이처럼 해맑았다.

잘했네...잘했어....


누구나 '나'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건 호칭의 문제가 아닌 스스로 판단할 문제일 뿐이다.

그토록 호칭에 집착했던 나도, '찬이엄마'로 불리길 바랬던 아는 동생도,

반평생을 '현주엄마'로 불려온 우리 엄마도 모두 자기방식대로 자신을 사랑하며 '나'답게 살고 있었다.

오늘 엄마가 좋아하는 닭강정을 보내드려야 겠다.

엄마.....

현주엄마로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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