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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쟁이 Jul 14. 2022

10. 설계3.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썼다 지우고, 그렸다 지우고, 쌓았다 지우고

네 차례의 지난한 변경 과정을 거쳐 설계를 완성해냈다. 이 과정을 이렇게 한 줄로 써놓기 미안할 정도다.  

첫 평면도가 나오기 전날, 심지어 잠까지 설쳤다. 이렇게나 떨리고 설렐 일인가. 얼마 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인지 스스로 어이없어 웃음이 다 났다. 합격 불합격 판가름 나는 날도 아닌데 너무 궁금해 죽겠는 거다. 시간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이메일을 열어봤던지.

그렇게 완성된 전체적인 집 구성과 변화 과정들, 각 세대별 특징들을 대략 정리해본다.


전체 구성

처음부터 딱 정해놓은 기본 틀은 있었다. 1층은 우리가 직접 운영할(엄밀히는 우리 부부가 막내에게 세를 얻을) 작은 가게와 가족 공용공간을 들일 것. 2층, 3층은 단독가구, 4층과 다락은 두 가구가 들어갈 것. 그 외의 많은 것들은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아니, 계속 조금씩 바뀌어 갔다.

처음에는 자매들 나이순으로(어쩌다 보니) 2층 막내네, 3층 넷째네, 4층과 다락은 셋째와 우리가 나눠 쓰는 구조였다가 설계 첫 단계에서 셋째네와 넷째네가 서로 층을 바꾸게 되었다. 위치가 바뀌면서 그 안에서 구조도 크게 변했다.

결론적으로 1층은 가게와 가족 공용공간, 2층 전체는 막내네집(201호), 3층 거의 대부분은 셋째네(301호), 4층과 다락은 넷째네(401호)와 우리집(402호)이 반쪽으로 나눠 쓰되, 3층 일부는 넷째네가 들어간다. 두 집은 단층 구조, 우리는 복층 구조, 넷째네는 내부에서 3개 층으로 나뉜 기묘한 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말이나 글로는 설명이 좀 어렵지만, 그렇게 되었다. (나중에 직접 와서 본 사람 중에서도 다 돌아다닌 후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1;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더라

주변 건물들을 다 둘러봐도 1층 상가는 대부분 높고 넓었다. 적어도 25~30평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 카페나 음식점들이 들어섰고,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작은 배달음식점 두 개씩 입점한 곳도 있었다.

우리는 1층을 외부인에게 임대줄 계획이 없었기에 직접 활용하기 적당하게 구상했고, 대략 15평 정도의 공간 확보가 맥시멈이었다(1층 구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정리할 예정임).

자꾸 마음에 걸리는 면적이라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다 짓고 나서야(결국 완성했다! ㅎ)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큰 장점을 발견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계단실 아래 생긴 공간은 자연스럽게 창고가 자리잡고, 엘리베이터 뒤쪽으로 생긴 공간에도 창고를 넣었다. 제부 S가 노래부르던 창고가 충분할지는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보기.

1층의 백미는 뒷마당이다. 애초 마당 넓은 전원주택의 꿈을 접고 시작한 일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뒤쪽 공간에 길게 만든 화단과 데크가 공원과 맞닿아 그냥 뒷마당처럼 되어버렸다. 철재로 공원과 주택 사이에 1미터 정도 높이의 경계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시야를 가릴 정도는 아니다.

시골 우리집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뒷마당 삼듯, 파주 우리집은 운정건강공원을 뒷마당 삼게 됐다. 평면도에는 표현되지 않지만 북동쪽 경계 너머가 그대로 공원에 이어진다는 것은 가장 큰 수확이기도 했다.


2; 막내, 하고 싶은 건 다 해봐

2층은 통으로 온전하게 막내네 집이다. 거실의 벽난로와 안방에 딸린 운동방이 중요한 아이템인 집. 널찍한 드레스룸에는 스타일러와 세탁기, 건조기까지 들여놓아 본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한껏 맞췄다. 안방과 화장실 사이 운동방의 위치를 그렇게 말렸건만(많은 사람들이 운동방과 드레스룸 위치를 바꾸기를 권유함) 그들의 뜻대로 고수! 러닝머신을 뛰고 나서 씻고 바로 게임을 하다 잠잘 수 있는 구조랄까.

사실, 집을 지으며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는 게 맞는 거다.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오로지 우리 가족만을 위한 집. 이제 웬만해서는 이사도 못하고 평생 살아야 하므로 자녀가 커가면서 변하게 될 라이프 스타일까지 고려해야 한다. 어려워도 각자 최선을 다해 5년 후 10년 후를 상상해가며 집을 구상했다.

약 39평 정도의 201호는 침대가 양쪽으로 놓인 안방, 운동방(겸 컴퓨터방), 자녀방1, 자녀방2, 드레스룸, 화장실 2개로 구성했다. 거실에서 좌측 끝으로 테라스를 두 평 남짓 빼내 살짝 변화를 주었다.

거실 한 켠에 화목난로가 놓이고 바로 옆으로 주방으로 연결되는 부분에는 아일랜드를 넣어 식탁에서 전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4층까지 거의 동일한 구조는 공원 쪽으로 널찍한 거실과 주방을 일렬로 배치한 것뿐이라 할 수 있다. 대신 4층은 일조권 확보 때문에 면적이 좀 줄어든 형태다.


3;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

대부분의 공간이 301호 영역이지만 3층 정면부(도로쪽) 한켠으로 8평 정도는 401호다. 아무리 고민해도 4층의 면적이 부족해 401호의 자녀방 2개와 화장실 1개가 3층으로 내려오게 됐다.(4층에서 다시 설명)

301호는 32평 일반적인 아파트의 구조와 가장 비슷한 편이다. 거실과 주방, 안방 안에 화장실과 드레스룸이 있고, 공용화장실, 복도를 지나 자녀방 2개가 자리잡는다. 조금 특이한 사항은 현관 입구 신발장 공간이 좀 넓은 편이라 펜트리형 다용도실을 넣었고, 화장실 옆 빈 공간엔 세탁실이 자리잡았다.

안방 화장실에는 사우나 시설을 계획했고(설계도에는 있으나 나중 시공 과정에서 없앴다), 안방과 자녀방 사이 드레스룸이 따로 있었으나 설계 변경 과정에서 분리해 안방과 자녀방에 편입시켰다. 결과적으로 안방 드레스룸이 줄어들었고, 자녀방 크기와 수납이 늘었다. 고1(당시 중3) 조카의 로망이 한껏 반영된 301호다.

애초 제부 D의 로망이었던 넓은 거실은 대체로 구현되었는데, 그 ‘넓다’라는 기준이 모두 달라 100% 만족스럽지는 않은 듯했다. 셋째의 주방은 완벽한 화이트에 상부장 없는 형태, 계획 단계부터 가전제품도 일렬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배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4; 복잡한 듯 재밌는 듯 효율적인 공간들   

쪼개기의 묘미(혹은 안간힘?)가 살아나는 공간들이다. 나의 주요 서식지가 되는 곳이기도 한. 평면도를 보며 현장에서 혹은 우리집 주방과 거실에서 레이저 자로 수십 번 길이와 폭을 재보고 괜찮을까, 너무 좁지 않을까 걱정하다 위안삼다를 반복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4층은 우선 시원하게 반으로 갈랐다. 살짝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으나(401호와 402호 메인이 되는 단층 평수가 적어서) 적당히 잘 갈라서 평면들을 앉혔다.      

401호는 4층 중심에 거실과 주방을 두고 다락방과 터서 층고를 높였다. 공용화장실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아이들과 아빠가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의 조적욕조를 넣은 거다. 다락층을 부부 침실로 활용하는 대신 4층 화장실 옆의 방은 드레스룸으로 계획하여 그 안쪽에 세탁실과 보일러실까지 들였다. 드레스룸에는 청소기, 스타일러가 모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 씻기, 빨래, 외출하기 전후 준비에 효율성을 갖췄다.

401호에는 계단이 둘이다.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말고도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3층에 아이들 방 둘이 나란히 있고 계단 아래로 화장실이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도면만 보고서는 도저히 방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아, 가장 걱정되고 기대되던 공간이다.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덕에 하나 더 생긴 공간은 301호에도 있다. 계단 경사 부분 아래에 사람이 겨우 기어 들어가 앉아있을 만한 공간은 재미거리를 더했다. 아이 놀이방으로 꾸미느니 뭐 이런저런 계획들이 많았는데 301호 주인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했다. “거긴 창고다 창고. 뻔하네!”     


402호는 우리집이다. 우여곡절 끝에 스무 평이 채 되지 않는 4층 메인 공간에 거실과 주방, 세탁실, 안방과 작은 드레스룸을 넣었고, 결국 화장실은 하나로 끝냈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공간이 제법 넓어 부족한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다락은 바닥 평수로 열 평이 넘어 메인 공간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편이었다. 경사 지붕이라 높이가 걱정되긴 했지만 아이 방으로는 부족함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과감하게 아이에게 내줬다. 다락 전체를 통으로 아이 방으로 쓰기로 한 것. 사실, 우리 부부와 아이 공간을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일상생활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아 포기했다. 처음에는 다락에 미니 주방과 화장실을 넣고 싶었으나 불법(편법?)이기도 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미련 없이 포기했다.


4층에는 401호와 402호 서쪽으로 전체를 걸치는 길다란 베란다도 생겼다. 특별히 계획하지 않았으나 일조권 때문에 옆집과의 거리를 둬야 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1미터 남짓 폭의 긴 베란다 사이에 가림막을 할까 말까, 막으면 무엇으로 어떻게 막을까도 고민 대상이었는데 나중에 덩치 큰 에어컨 실외기들이 자리 잡으며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사실상 401호와 402호는 넘나들 수 있는 구조다)    

401호와 402호 두 다락방 사이에 옥상도 겨우겨우 마련했다. 이곳 역시 양쪽 집으로 나눠 편입하느냐 공용의 옥상공간을 만드느냐 사이에 고민이 많았다.

결국 4층에서 계단을 통해 공용의 옥상 공간으로 올라가도록 최종 합의했다. 엘리베이터는 4층까지만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명이 모두 모이기는 조금 비좁긴 하지만 그래도 옥상 공간에 거는 기대가 컸다. 1층 야외 공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에 조금 더 간절했던 것도 같다.

거기에 텐트를 치느니, 바비큐 공간을 만드느니, 옥상정원 혹은 텃밭을 가꾸느니, 제각각의 야무진 꿈과 계획이 난무하기도 했다.  


뭐든 하다보면 조금씩 부족하다. 그동안 열 번 넘게 이사할 때마다 아쉬웠다. 창이 한 뼘만 더 컸으면, 화장실에 욕조가 있었으면, 방이 따로 있었으면.

돈은 늘 부족했다. 처음 집을 얻을 때는 딱 천만원만 더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더니 그 다음엔 삼천만원쯤 더 있었으면 했다. 처음 분양이라는 걸 받은 10여 년 전에는 나에게 1억이라는, 여태 만져보지 못한 그 돈만 더 있으면 걱정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언제나 꾸준히 욕구는 불어났다. 다섯 평 원룸에 살 때보다, 열세 평 투룸에 살 때보다, 서른 평 아파트에 살 때 더더욱. 물론 집이 조금씩 커질 때마다 만족스러운 면도 많아졌지만 그 끝이 없다는 것은 진즉 알아버렸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무한 괴리를 극복하고 타협하는 일이다. 끝간 데 없이 상승하는 욕구를 누르고 또 눌러가며 우리의 정해진 네모난 땅에 들어가도 되는 만큼만 적당히 잘 담아내는 일. 그 시작인 설계도가 200% 맘에 들었기에 이젠 그저 땅 파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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