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
교양작가로서 이 직업을 택하길 잘했다
생각되는 땐..
깊이 있는 출연자들을 만났을 때다
촬영 현장을 나가지 않는 탓에 직접 만나진 못해도
전화통화로, 촬영본으로 그들을 만난다
그러면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살아온 인생을
아주 압축적으로 보고 듣는다
어쩌면 만나지 않기 때문에 피디보다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40대 때 아내가 쓰러져 오랫동안 병수발한 남편..
사실 간병하다 보면 짜증 한 번 낼 법 한데
일주일 넘게 24시간 동안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아저씬 찡그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관찰카메라를 내내 돌리는 경우,
2-3일 지나면 출연자도 익숙해져서
카메라 의식을 안 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런데.. 사연을 깊게 듣는 인터뷰 도중에도 그랬다
눈가가 붉어지는 일조차 없었다
촬영본을 보던 난 피디를 쪼았다
아내가 처음 난치병 진단 받았을 때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가는 걸 지켜봤을 때
심정이 어땠는지 분위기 잘 잡고 다시 물어보라고..
이거 너무 슬픈 사연인데 남편이 울질 않으니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이 되겠냐고..
이후로 피디가 몇 번 더 사연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
그러다 깨달았다, 나의 어리석음을..
아저씨가 줄곧 했던 이 말을 무시한 것이다
“내가 울면 아내가 슬퍼해서 안돼요.
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촬영 편집 더빙까지 모두 마치고
팀원 전체 모여 방송 전 모니터 하는 날
모니터가 끝나고 모니터 평을 한 마디씩 말하는데
엉뚱하게 내가 울컥하고 말았다
아저씨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하나 있는데
내 주변 사람이 건강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 건강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흐흐윽..
그리고 나중에 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분에게
이때의 내 어리석음을 고백하는데 그러시더라
눈물마저 다 말라버린 슬픔도 있는 거라고..
아직은 어리고 어리석은 나는
그만큼의 슬픔을 가늠조차 못한다
그래도 아저씨 덕분에
지금도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들
모두가 건강해서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