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완이었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진 24시간이 지났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떨어뜨린 것은 확실한데, 누군가 가져가 버렸는지 전원이 꺼지고 켜지길 반복한다. 3년 가까이 사용한 샤오미 포코폰 1세대 폰. 가성비에 만족하며 사용하던 기계라 아쉬운 것은 없는데, 일상생활이 참으로 곤란해졌다.
나름 보안이나 개인 정보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얼마나 많은 정보를 '편의성'을 명분으로 그 작은 기기에 의존하고 사는지 피부로 느끼는 이틀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작은 기계이지만, 그 뒤의 거대한 자본 시스템에 나의 많은 것들을 의탁하는 신세였다. 핸드폰을 잃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나'라고 증명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인증방식이 핸드폰 소유 여부에 깔때기처럼 부여되어 있었다.
곤란 1) 분실한 핸드폰을 찾으려면 핸드폰이 필요하다!
분실 후 처음부터 당면한 모순이다. 통신사 웹사이트를 통해 분실신고까지는 성공했다. GPS가 꺼져있어 구글 계정을 통한 위치 추적은 불가능했다. (배터리 용량 확인과 소리 재생은 한번 성공하기도 했다.)
통신사를 통한 위치추적도 결과적으로 본인 명의 휴대폰이 필요하다. 핸드폰이 없다면 카드사를 통한 인증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만, 분실을 예상하지 못한 나는 카드사 아이디에 인증 등록을 해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새로 인증 연결을 하면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사용했던 공인인증서... 언제가부터인가 OPT도 무엇도 귀찮아진 나는 간편 인증이 가능한 모바일 뱅킹만 사용하게 되었다. 인증서를 등록하려고 보니, 한 달 전에 만료되었다고 한다. 인증 실패, 위치추적 실패
곤란 2) 은행 웹사이트에서 공인인증서 발급받으려면 휴대폰이 필요하다
로그인에서부터 막힘...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비밀번호 재설정 --> 마지막 단계에서 인증이 필요하다. 무엇으로? 본인 명의 휴대폰...
곤란 3) 임대폰을 신청하려면 ARS 확인이 필요하다
나는 혼자 사는 사람... 임대폰 대여도 실패...
곤란 4) QR체크인, 백신 패스 인증은 모바일 인증
백신 미접종자의 서러움을 이렇게 체험해 본다. 체크인이 가능하던 이틀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일들이 불가능해졌다. 궁여지책으로 챙겨간 아이패드의 네이버 인증은 모바일 인증이 안되어서 백신 접종 정보를 불러올 수가 없었고, 결국 약속이 있었던 가게에서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좀 서럽다.
곤란 5) 종이 예방접종증명서를 자가 발급하려면 휴대폰이 필요하다
내일도 식사 약속이 있다. 포기할 수 없다. 종이 인증서를 정부 24에서 발급받으면 된다고 한다. 비회원 발급도 가능! 아주 순조롭다. 마지막 단계... 인증이 필요하다. 카카오 인증 시도해본다. 피씨 카톡으로 인증 지갑이 날아왔다. 드디어 성공인가?....
'모바일에서 확인하세요.' 젠장. 월요일에 주민센터로 가야겠다...
생계비용, 노동, 노후, 의료... 보장되고 안전하길 바라는 삶의 많은 영역들은 늘 불안한데, 이런 자기 증명에 대한 보장과 보안만은 참 철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하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개인 정보와 재산마저 도용당할 수 있는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인 것을 고려하면, 방어적 시스템에 대한 보안이 철저하다고 해야 하나. 역시 최고의 방역 국가다!
그 철저함에 납득이 가면서도 어쩐지 굉장히 화가 났다...
핸드폰이 없는 사람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 정보와 인증 시스템에 접촉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보와 지식이 자본이 되는 사회에서 웹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이들이 사회적 최약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애초에 인증이 필요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도시의 시스템에 종속된 사람들이라면 이 시스템에 배제당하는 매일의 불편함을 어떻게 참아내고 있을까? (2020년 기준, 대한민국 도시 거주 인구는 91.80%이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쉽게... 편리함을 위해 동의하고 의존하기 시작한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 불편이기 때문에, 어쩌면 큰 차이가 없는 불편일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꼭 필요한 순간에 자기 증명이 안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마이그레이션의 수준이라면 견딜만할 것 같은데, 현재의 시스템은 더 이상 이 운영체계는 호환 불가능하다는 사망 선고와 같은 수준으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만 같다.
현재 내 유일한 연락책 - 랩탑 카카오 보이스톡으로 엄마와 통화했다. 웬만하면 흥분하지 않는 울 엄마도 분개하며 거들었다.
"세상이 온라인으로 범벅이 될 때, 살 날 얼마 안 남았으니 그냥 잘 버텨보려고 했지. 그런데 이제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가 우리 또래 표어가 되었어. 하다못해 AS 신청도 온라인으로 하라고 하니, 할 수 있는 게 없어. 하면 뭔가 낫니? 5년 된 기계는 부품도 없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소모품이 된 거냐. 그러면서 정부에서는 환경정책을 한다고 하니, 애초에 이렇게 지나치게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부터 잘못된 거 아니니. 그러면서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한다느니... 사후약방문 격이다. 이제는 살아갈 수가 없어서라도 악착같이 스마트폰 수업을 들어야 할 판이다!"
거대한 시스템이 다수를 대변한다는 믿음. 시스템이 다수의 유익을 위해 작동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따르는 것일까? 그런데 어째서 그 효력은 주변에서 발견하기 어려울까.
그렇지 않다면, 남들이 다 하니깐... 하지 않으면 욕을 먹을 것 같아서, 하지 않으니 손해가 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까.
언제까지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아야 할까. 이것은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파블로프의 개로 길들여진 애완 시민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반성... 믿음에 대한 실체를 검증하려는 노력을 거부하는 게으른 인간으로 자라난 내가 부끄럽다. 월월...!
이런 담론이 오갈 때면, 엄마와 나의 세대 이야기를 담은 책
[애완의 시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