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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Jan 13. 2024

의무와 호의

그리고 배려에 대해

남이 나에게 적절한 의무를 다해주는 것은 물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의무란 주어진 일에 충실하다는 의미일 뿐 인간을 상대로 하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의무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고맙게는 여기지만, 나에게 의무를 다했다고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는 어렵다.(중략)
하지만 그것이 만약 호의라면,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목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나에게 반응한다. 거기에는 서로를 잇는 따스한 끈이 있기에 기계적인 세상이 미덥게 느껴진다.

        <나쓰메 소세키 인생의 이야기>중에서 (p.86~87)


<나쓰메 소세키 인생의 이야기>를 읽다가 한참을 머무른 단어가 의무와 호의였다. 동시에 머릿속에 6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반짝 떠올랐다. 나는 그때 의무였을까? 호의였을까?


두 번의 폐암 수술 후 회복하시는 듯했지만 2017년 9월부터 급격히 암세포가 퍼져서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다. 일상적으로 걷기도 힘들어지신 상태여서 방사선 치료를 매번 모시고 다녀야 했고, 운전도 가능하고 전업주부였던 내가 아버님 담당이 되었다. 계속되는 치료와 많은 검사로 병원에 가는 일정은 점점 늘어갔다. 처음에는 아버님  팔을 부축해서 주차장에서 치료실까지 이동했다. 아버님은 부쩍 수척해지셔서 팔다리는 가늘어지셨지만 나보다 20 센티는 더 크신 분을 부축하기 쉽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부축을 해도 걷질 못하셨고 주차장에자꾸 주저앉으셨고 병원 입구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 휠체어를 가져오면서 솔직히 지치던 날도 많았다.


그때의 나는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이가 안 좋으신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칼국수 맛집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며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다. 생각해 보니 아버님과 둘이 식사를 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늘 다른 가족들과 함께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나만 의지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아버님이 드시기 좋게 칼국수를 호호불어 식히고 티슈로 입가를 닦아드리며 마음엔 의무가 아닌 '호의'가 자리를 잡아갔다. 아버님이 불편하시지 않게 마음을 쓰게 되고 그 마음엔 측은지심이 자라나 내가 보지 못한 그분의 인생이 전부 안쓰럽게만 보이며 뭔가 아버님과 이어지는 끈이 만들어지고 있4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결국 입원을 하셔서 매일 막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병원을 갔다. 병원에서 밤을 보내신 어머님과 바통터치를 하고 아버님을 돌봐드렸다. 숟가락도 드시기 힘드시니 한 숟가락씩 틀니 사이로 밥을 넣어드리면서 조금만 조금만 더 드시라고 아이 달래듯 부탁을 하그즈음엔 호의가 의무를 넘어서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님은 길게 자식들을 고생시키시지 않았다. 그해 겨울 눈이 하늘하늘 내리던 날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힘드시냐고 묻던 내게 괜찮다고 손을 흔드시던 모습이 마음에 아프게 남아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아버님이 꿈속에서 보인다. 마르고 홀쭉하신 모습의 아버님이 계속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의무만 있었다면 난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돌아보면 내게 생긴 호의의 크기는 아버님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상황도 나빠지고 기력도 없으시면서도 늘 고마워하시고 미안해하셨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으신 모습엔 며느리에 대한 존중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의무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겐 특유의 무례함이 배어있다. 그들은 부모로서도 자식으로서도 자신이 받아 마땅한 일에만 집중하며 타인과 비교하기 일쑤다. 다른 부모가 사준 아파트 평수와 자신의 집을 비교하고, 다른 자식이 준 용돈과  자신의 용돈을 비교하고 상처를 준다. 당연한 것을 요구하듯이 쉽게 무례해지는 사람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가족이니 마땅히 자신을 부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는 배려가 사라진다. 자신의 고통이 앞서면서 가족들의 불편이 사소하다고 일축한다. 그 후엔 누구나 호의보다는 의무만 남게 되고 '서로를 잇는 따스한 끈'은 물질적인 것으로 대체된다.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었지만 늘 배려하시고 자신의 힘든 고통을 한 번도 짜증스러워하지 않으시던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 귀하게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분이 내가 모르던 시절 어떤 삶을 사셨건 떠나는 모습에서 보여준 마지막은 마치 그의 인생을 통째로 본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


지금도 며느리로서, 자식으로서 의무를 다하려고 애쓰고 있다. 거기에 부모로서의 의무까지 더해져 늘 시간에 허덕이지만 괴롭지는 않다. 그들에게 의무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성실히 키워주셨던 부모님에게나 최선을 다해 자신의 성장을 이루고 있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의무보다 조금 더 무거운 호의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가 꼭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 자식들에게도 마지막에 아버님처럼 배려와 따스함으로 기억될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삶만큼 중요한 죽음에 대해 의무와 호의라는 주제보다도 무겁게 다가가 보는 입주작가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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