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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a Feb 02. 2024

의무와 호의 2

그리고 진정성에 대하여

의사는 직업이다. 간호사도 직업이다. 예를 다하면 보수를 받는다. 공짜로 보살펴주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금전을 얻기 위해 의무에 충실할 뿐이라고 해석하면, 참으로 기계적이고 아무런 멋도 없다. 하지만 그대들의 의무 속에 반쯤의 호의를 녹인 다음 환자의 눈에 비춰 보면, 그들의 몸짓이 얼마나 고귀한지 모른다. 환자는 그들이 주는 한 점의 호의에 의해 금세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 인생의 이야기> p.89


4주 동안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갔다. 꽤 오래 살아왔지만 이런 경험은 흔치 않다. 2023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의 마지막 날이 공교롭게 일요일이었고 펄펄 열이난 채로 갔던 응급실에서 A형 독감을 진단받고 갖가지 검사를 마친 후 약을 한봉다리 갖고 나올 수 있었다. 독감 후유증은 꽤나 길어서 약을 끊었다가 외래 진료를 받고 다시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그렇게 4주 차에 접어들면서 마지막 약을 먹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늘 그렇듯 아침 상을 어떻게 차릴지 새벽에 눈을 슬그머니 뜨고  냉장고 속 재료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쪽파와 당근을 잘게 다져서 계란말이를 하고, 엊그제 김밥에 넣고 남은 어묵을 길게 썰어서 양파와 양배추를 넣고 볶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벌떡 일어나 앞치마를 두르고 착착 재료를 꺼내놓은 후 제일 먼저 쪽파를 다듬고 잘게 다진 지 3초도 지나지 않아서 섬뜩한 느낌에 칼을 놓았다. 파를 잘 잡고 집중했어야 할 왼손 엄지손가락이 정신줄을 놓고 방심했다. 피가 뚝뚝 흐르는 찰나 얼른 티슈로 상처를 꾹 누르고 밴드를 꺼냈다. 사실 정신줄을 놓은 건 엄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며칠 내내 정신줄을 놓고 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라는 신호같았다.


빨리 밴드를 감고 아침을 차리려고 서둘렀는데 밴드는 빨갛게 물들고 그 사이로 금방 피가 흘러내려서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한 채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밴드를 서너 개 붙이고 떼기를 반복하면서 20분을 보내다가 잘려나간 상처의 피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잠에서 깬 남편에게 말하고 응급실로 갔다. 손가락이 잘린 것도 아닌데 그 조그만 상처가 아프고 계속 흐르는 피도 걱정이 되었다. 응급실에서 상처를 본 의사 선생님은 꿰맬 수도 없고 그저 새 살이 차오르길 기다려야 한다며 잘려나간 부위를 가져왔어도 꿰매긴 힘들었을 거라는 무서운 이야기도 했다.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약을 잘 먹어야 하고 절대 물이 닿으면 안 되 집안일도 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고 남편을 보며 얘기하시는 몸집 좋은 남자선생님 때문에 슬쩍 웃음이 났다. 2주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응급실로 와서 소독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파상풍 주사까지 맞은 후 커다란 습윤밴드를 붙이고 커다란 엄지가 되어 응급실을  나왔다.


진료 예약을 확인하는데 다음날로 잡혀 있어서 또 응급실로 갔다. 피가 잔뜩 엉겨있는 상처를 간호사 선생님이 풀고 처치실에 앉아 있었다. 응급실에서는 대기하는 시간이 틈틈이 많다. 열려있는 처치실 문 뒤로 분주히 오고 가는 여러 선생님들과 눈이 마주쳤다. 응급실에는 느긋한 걸음걸이는 보기 힘들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자그마한 상처를 들여다보며 그래도 지혈이 되었고 잘 낫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도중에 어제 상처를 보셨던 몸집 좋은 의사 선생님까지 오셨다. 몸을 한껏 낮추고 엄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며 혹시 밤새 피가 나서 드레싱이 젖지는 않았냐고 물어보셨다. 그렇진 않았다고 말씀드리니 피가 멈춰서 다행이라며 또 이틀뒤에 오라고 하셨다.


이틀 뒤 치료받기 싫어 늦장을 부리는 오전에 막내와 남편이 어서 가서 치료받고 오라며 재촉했다. 며칠 째 설거지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남편은 슬슬 지치는 기색이었다. 계속되는 '사건 사고'에 지칠 만도 했다. 집을 나서서 응급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한동안 호출이 없었다. 출입구 안쪽으로 119 대원들과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곳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나 망설이는 중에 간호사 선생님이 나오셔서 불렀다. 응급실 끝 침대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또 처치실에 들어가니 간호사선생님이 드레싱을 풀고 위독한 환자가 있으니 기다리라고 하고 나가셨다. 아까 보였던 환자가 바로 그 위독한 환자같았다.


응급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셨을 때 이제 좀 나았으니 집에서 잘 소독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왜 그러냐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바쁘신 응급실에서 이런 치료를 받고 있는 게 마음이 불편해요 선생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차가운 처치실 바닥의 어느 한 부분을 보며 마치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괜찮아요. 그러실 것 없어요.  딱지도 생겨야하고 새 살이 올라와야 해요. 내일모레는 꼭 오세요."

마치 마음을 토닥이는 말투로 얘기하시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상처가 따끔따끔 깊은 통증을 주기도 하고, 씻거나 일을 할 때도 어찌나 불편지 모른다. 큰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던 일주일이었다. 악몽 같은 통증과 싸워야 하는 이들의 고통과 불편이 떠오르며 동시에 그들을 치료하고 응시해야 하는 의사 선생님들이 작은 상처도 지나치지 않고 돌봐주시는 모습에 각박한 세상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졌다. 직업으로서 그들의 의무에 작고 소중한 호의가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상처를 들여다보는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환자의 마음까지 토닥이는 진정성은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진 않다. 그들의 삶에, 그들의 생각에 깊이 배어있는 향기 같은 것이리라.


누군가의 작은 고민과 어려움을 나의 고통과 비교하며 무시한 적은 없는지 돌아본다. 너무나 무수하게 그런 일들이 떠올려졌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재량은 없으니 이제 누구에게든 그의 작은 상처를 들여다보며 상투적인 위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토닥임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다치고 나니 좋은 점이 있었다. 커다란 엄지로 칭찬하고 싶은 이에게 이모티콘 대신 엄지 척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큰 왕따봉을 날리는 기분이 참 좋다. 다양한 버전의 엄지 척 사진을 찍고 있다. 오늘 마지막 치료를 받으며 간호사 선생님께 조금 더 큰 엄지를 만들어 달라고 살짝 부탁해 볼 생각이다. 그들에게 엄지 척을 슬그머니 날리고 앞으로는 집에서 잘 소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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