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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Mar 16. 2021

구원자

한때 나는 네가 날 구원하러 와준 구원자라 생각했다. 피할 수 없는 나의 외로움과 불행의 끝에 손을 내밀어준 희망일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이 험한 세상에 나는 무심하게 홀로 던져졌고 목적지 없이 부유하고 있는 존재였다면 너로 인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할 뻔했다. 그러나 너는 나를 구원하지 못했고 나 또한 너를 구하지 못했다. 우린 서로가 원하는 구원자가 아니었고 될 수도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때의 믿음만큼은 허상이 아니었음을 공감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첫 번째 끄덕거림과 두 번째 끄덕거림의 사이는 점점 짧아졌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눈을 떴다. 절실했던 눈빛과 몸짓, 나눴던 대화들은 나와 너의 기억 속에 실존하는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과거형이 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너에게 특별함이 되고 싶었지만 그건 내 생애 마주한 그 어떠한 문제보다도 어려운 과제였다. 내 마음에 있는 나를 완전하게 비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무능함을 마주할 때마다 시름의 깊이는 깊어졌다. 고민과 시간은 정확하게 비례했고 나중에는 그 생각에 잠식당해 간신히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주 머리가 아팠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눈을 감아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여러 날 지속되었다. 나의 하루에 나는 없었다. 내가 없는 하루는 네가 없는 하루와 같았다. 나의 근원적인 외로움의 답은 너에게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너를 도려내기로 결심했다. 내가 너를 멋대로 구원자라 생각했던 것처럼 이제는 나를 파괴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제멋대로 생각했다.


이별의 이유에 대해 나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단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문 나를 보고 너는 비겁하다 말했다. 그래서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무도 믿지 않을 뻔한 이야기였다. 여기저기서 들은 말들을 조합해 그럴듯하게 붙였지만 거기에는 어떠한 맥락도 내용도 진심도 없었다. 당연히 너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라 주문을 외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을 바라봤다. 그리고 너를 봤다. 너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마음은 단단해졌다. 마지막이라는 말로 안녕을 빌었다. 너를 향한 안녕이자 나에게 보내는 작별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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