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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양 Jan 17. 2023

국세공무원 인사이동의 이해

이해(理解) 혹은 이해(利害)

이해(理解)
[명사]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이해(利害)
[명사] 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10월의 마지막 날에 핼러윈이 아니라 이 노래가 떠오르는 사람은 '아재'라고 하는데, 나는 10월의 마지막 날보다 1월 정기인사 즈음에 이 노래가 생각난다.


2010년 전에는 2월에 정기 인사이동을 했었는데, 요즘은 1월 부가가치세 신고와 사업장현황신고 업무를 감안하여 6급이하 직원은 1월 10~15일경, 5급 관리자는 그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 즈음에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민족대이동이 따로 없다(이미지 출처: pixabay)

인사이동. 정식 명칭은 '정기 전보'인데 6급 이하 정기 전보 기준은 국세청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년 공지한다.


일반 기준은 현 관서 2년 이상 근무자는 이동 대상이고, 세부 기준은 그때 그때 다르다.

현 관서에 2년 있었어도 3자녀 이상이라든지, 비선호관서인 경우 1회(2년) 잔류를 신청하여 한 세무서에 4년간 근무할 수도 있다.

부서(과)는 2년간 유지하는 편인데, 임용일로부터 5년 이내인 새내기 직원들은 순환보직 대상이어서 매년 다른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다.


인사이동의 풍경


11월 중순에 6급 이하 승진자 발표가 나면 본격적인 인사이동 시즌이 시작된다. 본청에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전입 직원을 뽑고, 본청 전입 명단이 확정되면 지방청이 직원을 뽑고 그 후에 세무서 간 배치 작업이 이루어진다.


본청은 승진이 빠른 편이지만 업무 강도가 세고 세종시에서 근무해야 하다 보니 월세와 교통비 등을 감안할 때 월 100만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들어서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본청에서 직원을 뽑는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지방청은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서 세무서보다 선호되는 편이나 희망한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7·8급은 지방청을 선호하나 6급은 책임감 때문인지 지방청 근무를 희망하지 않아서 구인 구직 간에 간극이 있다.


6급 이하 지방청 근무 희망자 모집 공고가 나기 전에 알음알음 자기기술서를 보내어 전입을 신청하고, 공고 마감 후에 전입 희망자 면접을 실시하여 전입자를 확정한다.


전입자가 확정되면 팀 배치가 시작되는데, 이때만큼 서로에 대한 평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때가 없다.

팀·반장이 힘들어서 다른 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힘든 팀·반장이 잔류하는 팀은 전입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신규 전입자로만 팀이 꾸려지기도 한다.

어디에나 폭탄은 있지 (이미지 출처: pixabay)

나는 어느 팀에 있는지, 조사국 내에서도 관리팀에 있는지 조사팀에 있는지 모르니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남는 사람은 남는 대로, 가는 사람은 가는 대로 애가 탄다. 불확실성은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그렇게 깜깜한 연말을 보내고 나면 지방청 배치표가 확정되고, 세무서로 나가는 사람은 전입하는 세무서가 확정되고, 새로 만날 사람이 어떠한지 알음알음 세평을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대망의 정기 전보일!!

남는 사람들은 새로 전입하는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설레고, 새로 전입하는 사람들은 낯선 관서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남으면 남는 대로, 이동하면 이동하는 대로 스트레스를 겪는다.


인사이동의 이해(利害): 이익과 손해


관서 이동은 2년마다 하지만 짝수해에 옮기는 사람도 있고 홀수해에 옮기는 사람도 있고 순환보직하는 사람도 있어서 과 내 구성원은 매년 달라진다.


1년마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여 서운하기도 하지만, 힘든 사람을 만났을 경우 1년, 최대 2년만 참으면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기도 하다.

자리를 옮겨야 하니 1년간 쌓아둔 자료를 정리해서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고, 자리도 정리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인사이동의 이익이라 하겠다.


그러나 2년마다 하는 관서 이동은 장점이기도 하나 단점이기도 하다.

서울에서야 강서세무서에 있다가 강동세무서로 이동하더라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상황이나 지방에서는 세무서간 거리가 멀어서 자기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더라도 그 거리가 수십 킬로라 부담이 크다.

출퇴근이 어려우면 관사나 기숙사, 혹은 원룸을 얻어 지내야 하니 서울청 외의 지방청에서는 어느 세무서에 발령받게 되는지 체감하는 변화의 강도가 더 크다고 하겠다.


매년 관서 이동자가 있다 보니 인사기준을 맞추기 위해 잔류자의 희망과 다르게 원치 않은 과에 배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사이동 때마다 원치 않은 세무서, 원치 않은 과에 발령받은 이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우리와 상황은 좀 다르겠지만 인사 담당자에게 주먹질을 했다는 강원도청의 인사이동에 대한 기사가 남일 같지 않다.


"대낮 주먹질 부른 '강원도 인사'... 직원들 "불공정 인사 원인" 반발


갈 곳이 없다


서울 지역 기준으로 직원들이 선호하는 관서는 강남권 세무서 혹은 일이 적은 변두리 세무서다. 그보다 더 좋은 관서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지 싶다.

출퇴근 도보 15분 거리, 실화임??(이미지 출처:pixabay)


예전엔 법인세과와 재산세과를 선호했는데 요즘은 일이 많다고 덜 선호하는 것 같다. 소득세과는 근로장려금 업무 때문에 일도 많고 민원도 센 편이어서 기피한다고 한다.

선호한다고 다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산세과 경력이 없으면 지원해도 못 가고, 지원하지 않았는데도 재산세과 경력이 있다고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경력자와 신규자가 적절히 어우러지도록 의도해서 인사기준을 정했을 텐데, 인사작업을 하다 보면 누군가는 원치 않은 부서에 가게 되니 '빽이 없어서 그런가' 한탄하기도 한다.


기피하는 세무서와 부서가 있는 것처럼 지방청이나 본청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본·지방청에서도 승진이 잘되는 부서가 있고 한직인 부서가 있어서 승진 잘 되는 곳에 가고 싶어 하는데 승진이 잘 되는 곳은 업무 강도가 센 편이다. 역시나 세상에 공짜가 없다.


직원들이나 윗분들이나 갈 곳이 없어 고민하는 사정도 매 한 가지다.

사무관들은 사무관대로 갈 자리가 마땅치 않고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한 관서로 발령을 받는다.

서기관들도 본청에 가야 하는데 자리가 없어 지방청을 떠돌고, 고위공무원들도 올라갈 자리가 마땅치 않아 전전긍긍한다.

아마도 위로 갈수록 갈 수 있는 자리가 적어서 고민의 정도는 직원의 몇 곱절은 될 것이다.

어디로 가느냐가 고민(이미지 출처: pixabay)


7년 만의 세무서


2016년 1월 정기 전보 때 세무서에서 지방청으로 이동한 후 (중간에 본청 동원과 육아휴직이 있긴 했으나) 7년 만에 세무서로 출근했다.

띠동갑을 훌쩍 넘어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있었을) 자식뻘의 MZ세대 직원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세무서에 와보니 우리 과 우리 팀은 내 또래 직원들만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복직 후 4년간 지방청 조사국 반장으로 있으면서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혹은 휴일에 돌밥돌밥하듯 보고서 쓰느라 소같이 일만 했는데, 세무서 팀장으로 와보니 신세계다.

그러나 이 생활도 몇 달 하다 보면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본청에 있다 보면 지방청이 부럽고, 지방청에 있다 보면 세무서로 빨리 가고 싶고, 세무서에 있다 보면 다시 지방청으로 갈 자리가 있는지 찾게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러하다. 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준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성장하여 다음 계절을 맞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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