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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E Oct 30. 2021

다시 어린이가 되었다.

나의 소망, 나의 바람


집안에 20년 만에 태어난 아기.
난 할머니의 첫 손주였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졌다.
온갖 사랑은 다 받고 커서 인지, 내 성격인지는 몰라도 난 어릴 때부터 애교가 참 많았다.
할머니께 찡찡대고, 국민학교 들어가고 나서도 혀가 반토막이 난듯한 어린애의 말투로 할머니 앞에서 어린양을 부렸다.
그땐 세상이 다 순수했고,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다 우리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의 사랑 또한 남달라서, 동네 사람들에게 '희진이가 학교 끝나고 오면 저 멀리서부터 빛이 난다'라고 하셨다.
그리곤 내가 미래의 미스코리아라고 소문내셨다.


그때는 쑥스러웠는데 지금의 난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라서 인지, 나에게 영웅은 조부모님이셨고, 백과사전이셨다.
국민학교 때 선생님께서 조선시대 때 혼례복의 이름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는데, 인터넷도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고 집의 책들은 전래동화나 어린이 전집뿐이어서 우리나라 임금님들이 결혼할 때 무슨 옷을 입는지까지는 도통 찾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일하러 나가시고, 할머니께 여쭤보았는데, 할머니도 모르신다고 하셨다.
숙제를 못해가면 매 맞는데.. 어떻게 하냐며 울자 할머니께서 울지 말라며 역정 내시 고는 밖을 나가버리셨다.
그리고 한참 있다 돌아오셨을까..
"희진아! 원삼! 원삼이랜다!"
"할무이, 원삼이 뭐야??"
"결혼할 때 입는 한복!"
울지 말래서 정말 눈물을 그치고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느닷없이 활짝 웃으시며 한껏 외치며 들어오셨다.
할머니가 나가신 후 놀러 가셨나.. 했는데,
할머니도 모르시니 다른 집에 물어보러 가셨다고 한다.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이집저집 돌아다니면서 혹여나 누가 알고 있을까 하며 여러 집을 다니면서 물어보시다, 할머니의 제일 친한 친구분 댁에 가셨다가 알아내셨다고 한다.
어린 손녀의 숙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기억을 더듬어보셨을지, 얼마나 생각해보고 찾아보셨을지..
할머니는 마냥 상냥하시진 않으셨지만, 말투는 역정 내셔도 항상 마음은 따뜻하셨다.


생각해보면 나의 어릴 땐 하나하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나의 모든 것은 할머니를 닮아갔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어릴 때의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은 갔다.
이젠 사회가 묻은 서른네 살 직장인일 뿐이다.
할머니도 점점 노쇠하시더니 예전 같지 않으시다.
내가 죽어야지 얼른 죽어야지 라는 말을 자주 하셔서 자식 앞에서 그런 소리 마시라며 한마디 하면 가끔 죽겠다 소리 나오셔도 안 하시고 참으신다.
글자를 가르쳐드리고, 통장 읽는 법을 가르쳐드렸다.

할머니가 뇌졸중이 오신 후에는 몸과 말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속상해하셨다.
마음대로 행동이 되지 않으니 답답해하시고, 화를 내셨다.
그런 할머니를 예전 기억 살리고자 스케치북과 사인펜을 쥐어드리자, 한참 기억이 안 좋은 와중에 세 글자를 쓰셨다.
김 건 우
우리 집 막내 손자의 이름이다.
할머니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지만, 건우는 두 번째로 사랑하는 손자다.
아픈 할머니와의 시간도 점점 지나서 익숙해지고, 할머니는 끊임없는 치료와 재활 덕에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몸도 좋아지고 정신도 초기 발병 시보다 총명해지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정신연령은 가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시고, 주로 간병을 하는 나와 엄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셨다.
그래도 할머니는 할머니다.
그래서 난 아직도 할머니 앞에서는 아이처럼 찡찡댄다.
"할무니! 거미! 저기 이따만한 거미 나왔어!"
"불쌍한께 가만 놔둬"
"이따만한디! 엄청큰디! 잡아조오오ㅠㅜㅜ"
"놔둬야 불쌍하잖어"
솔직히 거미쯤이야.. 잡지는 못해도 봐도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할머니 앞에선 더 크게 호들갑을 떤다.
할머니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쟤가 나한테 이랬어, 저랬어하고 이르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강아지가 살짝이라도 물면 당장 강아지 안고 할머니에게 쫓아간다.
물어봤자 티도 안 나고 아프지도 않고 간식 물어가려다가 실수로 내 손도 같이 문 거지만, 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할무니! 얘가 나 물었어! 요기 봐! 요기! 얘가 여기를 막 이라고 물었어ㅜㅠ"
그리고 할머니는 이미 면역이 되셨다.
"갠찮해! 애기 내려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징징대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할머니의 정신이 어려지고 나서 나는 더 어려졌다.
나의 평생의 마음은 똑같다.
내가 아이여야 할머니가 오래 사신다.
그렇게 나는 다시 아이가 되었고, 오늘도 할머니에게 하나하나 일러바친다.
"할무니! 나 주사맞았어! 요기! 어깨에! 독감 예방주사 맞았어!ㅠㅠ엄청 큰 주사기가 어깨에 뿅 하고ㅠㅜ"
"오야 잘했다"
"그니까 나 팔 못쓰니까 할무니가 쪼기까지 걸어서 휠체어 타고 가자!"
평소엔 할머니 휠체어를 가까운 곳에 두고 할머니를 일으켜드려 타셨지만, 이때를 기회삼아 조금이라도 다리 운동을 시켜본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할머니는 날 힘들게 하실까 말을 잘 들어주신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걸어보자.
한걸음이 백리가 되어 예전처럼 다시 걸을 수 있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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