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라식수술을 했다. 안 그래도 겁 많은데 10분간의 수술이 많이 무서웠지만 그래도 꾹 참고, 생각보다는 아프지 않았다. 할머니께는 몇 주 전부터 나 눈 수술한다, 아파서 한 거 아니다 눈 잘 보이게 하는 수술이다 라고 수십 번 말씀드렸고, 할머니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다. 그리고 수술 당일, 수술을 마치고 동생들의 손을 붙잡고 집에 들어왔다. 할머니의 반응이 웃기기도, 재밌기도 해서 남겨본다.
1. 수술까지 했다냐! 어찌아쓰까잉 많이 아프냐
평소에 안 쓰는 모자를 쓰고, 눈에는 물안경 같은 보호안경을 쓰고,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동생들을 잡고 들어온다. 할머니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많이 놀라신 듯했다. "오매 오매! 뭔 일이여! " 눈 좋아지는 수술을 했다고 했지만, 할머니의 반응은 이미 잊으신 듯, 눈앞의 나의 상태에만 집중하셨다. "할머니! 아픈 거 아니여! 하나도 안 아파!" "진짜 안아퍼? 이것이 뭔 일이까ㅜㅠ" 할머니의 목소리엔 속상하다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2. 눈감고 누워있어! 오지 마! 그날 하룻밤은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수술을 네 시경에 했으니, 저녁밥 먹는 것도 불을 꺼놓고 혼자 먹는다. 마취가 풀리면서 눈이 시큰거리는 통증이 있었지만, 차마 할머니 앞에선 티 낼 수 없다. 손의 감에 의지해가며 더듬더듬 할머니방을 찾아갔다. "뭣하러 오냐! 누워있어야!" 날 보자마자 화내신다. 하필 집에 엄마가 없다. 할머니가 부르면 곧장 달려가는 게 내 마음이 편하지만, 할머니는 그걸 용납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어두운 것을 싫어하셔서 밤에 주무실 때도 무드등을 켜놓고 주무신다. 방의 형광등도 켜놓고 주무시고 싶으시지만, 식구들이 몇 날 며칠 할머니를 설득해서 겨우 무드등으로 협의를 했다. 내가 거실의 불을 꺼놓았는데, 할머니가 아빠를 부르시더니 집이 어둡다며 불을 켜라고 하셨다. 온 집안의 불을 켜고,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누워있었다. 혹여나 예후가 안 좋을까 검은색 두꺼운 옷으로 눈을 가리고 모든 빛을 차단했다. 잠시 누워있다가 할머니께 가서, 할머니 옆에 누웠다. 둘이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아픈 건 아니지만 어둡게 있어야 하니 내일 아침에 집에 가겠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무척이나 서운해하시는 것이다. "깜깜해야 눈이 빨리 나아.. 대신 다음 주에 빨리오께!" "아깐 안그랬잖어! " "낮엔 집이 환하잖어..눈 얼른 나으려고 집에 간다는거여 빨리 나아야지" "그럴거면 뭐하러 왔다냐!" 화를 내신다. 할머니를 설득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자취방에는 암막커튼이 있어서 낮에도 불을 끄면 깜깜하다. 할머니께 아무리 말씀드려도 속상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3.우리애기가 많이 아파ㅜㅠ
잠시 후, 엄마가 오고 식구들이 밥을 먹었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시는데, 할머니가 나오신다. 그러더니 엄마에게 울먹이며 말씀하신다 "어머니ㅠㅜ 우리 애기가 많이 아파ㅠ 눈이 많이 아파ㅠㅜ" 하고 우신다. 할머니도 속상하고, 나도 속상하다. 가고 싶지 않지만, 내가 있으면 엄마의 일이 두배가 된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라도 가는 게 낫지만, 할머니만큼은 그것보다 내가 간다는 것이 더 서운하신가 보다. 그날 밤,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내 방으로 오셨다. 그러더니 침대 위에 무언가를 툭, 던지신다. 귤이었다. 할머니가 요즘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이다. "많이 먹어야 얼른 낫어. 갖고 가서 먹어" 할머니의 마음이 결정된 것 같다. 하지만 서운함은 가시지 않는 것 같은, 미련 한가득인 목소리. 마취가 풀려 아픈 눈을 붙잡고 할머니와 이야기한다. 갖고 가겠다고. 할머니는 그런 분이다. 그러한 사람이다. 내가 먹는 게 행복하신 분, 내 입에 뭐라도 들어가야 안심이 되시는 분. 할머니는 귤을 던져주시고 방으로 돌아가셔서 누우셨지만,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할머니 앞에서 아무것도 안 먹었다. 저녁밥도 혼자 방에서 불 꺼놓고 먹었다 늦은 밤, 과일을 먹고 자면 난 밤새 속이 아리다. 그래서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 앞에서 무언가를 먹어야겠다. 실눈을 뜨고 냉장고를 살피니 아이스크림이 있다. 하나 집어 들고 바닥만 본채 할머니방으로 갔다. 할머니 옆에 가니, 할머니가 또 말씀하신다. "뭐하러 왔냐! 가서 눈감고 있어!" "이거 먹을 거야" 하곤 할머니 옆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눈엔 여전히 검은색 옷으로 둘둘 감아놓고, 눈감고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렇게 절반쯤 먹었나? 할머니 머리맡의 간식 바구니에서 귤한개를 꺼내시더니 툭 던지신다. "이것도 먹어라" 그리고 한 개 더 던져주신다. "웅 이거 먹고 먹으께" 오밤중에 아이스크림에 귤까지 먹고 할머니 이불을 덮어드리고 나왔다.
4. 이제 안 아파? 다음날 아침. 눈이 훨씬 낫다. 이제 아프지도 않고, 보이는 것도 잘 보인다. 눈뜨자마자 할머니방에 여러 번 갔지만, 대답은 똑같다. "오지 마! 눈감고 있어!" 그렇게 여러 번 쫓겨나고, 할머니 이불만 덮어드리고 나온다. 눈도 안 아프고, 창밖에 보이는 산에 단풍이 예쁘게 피어서 풍경이 깨끗이 보인다. 잠시 앉아서 눈에 약을 넣으면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냥 멍 하게. 그러다 다시 할머니께 갔다. "할머니 기저귀 괜찮어? 안 샜어?" "괜찮은께 가!" 아침마다 기저귀가 새서 할머니의 옷이 젖는다. 그래서 평소에는 눈뜨자마자 기저귀를 갈아드리는데, 오늘은 손도 못 대게 하신다. 얼른 가서 누워있으라고만 하신다. "할머니! 나 이제 잘 보여! 하나도 안 아파! 다 나았어!" "그래? 다 나았어?" "웅! 이제 안 아파!" 할머니의 표정이 보인다. 걱정이 조금 덜어진 듯하다.
5. 안 갈 거야? 응 가지 마ㅠ
아침마다 가시는 주간보호센터. 오늘도 난 할머니의 옷을 챙겨 입히고 머리를 손질해드린다. "음식 많이 해달 라그래서 갖고 가" 집에 갈 때 반찬을 많이 가져가라는 뜻이다. "웅웅! 이따 다 가져갈 거야 많이 싸준대" 오늘 아침에 병원을 가야 돼서, 병원 진료가 끝나면 바로 자취방으로 갈 생각이었다. 할머니 말투가 툭툭 미련이 한가득 남은 듯해서, 차마 집에 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 나 그냥 가지 마까?" "으응! 가지 마야" "웅! 대신 내일 가께! 내일은 일해야 되니까! 내일 가께" "그래 그래 강아지 가지 마잉?" 할머니께서 기분이 갑자기 너무 좋아지셨다. 게다가 또 우신다. 이번엔 기분 좋아서 흘리는 눈물. 옆에서 엄마가 묻는다 "엄마 기분 좋아?" "그라믄! 최고로 좋제!" 그래. 내 눈이야 금방 낫겠지. 할머니의 기분이 좋아져서 다행이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시면서 가볍게 센터에 가셨다. 할머니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지. 오늘도 나 보고 기분 좋으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