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 때부터 모시송편만 보면서 자랐었다. 초록색인데 찌면 검은색일만큼 진한 색이 되는 모시송편. 하얀 송편을 본 것이 어른이 되고 나서 떡집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처음엔 그게 송편인지도 몰랐다. 어른이 되고 도시로 이사 가고 나서, 떡집 갔는데 송편모양의 하얀 떡이 있어서 떡집아주머니께 뭐냐고 여쭤봤더니, 송편이란다. 왜지, 왜 송편이 하얗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왜 나면, 우리 집은 모시송편만 만들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계속.
우리 집은 할머니의 자식들이 잘 모이는 집안이다. 내가 어릴 땐 모두 할머니집에 모였었는데, 나의 어린이시절은 할머니에게 송편 만드는 법을 배워서 추석 때마다 송편을 만들었다. 송편소도 다양하게 만들었는데, 요즘이야 깨설탕이 대부분이지만, 우리 집은 하얀 앙금이었다. 그건 아마 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평범한 시골동네였기 때문에 떡집도, 앙금을 따로 파는 집도 당연하게도 없던 동네. 할머니는 송편소를 그때그때 만들어주셨다.
송편반죽도 할머니가 쌀을 씻고 불려서 초록색 모싯잎을 넣어 방앗간에서 빻아오셨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따뜻한 물을 넣어가며 반죽을 하고, 중간중간 할머니에게 확인을 받는다.
"할무니 반죽 질어? 되?" "쫌 되다야, 물 쪼끔만 더 넣어보그라" "이만큼?" "당 멀었다(아직 멀었다)"
이렇게 반죽이 완성되면, 커다란 반죽대야를 가운데에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아 송편을 만들었다.
우선 크게 한주먹 떼서 뱀처럼 길게 만들고, 엄지손가락만큼 떼서 동글동글 굴린 다음 (어린이기준) 송편소를 넣을 자리를 만든다.
그때 난 별거를 다 만들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한번 눌러보기도 하고, 빗살문양 토기마냥 마구 조물딱 대서 길쭉한 항아리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못써야!!" 할머니한테 혼나고서야 배운 대로 만들었다.
그렇게 둘이서 송편을 잔뜩 만들어 상에 올려놓고, 할머니가 커다란 찜기에 넣고, 근처 산에서 뜯어온 솔잎을 깔아 쪄주셨다. 그렇게 다 쪄지면 뜨거운 상태에서 참기름을 발라서 대바구니에 올려서 식히셨다. 우리 할머니는 손도 크셔서 그 과정 몇 번을 반복해야 만든 송편을 다 찔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당분간 명절에는 떡을 안 하다가, 이번엔 송편을 만드려고 준비를 했다. 인터넷에서 본 예쁜 송편을 만들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단호박 가루와 자색고구마가루를 주문해 몰래 고모집으로 보내놓았다. 그렇게 고모집으로 가서 택배를 보자마자 뜯었다. 환불 못하게. 하지만 들켜버렸지. 헤헷
"너 이거 왜 샀냐?" "송편 만드려구! 이건 단호박가루, 이건 자색고구마가루! 이쁜 거 만들 거야" "갑자기 웬 송편?"
오잉.. 당연한 건데 아무도 만들 거는 생각을 못하셨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 쌀가루를 안 샀어.... 쓸데없이 돈 썼다고 잔소리를 들으면서 고모들이 하시는 말씀, 원래 송편을 안 만들었었다고? "먼 소리여? 나 어릴 때 맨날 만들었는데" "그거 너 송편 만드는 거 좋아하니까 할머니가 너 갖고 놀으라고 해준 거야" "엥 진짜?"
원래 우리 집은 송편을 안 만들었다니.. 내가 송편 만들고 싶어 하니 할머니가 준비해 주신 거였다. 생각해 보니 그땐 할머니가 명절음식을 다 하실때였어서 엄청 할 일도 많고 바쁘고 힘드셨을 텐데 나랑 송편도 만드셨었구나. 그래도 그때의 그 송편들이 할머니와의 행복한 시간으로 남았다. 참 사랑스럽고 행복했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