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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미리내 Feb 04. 2024

여행은 칠십부터5

엄마의 주저함

첫날 길바닥 첫 대전을 치르며 찾아간 마트에서 물과 요거트, 방울토마토를 사 왔다.

하루에 2리터 물은 거뜬히 마시는 하마딸과 건강을 위해 챙겨야 하는 엄마의 요거트, 방울토마토를 소중히 품어 숙소에 쟁여놓았다.


하룻밤을 자고, 시차적응에 조금만 실패한 엄마는 새벽 5시부터 말똥말똥 일어나 있었다.

낯설고 너무 이른 새벽이라 방 밖을 나서지는 못하고, 잘 열리지도 않는 창문과 티비 없는 방에서  딸내미가    깰까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던 엄마는 간식 탐색에 나섰다고 한다.


유럽은 목초지에 소들을 풀어 키워서 유제품이 맛있다, 특히  고소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유를 파스@르 반의 반값으로 살 수 있고  요거트는 파리 슈퍼에서 꼭 먹어야 하는 머스트 템이라는 딸의 영업 멘트에 한가득 기대를 품었던 엄마는 반의 반값이라는 우유로 만든 요거트를 반의 반통도 먹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과일은 또 어찌나 달고 신선한지 , 내가 먹어본 최고의 오렌지는 런던에서 먹었던 레드블러드였다는 딸내미의 언제 적인지 모를 감상평을 기억하고 , 방울토마토에 기대를 걸고 씻었지만 쭈글쭈글 막상 포장을 뜯은 방울토마토는 세파에 찌든 어르신의 외투 같은 껍질을 두르고 있었다.

어쩐지 포장지에 세일 1유로라고 적혀있더라니


일어나기가 무섭게 파리 슈퍼에 대한 성토를 이어가는 엄마의 등쌀에 먹어본 요거트는 정말로  중2병의 부루퉁한 표정처럼 떫떠름한 맛이었다. 

뭐지? 급하게 사느라 포장지를 대충 읽었던 모양이다.

프로틴 요거트였다.

비싼 게 더 맛있을 줄 알고 나름 고른 건데, 두 개밖에 안 산걸 다행으로 여겼다.


다음 고충 품목은 방울토마토.

상태가 꽤나 바르지 못했다. 그래도 1유론데 넘어가고 싶었지만 k-엄마의 원칙은 파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못 팔 정도의 과일을 내놨으면 환불이건 교환이건 해야 한단다.

영수증을 챙겨서 조식 먹고 가보려고 하는데, 어째 영수증 금액이 이상하다.


5유로? 방울토마토 포장지에는 분명 1유로라고 적혀있는데 세일가가 아니라 정가로 계산이 됐다.

5유로는 아니지!  분연코 떨쳐 일어날 이유가 생겼다.


문이 열리길 기다려 득달같이 달려간 슈퍼마켓 앞에서 엄마는 돌연 들어오기를 거부했다.

"엄마? 안 들어와?"

".... 갔다 와"

"아니, 같이 가야지?"

"갔다 와. 내가 뭐라고 해"


아, 나 혼자 하란 소리구나

여기선 내가 보호자구나. 

주저하는 엄마의 소극적인 모습을 아주 오랜만에, 실은 처음일 수 있는 모습에 마음이 이상했다.

나만 믿어!!


환불은 어림없고, 차액 4유로를 챙겨 들고 길을 걸으며 개중 괜찮은 방울토마토를 골라 먹었다.


"1유로도 환불받았어야지"

"씨알도 안 먹혀, 먹다 버리자"


엄마의 잔소리가 순하게 들리는 순간이 왔다.

나의 어리고 미숙함이 시간과 함께 없어지 듯, 엄마의 강함과 노련함이 새로운 세상과 환경에 조금 바래지 듯.

그렇게 엄마와 내가 반대편에 올라앉은 저울추가 조금 조정이 되었다.

시간의 마법이며 순리라 여기고 큰 상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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