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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가 좋아서 떠난 1. 나의 오랜 향수병, 홍콩

우연히 걸으며 만난 홍콩 영화의 발자취들

by 메이

마카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홍콩으로 넘어가기 위해 페리를 탔다. 지금도 물 비린내가 선명하다. 홍콩의 4월은 습한 더위였다. 아, 하루는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긴팔을 급하게 사서 입긴 했지만, 이 날을 제외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홍콩 영화의 그 꿉꿉해 보이는 더위. 땀을 늘 닦거나 얼굴이 반지르르한 그 모습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홍콩의 더위가 싫지만은 않았다. 원체 여름을 좋아하기도 한 이유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홍콩 그 자체라 생각했다.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자아냈다. 하늘 높이 솟은 건물들을 바라보며 '아 드디어 홍콩이다'라는 설렘이 압도했다. 첫 만남의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홍콩 그 자체가 좋았다. 거짓을 보태지 않고 말하자면, 대만보다 더러웠고 냄새도 났지만 그냥 좋았다. 좁은 골목과 길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 거리 곳곳에 보이는 트램과 2층 버스도, 건물 중간 중간 보이는 초록색 나무들도, 건물 사이로 슬며시 흘러 들어오는 바람들도.


(1) 물건만이 추억으로 남는건 아니지만, 때론 물건이 여행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첫 날 일정은 쇼핑이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나는 웬만하면 여행을 간 첫 날, 쇼핑을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그 때 산 옷을 입고 돌아다니거나, 물건을 사서 여행 내내 쓰는 편이다. 여행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쇼핑이 주는 설렘이 함께 만난 엄청난 시너지 효과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쇼핑을 하러 가기 위해 밥을 먹고 지나가다 더워서 그냥 보이는 카페에서 아이스 라떼를 마셨는데, 웬 걸? 너무 맛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름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라떼를 마시며 돌아다녔던 골목들이 기억에 남는다. 셩완 근처였던 어느 카페. 그 때 마셨던 라떼의 고소함과 같은 홍콩 여행의 시작이었으니라.


홍콩 로컬 브랜드에서 향수를 사고, 자연스럽게 코즈웨이베이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트램을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다. 처음 탄 트램의 후기는 너무 재밌었다. 특히 트램 2층으로 올라가면 혼자 앉는 자리들이 나오는데, 여기 앉아 밖을 바라보며 홍콩의 높은 건물들과 셩완과 코즈웨이베이에 가는 길에 있는 많은 럭셔리 가게들, 습한 바람까지 휙 나를 감싸는 그 공기들. 그냥 그 경험이 너무 생소하고 재밌었다.


코즈웨이베이에 도착해서 스투시와 브랜디 멜빌에 갔지만, 생각보다 살 아이템이 없어서 동생 선물과 작은 목걸이만 샀었다. 예전에 여행을 가면 '이 곳에서 반드시 사야만 해'라는 생각이 압도했었는데, 대만 여행을 두 차례 다녀온 뒤, 반드시 사야만 한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이 바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쇼핑을 안하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자제를 하지 못해 충동이 앞서며 지갑이 자연스럽게 열리지만, 여행에서 정말 남는 것은 사진과 발로 걸으며 만난 수많은 우연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날 뿐만 아니라, 홍콩을 돌아다니며 느낀 점은 홍콩은 쇼핑의 메카는 아니지만, 여전히 재밌다는 것이다. 지금은 한국에 브랜디멜빌이 들어왔지만, 내가 갔던 2024년 4월에는 없었고, 스투시, 베이프, 슈프림 등 한국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브랜드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르라보에 홍콩 에디션 향수도 있고, MOMA 스토어도 작게나마 있으니 아기자기한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눈이 즐거운 여행이 될 거라고 감히 점쳐본다.



(2) 홍콩의 모든 거리는 영화였음을.


다시 숙소로 돌아와 피크 크램을 타러 갔다. 아무 생각없이 피크 트램을 타러 가는 길에 <천장지구>의 성당을 우연히 발견해 들어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천장지구>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이 영화가 주는 미장셴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단 우리가 흔히 말하는 '허세물'의 모든 시작이 이 작품이고, 지금도 이 작품이 주는 분위기는 어느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혹여 <천장지구>를 모르더라도, 아래 사진은 모두가 알 것이다. 누가봐도 결혼을 앞둔 두 남녀.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과 다르게,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급히 향하는 모습. 사진만 봐도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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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달려서 도착한 그 성당에 내가 도착했다. 그 희열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때는 술 한 잔도 안 마셨을 때였는데, 머리까지 피가 확 도는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아, 나 정말 홍콩 영화 좋아하는구나.'라는 감정과 함께 그 시절 그 배우들의 장면까지 모든 것들이 나를 감쌌다.


그 전율이 가시기도 전,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저 멀리서 보게 되었다. 그 느낌은 아직도 생경하다. '아' 이 한 마디 만이 내 머릿 속에 떠올랐다.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 아마 지금 있었더라면 정말 멋진 배우였으리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 바로 장국영의 마지막이었던 그 곳이다. 내가 간 2024년 4월 5일은 장국영의 기일로부터 4일이 지났었다. 아마 그 장소와 그 비슷한 시기즈음에 장국영팬들이 많이 홍콩에 갔으리라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는 그를 떠올리고 있고, 영화에는 늘 살아 있는 그를 그리워 하며 발걸음을 힘겹게 돌렸다.


피크 트램을 타고 내려와, 홍콩의 밤을 즐겨 보겠다며 란콰이퐁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 때 우연히 <금지옥엽>의 촬영지 프린지 클럽을 발견했다. 사실 우연히 지나갈 뻔했는데 머릿 속에서 '왜이리 익숙하지?'하다가 '아!!!'하고 떠올라서 카메라를 막 켰던 기억이 있다.


첫 날부터 우연히 만난 홍콩 영화들을 바라보며, 홍콩 영화는 홍콩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찾기 힘든 그 시절의 그 홍콩, 흔적들만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그 장소에 가서 그 시절을 추억하고, 떠올린다. 그래서 나에게 홍콩은 향수병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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