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도로에 안개가 자욱했다. 커튼을 살며시 걷고 창밖을 바라봤다. 100m 앞만 겨우 보일 정도로 바깥이 시허옇다. 버스는 속력을 유지했다. 운전기사는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갈 길을 간다.
뿌연 길이지만 운전기사는 헤매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보이지 않는 길을 보여주었다. 그는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달렸다.
글을 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손 가는 대로 쓰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글의 구조를 미리 짜고 쓰는 방법이다. 두 가지 방법의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완벽한 글이 없듯 완벽한 글쓰기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빗대면 두 번째 방법으로 글을 쓸 때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글의 구조를 짜면 글을 쓸 때 방향을 잃지 않는다. 주제에 어긋나는 문장이 줄어든다. 점과 점을 잇는 것처럼 글이 직선이 된다. 두 명인이 두는 바둑의 끝내기처럼 외길이다.
오늘 겪은 일을 쓸 때는 글이 갈팡질팡하지 않는다. 오늘 겪은 일은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시간 순서대로 쓰든 중요한 일부터 쓰든 경험을 쓰면 된다. 구조를 짜지 않아도 글이 한 곳을 향한다.
그렇지만 주장에 근거를 덧붙여 쓸 때는 글의 구조를 짜는 게 좋다. 구조를 짜면 글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쓸지 미리 구상했기에 서론이 결론보다 비대해지거나 본론이 결론보다 홀쭉해지지 않는다.
긴 글을 쓸 때는 구조를 짜는 게 유리하다. 책을 쓸 때는 목차를 먼저 구성해야 한다. 목차라는 내비게이션을 쳐다보며 글을 써야 2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채울 수 있다. 목차가 있기에 250페이지가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다른 예로 100문 100답을 쓰면 글이 길어질지언정 샛길로 빠지지 않는다. 백 가지 질문이라는 글의 뼈대가 견고하게 잡혀있어서다. 백 가지 질문에 백 가지 답변을 하면 된다. 글쓰기가 수월하고 글이 올곧다.
글의 구조를 짜는 건 시간이 걸리지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3분만 투자해서 글의 큰 그림을 그려보자. 주제와 어울리는 도입부, 주제를 보충하는 서너 가지 내용, 글맛을 깔끔하게 하는 마무리를 생각하면 된다.
이를테면 맛있는 커피가 무엇인가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서론에서 내가 얼마나 자주 커피를 마시는지 이야기한다. 본론에서 커피 맛을 좌우하는 세 가지 요소를 적는다. 신맛과 단맛의 비율, 커피콩을 볶는 정도, 커피를 마시는 환경의 중요함을 쓴다. 어떤 커피가 좋은지 추천하면서 마무리한다.
여행기를 쓴다면 소개하고 싶은 여행지를 하나씩 열거해도 좋다. 글을 쓰기 전에 큼지막한 틀만 잡으면 충분하다.
글의 뼈대를 잡는 건 번거롭지만 효과가 좋다. 철근이 콘크리트를 지탱하듯 글의 뼈대는 글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한다. 글의 흐름이 이상해진다 싶으면 구조를 다시 보면 된다. 한 방향을 노려보는 글은 좋은 글이다. 구조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건물을 짓든 기초 공사를 먼저 해야 한다. 지반을 평평하게 다지고 대들보를 튼튼하게 세워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설계도를 그리는 일이다. 설계도는 내가 어떤 건물을 지을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다.
버스에 몸을 실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회사 정문이 점점 선명해진다. 안개는 걷힌 지 오래다. 운전기사는 어제와 같은 곳에 버스를 세웠고 아무렇지 않게 내 인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