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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근 Oct 16. 2021

10,000미터 달리기와 책 쓰기

도쿄 올림픽이 끝나갈 때쯤 여자 10,000미터 달리기를 시청했다. 지금까지 100미터 달리기나 마라톤 경기는 종종 봤지만 10,000미터 달리기 경기를 본 건 처음이었다. 


10,000미터 달리기는 마라톤과 비슷했다. 수십 명의 선수는 저마다 몸을 풀며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총성이 울리자 선수들이 발을 내디뎠다.


경주 트랙은 육체, 정신의 한계를 시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의 간격은 벌어졌고 선두 그룹보다 한 바퀴 뒤처진 선수도 있었다.




금메달을 차지한 선수는 결승점을 통과하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기쁨을 만끽할 힘도 없다는 듯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거친 숨만 몰아쉬었다. 메달을 거머쥔 선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한편, 여전히 트랙을 도는 선수들이 화면에 잡혔다.


남은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승점을 돈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트랙 옆으로 몇 걸음 걷더니 바닥에 누웠다. 순위는 다를지언정 모든 선수는 결승점을 통과하고 바닥에 누웠다. 그들은 누워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000미터 달리기는 책 쓰기와 닮았다. 단박에 결판이 나지 않는 것도, 자기와 싸움인 것도 유사하다. 초반에 빨리 치고 나간다고 해서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지 않는 것도 흡사하다. 


트랙을 완주한다고 한들 목에 메달을 걸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숨을 참고 묵묵히 뛰어야 한다. 도중에 멈추면 실격이다. 빠르건 늦건 결승점을 통과할 때까지 두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결승점을 통과해야 기록이 남고 메달에 입을 맞출 가능성이 생긴다.


메달을 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메달을 따지 못해도 괜찮다. 선수들은 달린다. 선두보다 한 바퀴 넘게 뒤처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린다. 순위권에서 벗어난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완주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다른 선수를 이기기 전에 나를 먼저 이겨야 한다. 나를 이기고 나를 넘어서기 위해 달린다. 마비될 것 같은 다리를 앞뒤로 휘저으며 앞만 보고 달린다.

메달을 따는 건 둘째 문제다. 나를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싸움이다. 늦어도 괜찮다. 결승점을 통과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 스스로를 뛰어넘는다.




책 쓰기에 도전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책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PC 앞에 앉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웬만해선 책을 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출발선에 서는 것보다 어려운 건 결승점을 통과하는 일이다. 의지를 잃지 않고 끝까지 글을 써 내려가는 건 10,000미터 달리기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만큼 경이롭다. 책 쓰기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린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달린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달린다.


책 쓰기의 지향점은 10,000미터 달리기와 같다.


출발점에 설 용기, 결승점까지 달릴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글을 쓰기 바란다.


결승점을 통과한 다음 거친 숨을 몰아쉬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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