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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혜정 Apr 17. 2024

책덕후의 책장에는 무슨 책이 있을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나" 
자칭 '나 연구 학자', 본업은 16년 차 윤리 교사입니다.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글로 씁니다. 
이 글의 끝에는 [오글오글(오늘도 글을 쓰고, 오래오래 글을 씁니다) 질문]이 주어집니다. 
함께 쓰며 '나 공부' 같이 해요.




책장 정리를 했다. 올해 1월 북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책이 늘었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기에 밀리의 서재와 도서관을 이용해 책을 보고, 다시 보고 싶은 것을 구매한다. 그것도 전자책으로. 하지만 서평단 책이 늘면서 책장이 가득 차게 됐고, 어쩔 수 없이 저렴한 북카트를 하나 들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책을 토해내고 있으니 정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먼저 버릴 것을 추려냈다. 4권. 더 버리고 싶은데, 아직 안 읽은 책은 차마 못 버리겠다. 버려질 운명에 처한 책들을 바라봤다. 큰 재미도 감동도 없었던 소설 2권, 의미 없는 아름다운 말 대잔치였던 에세이 1권, 중고로 겨우 구매했던 공부법 책 1권. 미안하지만 너희에게 내줄 자리는 없단다.




제일 위 칸을 너에게 줄게



책장 제일 위를 차지한 전공 서적들. 요 책 중 하나가 필요하면 굳이 창고에서 발받침을 가져와 두 단이나 올라 서야 한다. 무슨 책이 있나 살펴보려면 멀찍이 서서 목을 45도 위로 꺾어야 한다. 바라 보기도 가까이하기도 어렵지만, 그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살려둔 녀석들이다.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칠 때 요긴했던 책, 파견교사를 준비할 때 샀던 전공 서적도 있다. 이 중에서 반은 치열하게 읽고, 반은 거의 새 거다. 역시 공부는 쉽지 않다.


그 밑 칸을 차지한 책은 전공 관련이거나 동물권 관련 책이다. 애정하는 책들이다. 내 삶을 바꿔 준 책들이기 때문이다. 고시생 시절 니체를 공부하며 성공을 꿈꿨고, 존 롤즈를 공부하며 사회적 약자 문제를 고민했다. 동물권 책을 읽고 육식주의자에서 채식주의자가 됐다. 바라보기만 해도 진지해지는 책들. 이 책들도 꺼내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열심히 읽었고, 삶도 바뀌었으니 이제는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벽돌책은 이 구역 힙스터



비슷한 맥락의 책들이다. 존경하는 유시민 작가의 책, 사회 문제 관련 책들이다. 스티븐 핑커의 벽돌책은 가격도 사악하다. 교과서 집필할 때 발췌독하느라 밑줄을 그어 놔서 중고로 팔지도 못한다. 큰 목표가 없다면 읽기 어려운 책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간다면 인간들을 그리워하며 한 장 한 장 아껴 읽을 것 같다. 벽돌책은 한 두권 정도 꽂혀있으면 있어 보여서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많이 심심한 날에 읽겠지?



잘 봐. 나를 살려 준 책들.



지금부터는 내 눈높이에 맞게 놓인 책들이다. 삶을 바꾸기보다, 살려준 책들. 살려고 읽은 책들이다. 수시로 재독 하려고 손이 잘 닫는 곳에 꽂아 두었다. 


독서를 좋아하긴 했지만 자기 계발류의 책을 읽지 않았다. 주로 철학, 사회학 위주로 읽었다. 나라는 존재보다 외부에 관심이 많았다. 에너지가 넘쳤기에, 내가 필요한 곳에 나를 마구 써도 괜찮은 줄 알았다. 조금씩 소진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어느 날 번아웃이 왔고, 알 수 없는 무기력에 시달렸다. 모든 걸 정리하고 말끔해지고 싶었다. 살려고 그랬던 걸까? 강력한 끌어당김이었을까. 햇빛을 쐬러 찾았던 도서관에서 미니멀리즘 책을 만났다. 그리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면서 조금씩 회복됐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버릴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이 '나'를 생각하게 되고, 내 삶을 돌보게 된 것이다. 저절로 각종 정리, 시간 관리, 습관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일상이 단단해졌다. 


위 책들 중 일부는 미니멀리즘을 접하기 전 사들였는데, 읽지 못해 살아남았다. 이사할 때 1톤 트럭으로 이사한 사람인데. 운전기사 겸 이삿짐센터직원 겸 사장님 한 분이 이사시켜 준 집인데. 이사 비용 39만 원 나온, 나름 미니멀리스트인데. 이사 짐에 책이 제일 많았다. 이상하다. 사놓고 안 입은 옷은 버려지던데, 안 읽은 책은 왜 안 버려지는 건지.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은데 말이다. 미니멀리스트도 책 욕심은 버릴 수 없나 보다. 



치열하게 살아서인지 힐링물이 끌려



여기는 소설과 에세이 코너. 소설과 에세이도 잘 안 읽었는데, 최근에 즐겨 읽는다.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소설 또는 힐링 소설을 좋아한다. 에세이는 미니멀하고 소박한 삶을 다루는 에세이를 선호한다. 


나를 희생하며 불의를 향해 짱돌 던지는 삶도 멋있고, 나를 소중히 보살피는 소담한 삶도 아름답다. 어릴 땐 마음에 짱돌 품고 살았는데, 힘들었나 보다. 요즘은 마음을 위로하는 힐링물이 끌리는 걸 보면.


마지막은 글쓰기 관련 책과 에세이다. 평생 쓰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다. 그것을 작가라 규정하고 싶진 않다.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열려 있으면 좋으니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쓰는 삶을 향한 노력이다.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쓰는 삶이다. 앞으로 어떻게 쓰는 삶을 지속할지 고민 중이다.


에세이 중 80%는 교사 성장 모임 '자기경영노트' 선생님들이 쓰신 책이다. 학교 생활도 자기 계발도 진심인 선생님들이라 존경스럽다. 쓰는 삶을 실천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 걸까? 본받고 싶어 구매했다. (미니멀리스트도 동료의 책은 삽니다. ㅎㅎ) 문제는 아직 읽기 전이라는 거. 바쁜 일정에 밀렸지만, 5월부터 읽고 리뷰할 계획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두 권도 꽂혀있다. <단순 생활자>와 <우아한 가난뱅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담겨있다. 소박하고 단정한 삶.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줄래?


현재 읽고 있거나, 읽어야 할 책은 북트레이에 꽂혀있다. 다 읽으면 책장으로 옮겨진다. 물론 그러려면 책장의 녀석들 중 몇을 골라내 쥐도새도 모르게 분리수거장으로 보내버려야 겠지. 그때까지 <나는 왜 꾸물거릴까>, <하루 10분 마케팅 습관>은 기다려야 한다. 이미 읽었지만 비슷한 류의 책이 없어 책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얘들아 잠시 신입들과 담소 나누고 있으렴. 공포영화처럼 조용히 제거될 책이 분명 있단다.) 


책 이야기에 신난 책 덕후는 어느새 긴 글을 쓰고 말았다. 글 속에 내가 보인다. 아니, 책장을 보니 내가 보인다. 나를 알게 되니 신나서 글을 썼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나다. 오늘도 재밌게 나를 공부했다. 







[오글오글 질문] 
나의 책장에 꽂힌 책을 살펴보세요. 어떤 책들이 있나요? 그 책에 얽힌 사연을 글로 써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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