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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 Jan 04. 2024

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한상기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


작물의 고향이 아프리카였듯이
결국 지금 우리의 문명과 문화도 그들로부터 나왔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작년부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농학과 공부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농학자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했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면서 '한상기'라는 우리나라 식물육종학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삶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한상기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학습욕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인 식물학자가 되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였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저항성 카사바를 만들어내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식물유전육종학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것 같아도, 오로지 그 길을 가기 위해 들인 한 사람의 시간과 노력은 정말 값진 것이다. 이러한 배움과 성실의 자세는 삶을 살아가는 바탕이 되어, 어떤 모습이든 마침내 훌륭한 결실을 맺게 한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한상기 박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 중 내게 인상적이었던 5가지 가치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배움
우리의 배움은 책상머리 위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책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오묘한 원리, 싹이 트고 자라는 그 신기한 과정과 동물들의 묘한 움직임이 모두 다 공부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감정 속에도 배울 게 있고 내 몸의 움직임도 잘 관찰하면 공부 거리입니다. 결국 공부는 관심과 열정일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식물육종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걸 관심 있어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마 여러분들이 가야 할 미래의 길이 보일 겁니다. 제가 그렇게 걸어왔듯이 말입니다.          

 한상기 박사는 어린 시절의 배움에 대해 강조하며, 특히 자연으로부터의 배움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밖에서 뛰어 놀며 커야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매일 집 앞에 있는 나무나 풀 속에서 자연을 보고 맡고 느끼는 모든 것이 공부가 된다. 이러한 하루하루가 더해져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자연과 닮은 성품이 생겨나고 마음이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보잘 것 없고 사소한 잡초 한 개에도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 자신과 주변에 시련이 닥쳤을 때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사랑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나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와 맞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그 때 이미 만들어진 것 같은데, 아마 그 때 내가 가장 순수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용감하게 행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지금 내가 다시 방송대 농학과에 들어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걸 가장 좋아했던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인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했을 때 비로소 가장 나다운 모습과 행복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의로움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의로운 일을 하면서 용감하고 굳건하게 살다 가셨습니다. 이런 의로움은 우리 한씨 가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후손들이 본받고 이어가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우리는 강인하고 의로운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 것을 챙기고 내 이름을 드높이려는 것보다 의로운 행동에 더 집중했으면 합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의롭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남들이 보기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잘 넘어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때의 나는 마음이 많이 다쳤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나 자신이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해 실망도 많이 했다. 결국 나도 내가 싫어하던 사람들처럼 비겁한 속물이 되어 살아갈까봐 겁이 났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를 노래하던 윤동주 시인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던 경험이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순수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경험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었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고, 힘들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더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무시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



사명감
저는 다시 연구소로 돌아갔습니다. 마음이 무겁다 보니 제 발걸음도 무겁더군요. 그러나 그럴수록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저의 사명감은 더욱 강해져 갔습니다.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기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 보려 했지만 저는 이 벌레를 한 방에 효과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찾느라 누가 불러도 대꾸도 하지 못하고 밥도 못 먹을 지경이었습니다. 제 꿈에도 이 벌레들이 돌아다닐 정도로 벌레에 집중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할 때 사명감을 가지고 그 끝을 보려 하면 그만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보게 되었을 때, 그 뿌듯하고 속시원한 경험은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나도 그 한번의 맛을 보려고 여러가지 일들을 벌이는 것 같다.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 있어서도, 어떤 한가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온전하게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면, 뜻밖의 방법을 발견하여 쉽게 해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로지 온 힘을 쏟은 자에게만 보이는 법인데, 정말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딱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 했을 때 하늘이 감동한 나머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게 아닐까?


용기          
이렇게 긴 여행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험한 여행을 통하여 여하한 난관에 봉착해도 제가 아프리카에서 일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물어가며 검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긴 여행을 통하여 저는 험한 아프리카 생활을 자신 있게 해가면서 연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상기 박사의 난관을 극복하는 긍정적이고 용기있는 자세는 정말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지의 아프리카 안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목표를 향해 뚝심있게 걸어가는 모습과 눈 앞이 가로막혔을 때에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가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상황을 빨리 없애버리고 싶어서 짜증을 쉽게 내곤 하는데, 어차피 닥친 문제라면 차분히 고민해보고 행동이 필요할 때에는 나 스스로를 믿고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자존감은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를 극복'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겸손          
아프리카 사람들은 돈과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그들은 자연의 품에서 신에 의지하며 삽니다. 신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이고 신과 함께함으로써 의식주가 해결되고 신을 통해 예절을 배우며 자유와 평화, 부활의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일상에서 믿고 삽니다.
참 놀라운 지혜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당, 교회, 절에 가야만 신을 만납니다. 그곳을 나오면 다시 인간의 욕망 속에서 허덕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늘 신을 만나며 절제의 행복, 함께 나누는 행복을 누립니다. 우리가 서점에 가면 우울함을 달래주고 어떻게 살면 행복한지를 알려주는 책들이 넘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런 책을 읽지 않아도 이미 부모로부터 그 지혜를 배우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며 삽니다. 아프리카를 얕잡아 봐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문명과 문화를 괄시하면 안 됩니다. 작물의 고향이 아프리카였듯이 결국 지금 우리의 문명과 문화도 그들로부터 나왔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앞으로 아프리카는 다시 인류를 품을 부모 같은 땅이 될 것입니다. 

 아프리카라는 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늘 아프리카 문화는 독특하고 이국적인 문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프리카가 작물과 인류의 고향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보다 한층 깊이 있는 정신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대자연의 순리과 이치를 존중하는 그들의 세계관은 우리가 배울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현대사회의 개개인이 소외된 채 행복을 놓치며 불행하게 살고 있는 데 반해, 아프리카 사람들은 주변의 행복을 느낄 줄 알고 하루를 감사하게 살아간다. 과연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내 옆 내 뒤에 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행복들과 함께 매 시간 매 순간을 살아가다 보면 후회없는 죽음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한 농학자의 일생을 들여다봄으로써, 학문으로서의 농업보다 오히려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책을 더 친근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내가 과연 이 책의 저자 나이가 되었을 때 내 삶을 만족스럽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스스로에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과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해보자고 다짐하며, 후회없는 삶을 살았었노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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