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를 믿기
"퇴사하실 때 믿는 구석이 있으셨나요?"라는 질문에
"저 자신이요"라고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결국 퇴사를 했다. 아니, 퇴직을 했다. 7년간 다니던 공직생활을 하루아침 청산해 버렸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첫 직장이기도 했어서 의미가 좀 남다른 결심이었다. 퇴직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시작했을 때부터 오래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퇴직을 하기 전에 읽어봤어야 할 책을, 퇴직을 하고 나서 읽게 되었다. 회사의 퇴사와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그래서 모든 퇴직러들이 한 번씩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정말 오랜만에 돌아와 글을 쓴다.
나는 애초에 공무원을 하기로 진로를 정한 것도 오랜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로 하는 면접에 약했던 나는, 그저 일반회사에 갈만한 스펙도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시험만 붙으면 바로 취업이 가능한 보다 쉬워 보이는 길인 공무원을 선택했던 것이다. 공무원처럼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 난이도의 필기시험이나 자격만으로 합격이 가능한 회사가 있었다면 바로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냥 빨리 독립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이런 열정 없는 마음가짐으로 직장을 선택했기에,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꿈들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기에, 부모님도 친구들도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많이 몰랐던 것 같다. 공무원 일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도 아는 바도 별로 없었다. 공무원이 서비스직이라는 기본적인 것도 생각하지 않고 들어갔던 것 같다. 처음 인수인계 하나 없이 민원대에 앉았을 때, 너무나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고향에서 한 달간 민원대에 적응할 즈음 중복합격한 서울로 오긴 했지만, 그래도 신규에게 너무도 무관심한 직원들의 태도에도 많이 놀랐다. 바쁘다고는 해도, 출근하자마자 직원들과 인사하기도 전에 실전에 투입되는 상황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시간이었다. 심지어 바로 옆자리의 동기였던 직원은 내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차원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어서, 입직과 동시에 정이 떨어져 버린 것도 한몫했다.
공무원 일을 할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힘든 일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보람을 느끼며 끝까지 해내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공무원 일은 나에게 보람을 주지 않았다. 나의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나라는 인간은 눈앞에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아야 보람을 느끼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지자체장, 부서장, 민원인에게 멀고 막연한 도움이 될 뿐, 나에게 어떠한 작은 보람이나 성과를 직접적으로 가져다주지 않았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먹기 일쑤였다. 그래서 점점 더 의욕을 잃어갔고,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나 기대도 부재했다. 나는 거대한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제가 다녔던 회사 중 '이너'와 '아우티' 간의 균형이 가장 심하게 깨졌던 곳은 마지막 직장인 공기업이었습니다. 특히 재직 초반에 그 경계가 지나치게 허물어졌죠... 모두가 저에게 주목했고 저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십거리가 됐어요. 하물며 선택사항임을 가장한 주말 근무를 피하기 위해서는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할 예정인지 주절주절 늘어놓아야만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퇴근 후와 주말에 '아우티'인 상태일 때도 온전한 제가 아닌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하는 순간까지 기계적인 소통을 하고, 사담을 주고받는 건 최대한 피하는 자발적인 '아싸'의 길을 선택했죠. 더 이상 저의 사생활을 직장 내의 '이너'인 상태에서 공유하지 않아도 됐지만, 하루 중 9시간 이상을 감정 없는 부품처럼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회사에서의 저는 제가 아닌 것만 같았죠.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을 느꼈던 대목이다. 아무튼 나는 생각과 행동의 괴리가 커지면서, 점점 말수를 잃어갔고 조용히 일만 하는 직원이 되었다. 물론 초반에는 나도 새로운 일을 맡게 되면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동기들과도 잘 지내보려고 동아리모임도 만들고 여행도 가기도 했다. 그러나 상사의 신임과 관심을 받을수록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그런 사람에 의해서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주목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런 것들에 부담을 느꼈고, 아주 조용히 살았다. 일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보상은 늘 받는 사람만 받았다.
그동안 겪은 것을 바탕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공직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인간관계와 평가를 중요시하며, 자신의 사생활을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리고 매우 순하고 순종적이다. 이를 미덕으로 여긴다. 물론 이 부분 때문에 공직 생활이 편했던 부분도 있다. 공무원들은 업무가 언제든지 바뀌기 때문에 누구든지 같이 일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대놓고는 함부로 화내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엄청 비밀스럽게 정보를 주고받고 은밀히 소문을 내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들이 숨을 막히게 했다.
내가 입직했을 때가 꼰대 세대 상사들의 거의 끝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모두 정년 퇴직하고 분위기가 나아진 편이다. 지금 입직하는 후배들은 훨씬 괜찮은 시기에 들어오는 건 분명하다. 나도 소위 MZ 세대에 속해 있긴 한데,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부서장, 팀장들이 모두 옛 공무원 마지막 세대여서 세대 차이가 엄청나긴 했었다. 그리고 내가 애초에 공무원이 좋아서 온 것도 아닌데, 공무원이 가장 대단한 직업인 양 불합리한 희생과 봉사를 강요받는 게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래서 거의 입직과 동시에 퇴직을 꿈꾸며 발을 반쯤 빼고 지냈던 것 같다.
초반에는 이러한 상황들을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보기도 했지만, 공직생활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결국 되돌아오는 건, 여기를 나가면 더하다는 말, 인터넷 댓글마저 공무원 후려치기가 판치는 상황 속에서 누구 하나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같은 공직에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더더욱 그들과 다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외로웠다. 외로워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좋아할 만한 건 다 해본 것 같다. 외국어 배우기, 운동하기, 제빵 배우기, 여행하기, 글쓰기, 독서모임 나가기, 그림 그리기, 라탄공예 자격증 따기, 상담받기, 식물 키우기, 방통대 다니기... 일은 일대로 시달리고, 사람들과도 친해지지 못했던 나는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하루 중 반인 업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삶은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부모님 말씀대로, 몇 년만 참아보기, 업무에 재미를 느껴보기, 일이 끝나고 워라밸 즐기기 등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나는 애초에 공무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공무원을 합격했을 때, 기뻤던 것은 공부를 했던 시간들을 '합격'으로 보상받았던 것에 대한 보람이었지, 공직 생활의 시작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업무가 힘들어도 '공무원'이라는 타이틀과 복지에 굉장히 만족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면직을 말할 때도 진짜 그만둘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나도 주변에 면직하고 공무원 외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다들 이 길 외에 본인이 갈 수 있는 길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공무원 일을 계속해나가고 있는 거겠지?
자기변명일 수도 있지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뒀다. 그만둘 만큼 정신적 고통이 있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지만, 내성이 생겨서 이제는 그만두지 못한 채로 초점 없는 눈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내가 그동안 한심하게 여겼던 공무원으로 잘 살아가게 될까 봐 그만뒀다.
마지막으로 떠날 때는 신기하게도 직장도 사람도 미련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이전부터 정을 떼왔지 싶다. 지금껏 습관처럼 했던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꿔보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일은 무슨 일이든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나마 진심으로 다음을 걱정할 수 있는 나의 일을 하고 싶다. 아직 고민 중이고,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치열하게 충분히 고민하고 나서, 온전한 나만의 스텝을 차근차근 밟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