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점을 통과할 방법
광명동굴 가장 깊은 곳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길. 반지의 제왕 팀에서 내한하여 직접 만든 용 그리고 골룸 조형물이 있다. 특히 용 조형물은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흠칫 놀랄 정도로 실감 나고 무서운 용의 비주얼이었다.
아기띠에 안긴 18개월 둘째는 엄마 품 속이니 두려울 것이 없었고. 다섯 살 난 첫둥이는 계단을 올라가면 보일 용이 무서워서 몇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데 이 지점을 반드시 통과해야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때 함께한 대장 집사님이 넌지시 말씀하셨다.
"하연아. 엄마 손 잡고 가면 돼. 엄마 옆에 붙어서 가면 용이 안 보여. 괜찮아."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하는데 광명동굴에서 아이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그 용이었나 보았다.
"엄마 우리 오늘 동굴에 가서 뭐가 있었지?"
"뭐가 있었지?"
"용이 있었어."
"오 그러네 용이 있었네."
"응. 그런데 용이 가짜인데 왜 진짜 용처럼 무섭게 생겼지?"
"응. 그랬지? 사람들이 가짜 용을 너무 실감 나게 잘 만들어서 그래"
...
아이는 대화를 하다가 이내 잠들었지만. 동굴의 가장 깊은 지점, 용 앞에서 망설이던 아이의 모습, 집사님이 넌지시 던졌던 말, 내 손을 잡고 용 앞을 통과하던 아이.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보던 내 마음엔 뭉클하고도 깊은 울림이 찾아왔다.
"하연아. 엄마 손 잡고 가면 돼. 엄마 옆에 붙어서 가면 용이 안 보여. 괜찮아."
아이에게 용 조형물은 너무 무서운 존재였지만. 엄마 손을 잡고 엄마 옆에 붙어서 보니까! 엄마한테 숨어서 가니까! 용이 보이지 않았고, 아이는 그 지점을 큰 어려움 없이 담대히 통과할 수 있었다.
너도 그렇단다, 내 딸아.
하나님 말씀하시는 듯하다.
사람들의 시선, 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 그 누구에게도 결코 미움받아선 안 된다는 그릇된 압박감... 내 마음속에도, 나의 발걸음을 붙잡는 용 조형물 같은 생각들이 있다. 그 생각들은 너무나 실감 나서 나의 두려움을 자극하여 내가 그 앞으로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게 한다. (그런데 이 지점을 반드시 통과해야 나도 진정한 자유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바로 그런 생각들 앞에서 멈칫할 때. 오늘 첫둥이가 엄마인 내 손을 잡고, 내 옆에 붙어서, 용을 쳐다보지 않고 나를 쳐다보며 용 앞을 통과한 순간을 떠올린다. 나도 하나님 손을 잡고, 하나님 옆에 붙어서, 내 안의 생각들을 쳐다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된다.
나를 두렵게 하는 지점, 나를 산채로 꿀꺽 집어삼킬 것만 같은 생각들. 용 조형물이 가짜였듯, 용 조형물이 아이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못하듯. 내 마음속 동굴 깊은 곳에서 내 발목을 붙잡는 생각들도 실은 내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못하는 가짜 속임수들이다.
그 지점을 통과할 방법은, 하나님 손을 꼭 잡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앞을 뚜벅뚜벅 지나가는 방법뿐이다. 담대히 지나가 보아야 안다. 내 발목을 붙잡는 생각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것이 가짜 속임수라는 것을.
24.6.13.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