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인천에서 태어나, 2000년 ~ 2022년 제주에 살아간다.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 간의 사진들에 담긴 이야기, 이곳에 소소하게 기록합니다.
<1997년 인천에서 태어나 2000년 ~ 2022년 제주 : 22년간 제주에 살아간다는 것>
삼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느 하나에 몰두하면 미친 듯이 빠져든다. 첫 번째는 종이모형이다. 컴퓨터 게임은 재미가 없었다. 가장 먼저 접한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다. 3살 위의 큰형과 함께 했지만, 어린 나는 매번 형에게 지며, 게임에 흥미를 잃어갔다.
대신 그 시절 나에게는 컴퓨터와 프린터가 주어졌다. 캐논 사이트에 들어가, 종이모형을 인쇄해 칼로 자르고, 풀로 붙여가며 다양한 모양들의 종이모형을 만들었다.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서랍에는 내 종이모형으로 가득 찼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고, 몇 년간 하던 종이모형에는 먼지가 쌓여 갔다. 농구, 초등학교 시절 축구가 어려워, 자연스럽게 농구를 시작했고, 친구들과 농구를 즐겼다. 비교적 큰 키에 유리했고, 잘할 수 있었기에 재미있었고, 혼자서 밤늦게 까지 연습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농구하는 친구들은 더 많아졌고, 아침 일찍 기숙사 밖으로 나와 연습했고, 쉬는 시간 10분, 점심시간 모두 농구에 푹 빠졌다.
가로등이 모두 꺼져 림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친구들과 공을 던졌고, 그물망을 감싸며 공이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대학교로 올라오면서, 새로운 수많은 사람들, 술자리, 피시방, 농구는 점점 멀어졌고, 그렇게 미친 듯이 하던 농구. 대학교 2학년, 3학년이 되어가며 점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나에게 스며든 건 건축이었다. 농구에서 건축으로, 아침에 눈을 뜨고, 수업을 듣고, 잠을 자기 전까지 몰두했다. 대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개인 시간이 많았고, 급격히 늘어난 개인 시간 내에, 외로움과 고독함, 홀로 기숙사 방 안에서 있는 시간 동안 건축의 역사, 수많은 건축가들, 그들의 개념, 그들이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내는지와, 사람의 감각, 인체의 비례에 따른 공간. 등 다양한 이론들을 접하며, 건축 프로세스, 일련의 과정 건물이 지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몸에 익혔다.
경이로웠다. 이는 내 몸의 감각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감각들을 일깨우는, 살아간다는 느낌을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근신경계를 깨워야 근육이 크듯, 그 시절 내 뇌의 모든 신경들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바라보는 시선들이 예민해지고, 보다 디테일해졌다. 시각을 통해 촉감을 느끼고, 바람, 햇빛의 따스함, 습기, 온도 등 그동안 느끼지 못했을 감각들. 비로소 눈을 뜬 기분이었다.
그렇게 2018년도 대학교 2학년, 카메라를 사고 싶었다. 돈이 많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생일 선물로 카메라를 원한다 했다. 나의 컷 카메라는 Canon 6D 중고 카메라이었다. 중고나라를 실컷 찾아보며, 가장 저렴하고, 좋은 상태의 카메라를 찾아봤다. 그 시절 카메라 하면 캐논 밖에 생각나지 않았기에 캐논을 샀다.
판매자는 부부였으며, 문자를 남겼다. 게시글을 올리신 분은 카메라 주인의 아내 었으며, 구매를 원한다 연락드리자, 남편의 번호를 주었다. 그러나 남편은 문자를 읽지 않았다. 가장 적당한 가격과 구성이었기에 나는 기다렸고, 그렇게 한참 뒤에 답이 왔다. 간단한 연락을 나눈 후, 나는 입금을 했다. 나의 첫 중고나라 거래였다. 75만 원이었으며, 그렇게 큰돈을 써본 것은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지만, 입금 후 판매자는 연락이 없었다. 그리 큰돈을 입금한 것은 처음이었고, 부모님의 돈이었기에 불안에 떨었다. 2일 뒤에나 일이 바빠 이제야 답장해왔다고 했다. 그 2일 동안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참이 걸려 나의 자취방 문 앞에는 커다란 박스 안에 Canon 6D가 놓여있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취방 곳곳을 촬영했다. 흑백으로 말이다. 그저 대상에 집중해 물성과 그림자가 표현되고, 아무런 색 없이 질감과 대비, 형태만 담아내는 흑백사진에 푹 매료되었다.
자취방 문 앞을 촬영했을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비스듬한 각도로 빛은 방앞 주차장 벽에 햇빛이 들어왔고, 이는 강한 대비를 보여줬다. 노출을 1 스탑 , 혹은 2 스탑 낮춰가며 그 대비를 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한참을 촬영했다. 나의 첫 카메라, 나의 첫 시선의 기록이었다.
생각보다 크고 무거웠기에 들고 다니는 데에 무리가 있긴 했지만, 이후 친구들의 모습을 담고, 시간 날 때마다 시선 가는 모든 것들을 촬영했다. 욕실에 키우던 식물들에 물을 주며, 문뜩 지금 내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 식물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카메라를 들고 욕실 바닥에 앉았다. 축축하게 젖은 식물에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고, 욕실 빛에 의해 잎사귀 내부의 잎맥들은 선명하게 투과되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9년 8월. 정말 우연히, 즉흥적인 선택으로 카메라를 들고, 한 달 간의 캐나다 어학연수를 갔다. 열심히 담았다, 노출값을 바꿔가며, 자동 AF에 감사하며 자유롭게 담아냈다. 그 시절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다. 길가의 사람들, 동물, 도시의 분위기들.
50mm 화각에 도시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겼다. 체스를 두는 사람들, 길을 지나가며 대화하는 사람들, 아이스크림 차 앞에서 주문을 하는 사람들, 더위에 지친 모습들, 횡단보도를 건너는 자전거 탄 남자.
도시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가며, 시선을 돌리는 매 순간순간이 역동적이고, 활기찼다. 몬트리올에 들렸을 때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은 게 제일 후회된다. 몬트리올 사진은 핸드폰으로 촬영한 딱 한 장뿐이었고, 그마저 사진을 잃어버려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만 도시의 분위기, 그날의 날씨,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렇게 쌓인 사진들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구도, 내 시선들을 바라볼 수 있었고, 점점 사진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그날 카메라를 들고나가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나의 시선들, 사진 덕분에 남겨진 내 시선에는 그날의 기억, 온도, 분위기, 모두 생생하다. 이런 것들을 놓친 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미국 여행을 갔을 때 카메라가 없어, 핸드폰으로 찍었다. 더 많이 찍을걸 후회된다. 아무리 많이 찍어도 부족한 사진들이다.
내 모든 시선들을 데이터화시킬 수 없기에, 인상적인 장면들, 내 하루의 하이라이트들을 담아내는, 기록 목적의 사진인 것이다. 그것이 내 시선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며, 애착이 가고, 애정 하는 것들이다.
그렇게 모든 게 새로웠던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장면들, 매일 보는 모습들, 무엇을 담아내야 하지, 라는 의문과 함께 카메라를 만지지 않게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셔터만 누르면 모두 아름다웠고, 그날의 분위기, 날씨, 사람들 전부 새롭고 자극적이었다. 셔터 누르기 바빴던 때에서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사진을 잘 찍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여, 잘 찍는 사진에 집중하게 되었다. 요점은 나의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애정 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이 잘 찍는 사진이었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사진들, 모두 내 시선이기에. 그렇게 새로운 시작점에 놓인 나는 깊은 고민 끝에, 카메라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시작의 의미도 있었으며, 그 시절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르게 표현해줄 카메라가 필요했다. 마치 카메라를 바꾸면 사진 실력이 늘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매우 달라졌기에, 어느 정도는 카메라의 영향이 있다 생각한다. 카메라에 따라 사진을 찍는 환경, 태도 자체를 달리해 줄 수 있다 생각한다.)
조건은 지금보다 작고 가벼울 것, 옛것의 느낌이 날것, (이 시절 사진에 대한 의구심으로, 옛날 사진들을 꺼내보았었다. 나의 어린, 시절 형의 어린 시절, 동생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우리를 담아 줬던 그 시절의 사진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름 카메라를 알아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하나에 몰두하면 미친 듯이 빠져듬은 사진이 아닌, 카메라가 되었다.) 필름의 현상 방식, 로딩, 셔터의 작동원리, 조리개의 원리 등 기존에는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흔히 말하는 카메라의 3요소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필름 카메라의 구조들을 살펴보며 배우게 되었다.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렇게 필름 카메라를 알아보던 도중, 라이카를 만났다. 인터넷에서 라이카 카메라를 접하자마자, 매료되었다. 완벽한 카메라였다. 사진을 대하는 태도, 라이카의 역사, 사람과 카메라, 카메라와 피사체의 교감. 라이카를 반드시 사야만 하는 생각으로 나의 머릿속을 잠식되었으나, 문제는 역시 가격이었다. 학생인 나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대, 그렇게 나는 현실과 타협하며, 내가 과연 필름을 구매해서, 열심히 찍고, 현상을 맡기고, 스캔본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다시 디지털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필름 카메라 느낌이 나며, 작고 가벼울 것, 옛것의 느낌이 날것. 그렇게 유튜브에서 필름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고, 후지필름에 푹 빠지고 말았다. 당시 가지고 있던 예산에도 부합했다.
그렇게, 며칠 뒤 내 책상에는 후지필름 X-pro3가 놓여있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사진 생활을 시작했다. 내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며, 나의 그날의 기록, 내가 애정 하는 것들을 시선에 담는, 사진은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카메라와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학교를 휴학했다. 다시금 개인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나의 첫 번째 개인 시간은 건축에 몰두했다면, 이번에는 카메라, 사진에 몰두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사진도 좋지만 카메라 자체의 그 기계적인 미학에 매료된 나는 긴 기간 동안 수많은 필름 카메라들을 다루었다. (디지털카메라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감각, 빛의 화학반응으로 타들어가 사진이 만들어지는 필름에 갈증을 느꼈다.)
*) 제주도에서는 현상하기가 무척 어려웠고, 그나마 있는 곳은 너무 멀거나 현상의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필름 촬영에 어려움을 겪던 순간 함덕에 새로운 필름현상소가 생겼다. 높은 퀄리티에 맡긴 당일 날 바로 스캔본을 보내주셨다. 이때 만약 현상소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필름 사진을 찍지 못했을 생각에 무척 감사하다.
첫 필름 카메라는 야시카 T4, 수동으로 사용할 미러리스 카메라가 있었기에, 자동 필름 카메라에 관심이 갔다. 작고 아담하고, 주머니에 쏙 들어가며 성능은 확실한, 라이언 맥긴리가 사용했다는 필름 카메라를 알게 되며, 구매했다. 사진과를 전공하셨던 판매자분께서 다양한 필름들과 함께 제주도 관광 간식도 담아주셨다.
매일 들고 다니며 눈에 닿는 대로 찍었다. 즐거웠고, 빛을 담고, 친구들을 담고, 풀도 담았다. 그때 브런치에서 '엄마의 카메라'라는 글을 읽었다. 제주에 거주하는 어머니 었으며, 글을 너무나도 따뜻하고, 정감 있었다. 아이들을 담아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나 또한 훗날 결혼하여, 아이가 생기면 이리 담겠다 다짐했다. 그분이 네츄라 클래시카를 사용하신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또, 한참을 매물을 찾아 아주 깨끗한 네츄라 클래시카를 구하게 되었다. 손에 착감기는 그 자그마한 사이즈, 촉감을 잊지 못한다. 이렇게 자동카메라 두 대를 만지다 보니, 수동 필름 카메라가 궁금해졌다. 자동카메라를 쓰다 보면 결국은 수동 카메라도 쓰게 된다더니 정말이었다.
클래식. 초점을 맞추고, 노출값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는, 그 클래식함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구매한 카메라는 캐논 A-1, 무척 무겁고, 웅장한 셔터 소리. 마음에 들었다. 시원시원했고 결과물 또한 내가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 그대로 아주 잘 담아주었다. 미러리스 카메라, 자동 필름 카메라, 수동 필름 카메라. 다음은 렌즈에 관심이 갔다. M42 마운트 렌즈, 유니버스 렌즈에 빠졌다. 슈퍼 타쿠마를 쓰시는 분의 결과물을 봤다. 매력적이었다. 슈퍼 타쿠마는 팬탁스 스포 매틱 기기와 함께 팔렸다. 그렇게 팬탁스 스포 매틱 기기를 구매했고, 클래식한 바디와 시원한 셔터 소리, 철제 바디의 묵직함. 그리고 그 결과물. 아주 만족스러웠고, 이 시절 이종교배에 관심이가, 필름 카메라에 사용하는 렌즈를 미러리스에도 사용하기 위해, 어뎁터 또한 구매했다. 점점 기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문제는 스포 매틱 바디에 노출계가 되지 않았고, 나는 노출계 없이 찍어보는 것이 처음이라 두려움 반 새로움반으로 핸드폰 노출계로 촬영을 시작했다. 이 시절 노출에 대한 감이 잡혀갔다.
이후 배터리가 멀쩡한 스포매틱과, 다양한 화각의 슈퍼타쿠마를 구매하기 위해 매물을 하루 종일 찾다 보니, 이후 내 책상에는 스포매틱 SP 두대와 스포매틱 SP F, 이렇게 총 3대의 스포매틱이 놓이고 말았다. 그렇게 그중 멀쩡한 바디를 찾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어찌어찌하여 좋은 분들에게 다시 판매했다. 그러면서 너무 많아진 기기들에 야시카 T4, 네츄라 클래시카 또한 판매했다. 수동 카메라는 스포매틱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캐논 A-1도 판매했다. 이후 미놀타 X700, X300, 다시 캐논의 묵직함이 그리워 캐논 A-1, 이후 하프 필름이 궁금해 올림푸스 펜 EE3, 친구들과 재미로 촬영할 후지 270 zoom 자동카메라, 팬탁스 스포매틱 F 블랙 바디, 클래식한 옛날 바디를 경험해보고자, 캐논 L3에 침동식 렌즈를 구매했다. 그렇게 2021.07.18 현재, <미놀타 X700, 후지 X-PRO3, 펜탁스 스포매틱 F 블랙, 펜탁스 스포매틱 SP, 캐논 A-1, 올림푸스 PEN EE3, 후지 270 ZOOM, 캐논 L3>으로 총 8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미놀타와 캐논 A-1은 M42렌즈를 끼울 수 있도록 각각 어뎁터 또한 구비해두어, 하나의 렌즈로 모든 필름 카메라에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현재 나는 카메라에 푹 빠졌고, 사진에 푹 빠져있으며,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과거를 기록하고 다시금, 지금을 담아내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에 대한 고민들과 함께한다.
‘이게 왜 좋지. 아 이래서 좋구나, 난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나를 알아가는 과정, 가장 솔직한 감정들. 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들은, 내가 애정 하는 것들을 담아내는 순간이다. 기억하고, 담아내고 싶기에
결국 보면, 우리는 모두 좋아하는 것들만을 찍는다. 나에게 찍는다는 행위는 기억하고 싶고, 소중하다, 애정 한다는 감정표현이다.
내 삶을 기록하며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전부 우연이라는 것. 내가 카메라를 그날 들고나가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사진들처럼,
그렇게 우연적인 일상, 그 수많은 경우의 수는 너무나도 방대하여 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아주 작고 여린 존재인 우리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될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것 이기에, 우리는 그 어떠한 제약 없이 자유로이 생각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자유로움은 그로부터 나오는 것 일지도 모른다. 흐르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 내 모든 선택에 후회 없으며, 나의 선택으로 인해 세상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세상이 움직인다) 착각하는 것.
그러나 우리는 결국 흐르는 시간에 유영하는 지극히 작은 것을 인지하였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거대하고 고요한 침묵(시간, 이면, 어둠, 과 같은 무한한 깊이의 것들)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은 어차피 흘러가고, 우리의 생각은 무한하며, 그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롭기에 행복하다. 우리는 그저 일상에서 계속해서, 그 작고 반짝이는 행복감만을 우리의 시선에 담아내고 공유하고, 기록하며 살아간다.
成進, SEONGJIN
Photographer, Based in Jeju island
instagram. @seongjihu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