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너에 대한 이야기
태양 같은 아이였다.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이 눈에 선하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내 별명을 부르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영원한 청년, 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만사가 귀찮은 아웃사이더였고, 그 애는 주변에 늘 사람들이 모여있는 요즘 말로 ‘인싸’였다. 먼저 말을 걸어온 건 그 애였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평범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되어 대학 진학 후에도 연락을 이어갔다. 요즘 뜨는 삼청동에 가자, 전시회에 가자, 지치지도 않고 권유하는 친구에게 나는 끈질긴 거절로 대응했다. 그 애는 내가 재밌다고 했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고도 했고, 그리고 ‘특별’하다고 했다. 그 말이 나에 대한 호의라고 느껴졌기에 기쁘기는 했지만 꿈 많고 패기 넘치는 20대에게 ‘특별’하다는 말이 딱히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당연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내 친구들은 우리 집에 오는 걸 꺼려했는데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엄마에게, 마치 날 부르듯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아줌마~’하고 부르며 매일같이 우리 집에 드나들던 그 아이. 사고뭉치였던 나의 친구들은 다 못마땅하게 보던 엄마가 유일하게 칭찬했던 아이였다. 귀엽다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누구나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 귀찮음은 늘 거기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사치였다.
2007년, 내 친구는 암 선고를 받았다. 꽃다운 나이 스물둘이었다. 종양이 발견되었는데 음성이라고 했고 제거 수술을 했다. 오진이었다. 이미 수술로 인해 암세포는 전이가 되었고, 우리의 최대 무기였던 젊음은 최대 약점이 되었다. 한번 전이된 암세포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20대, 그 싱그러운 5월의 봄 같은 시절의 우리에게 죽음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회복될 거라고 믿었지만 약간의 불안감이 우릴 따라다녔다. 우린 그 녀석을 떨쳐내기 위해 교회에 갔다. 신에게 기도를 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성실함으로 남들보다 빠른 ‘응답’을 받고 싶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걸까.
힘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 애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가발을 쓰면 아픈 사람이라는 걸 모를 정도였다. 예배나 교회 모임 때문에 자주 만나면서 그 애는 나를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처음으로 전시회에도 갔다. ‘모네’의 전시회였다. 의외로 즐거웠기에 지금도 전시회에는 종종 간다. 그렇게 여러 번 가자고 졸랐던 음악 연주회에는 한 번도 같이 가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 애는 피아노를 아주 잘 쳤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부르면 금세 코드를 찾아내서 반주를 하곤 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질 줄 알았다. 조금은 불편해도 계속 함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신은 나의 첫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2008년 1월, 스물셋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애는 영원히 나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는 건 나뿐이다.
2021년 현재, 나는 흔하고 진부한 어른이 되었다. 파도에 바위가 깎이듯 세상 풍파에 많이도 치였다. 연애에 취업에 실패하며 하나씩 가지가 잘려가던 나의 꿈 나무는 덩그러니 기둥만 남아버렸다. 아등바등 살다 보니 겨우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예전의 나에게서 이름 없는 무언가가 쑤욱 빠져나간 느낌이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을 장만하는 것을 보며 나만 홈리스라 자조하고, 남들보다 높은 연봉받으니 성공한 인생이라 자위하는 속세에 찌든 어른. 팍팍한 삶 속에서 문득 ‘그 애’를 떠올리면 부끄럽다. 그 애는 나의 무엇을 본 걸까? 새삼 귀하게 느껴지는 ‘특별’하다는 말. 아직도 나는 특별한 걸까. 슬프면서도 위안이 된다. 내 친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키보드 앞에 앉았다. 나는 재미있고, 언어 감각이 뛰어나다. 나의 재산이나 연봉 말고도 분명 나에게는 나만의 ‘특별함’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적어도 한 명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영원한 청춘. 나는 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청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언젠가 너를 만날 때까지, 너를 매료시킨 나의 반짝임을 지켜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