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쟤 치즈를 옮겼을까?

일상적 의문 첫번째

by 숲속의조르바

< 표지: 에드워드 호퍼, Gas, 1940 >



한동안 경기도 분당에서 강원도 양양을 매주말을 끼고 오가야 했던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그 길은 즐거이 바다로, 산으로, 스키장으로, 유명한 절로, 근사한 리조트와 팬션으로 가는 즐거운 여행길이었을테지만, 일로 가야만했던 내게는 그 매번이 지겹고 지루하고 가기 싫은 길이었었다. 더구나 서울양양간고속도로는 길고 잦은 터널 때문에 폐쇄공포가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하고 힘겨웠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두어시간을 앞당겨 출발해 느긋하게 국도만을 이용해서 가는 것이었다. 경기도 광주와 양평를 지나 여주와 이천을 걸쳐 홍천, 인제를 지나 한계령을 넘는 드라이브코스가 만들어졌다.


그 길 중에 홍천을 지날 즘에는 새로 뚫린 양양간 고속도로와 거의 나란히 길이 이어진다. 차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을 느긋하게 가다보면 문을 닫은지 제법 오래되어 방치된 듯한 주유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림잡아 세어봐도 쉽게 여남은 개를 넘겼다. 국도 큰길가 주유소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상가 같은 것이 폐허처럼 된 곳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 제목이 생각이 났다.


치즈가 옮겨진것이다. 주말마다, 휴가철마다 꽉꽉 붐비던 치즈의 행렬이 새로운 고속도로를 따라 가버린 것이다. 갑자기 옮겨진 치즈때문에 삶이 뿌리채 바뀌었을 것이다. 그들의 잘못도 아니고, 그들의 선택도 아닌데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치즈가 옮겨질 것을 대비하지 그랬냐말은 의미가 없다.


“누가 쟤 치즈를 옮겼을까?“

“누가 왜 치즈를 옮겼을까?”



우리는 그저 매일 매일 작은 양의 치즈라도 겨우 먹기위해 졸린눈을 비비며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경쟁하고, 고된 날을 보낸다. 큼지막한 덩어리는 꿈도 못꾸고, 그저 끼니를 때울 정도로만 파먹기도 버겁다.


요즘 AI로 일자리를 위협받는다고 난리다. 거대한 치즈 덩어리가 옮겨질 것이란다. 그리고 서울양양간고속도로처럼 치즈를 통째로 로봇들이 옮기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저 치즈 부스러기라도 먹으려는 몸부림도 불가능해질까봐 안타깝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그림에서만 치즈를 보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내용도 가물한 그 책 제목을 몇번이고 웅얼거리는 요즘이다.


"누가 쟤 치즈를 옮겼을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