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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알렉산더 에크만의 '해머'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

by James 아저씨

이곳 글들은 문화적 열등감에서 빚어진 내 발걸음에 대한 엉거주춤한 내 감성을 기록한 것들입니다.

마치 황새 쫓아가는 뱁새 다리가 찢어지듯... 그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불나방처럼 달려든 나의 얕디 얕은

감성의 기록이고 또 그 아마추어적 감동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억은 짧고 감동은 오래이고 싶은... 주로 공연과 전시가 될 것입니다.


2025년 11월 15일 3pm LG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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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서울식물원에는 고즈넉한 가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LG아트홀... 서울식물원 한편에 자리 잡은 이 아트홀은 내가 좋아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작품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단순한 시멘트덩어리 같은 건물의 단순함이 주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꼈는데 이 아트홀의 시그니처 향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느껴지는데 이 향기는 조향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LG아트홀만의 향이란다. 이것 또한 상업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 그 늦가을의 어느 주말... 스웨덴 예테보리 오페라 무용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갔다. 나는 현대무용을 좋아하는데 이스라엘의 '오하드 나하린', 네덜란드의 '한스 판 마넨' 그리고 이 '알렉산더 에크만'... 올해 운 좋게도 이 세 사람의 작품을 모두 관람했다. 그 마지막... 이번 '알렉산더 에크만'의 작품 <해머>를 보러 온 것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식물원도 한 바퀴 돌고 아트홀 밖과 홀 안의 로비와 아직 공연 전인 무대 등을 사진 찍고 공연 전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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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LG아트홀 전경/ 중) 아트홀 로비/ 우) 아트홀 공연전 무대

드디어 1부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알렉산더 에크먼은 늘 새로운 비주얼 쇼크를 선물하는데 이번엔 어떤 시각적 쇼크일까 궁금했다. 이 북유럽 최대 댄스 컴퍼니인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 컴퍼니는 20개국 출신의 무용수 30여 명이 무대를 누비며 현란한 동작들을 만들어 냈다. 대략 잡아 아시안이 3명 정도에 흑인도 서너 명은 되는 것 같았다. 특이하게도 무대 바닥이 스크린으로 바닥의 스크린과 무대 위 무용수의 움직임이 독특하게 다가와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르게끔 느껴지기도 했고 중요한 건 "누구도 무감각하게 두지 않는다"게 이 댄스컴퍼니의 모토인데 정말 공연중반쯤 되자 몸이 근질 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환호와 함께 1부가 끝이 났는데 커튼콜이 이어지자 이 무용수들이 일렬로 무대 앞에 섰다. 이례적으로 마지막 무대가 아닌 1부 끝에서 말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음악이 쿵쾅거리며 나오고 핀 조명이 갑자기 개개 무용수들을 비추는데 아뿔싸... 이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성큼성큼 객석으로 오더니 객석 위로 그러니까 관객 머리 위로 성큼 거리며 의자를 밟고 일어서 나오더니 그대로 춤을 추는 것이다. 그야말로 막춤인지 계산된 춤인지 모르지만 관객을 무아지경으로 빠트리겠다는 것처럼 난리법석으로 만들었고 객석 여기저기서 환호와 함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러자 무용수들은 한껏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고 심지어 관객들과 함께 스킨십을 하며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객석에게 팬서비스인지 무대도 아닌 객석 의자 위에서 또는 관람객 사이에서 그렇게 한동안 막춤을 춰대 객석에선 환호와 탄성과 휘파람이 난무하는 무아지경의 상황이 돼 버렸다. 이런 무대 광경은 처음이었다. 공연 전 공지사항으로 어떤 촬영도 안된다는 공지는 무색하게 모든 관객들이 사진을 찍었고 나 또한 이 희귀한 상황을 찍었다. 플래시 사용하는 사람에겐 와서 제지를 했고 일반 촬영은 그냥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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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공연이 끝날 무렵 광란의 춤 파티가 시작된 광경, 객석까지 난입(?)한 무용수 들

그렇게 광란의 1부 공연이 끝나고 INTERMISSION은 30분... 좀 길다 싶은데 아마도 무대 장치를 바꾸는 모양이었다. 휴식시간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떤 관객 중 한 분이 안내요원에게 꽉 잠긴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데 자신은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데 무대에서 저 공연 중 일어난 먼지 때문에 알레르기로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컴플레인을 했다. 안타까웠다. 이 공연 측에서 이럴 때 어찌해줘야 하는지... 그분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인데... 어찌 해결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긴 중간 휴식에 밖으로 나와 식물원 쪽으로 걸어갔다 왔다.

CoMPAS25-해머-상세-750.jpg 2부 Talk Show(LG아트센터 홈피에서)

공연 2부 중, ‘토크쇼(Talk Show)’ 장면은 익숙한 TV 토크쇼의 포맷을 빌려 현대 미디어 문화를 날카롭게 비튼다. 과잉된 형식과 피상적 콘텐츠가 점령한 우리의 일상을 풍자하는 장면으로, 끊임없는 웃음과 박수, ‘Good Vibes Only’를 강요하는 상황은 대화를 공허한 소음으로 바꾸고 감정마저 퍼포먼스로 전락시킨다. 신보 ‘Me, Myself & I’ 발매를 기념해 등장한 셀럽 듀오(Kim & Kim Kardumdum dumshian)는- 이름 또한 킴 카다시안이 아닌- 오스카상 45회, 골든 글로브 97회 수상, SNS 팔로워 5,670억 명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수식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진행자들과 주고받는 반복적 말장난, 과도한 자기 과시, 의미 없는 공감을 강요하는 제스처는 우리의 미디어 일상을 비추는 거울처럼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에 웃고 울며 반응하는가. 이 장면은 묻는다. 진짜를 향한 여정, 진짜 ‘나’를 향한 망치질(Hammer)을 이제는 시작할 수 있겠느냐고... 사실 나는 이 영어 대사를 잘 못 알아들으니 어느 지점에서 웃어야 할지 웃음포인트를 놓치고 대개는 한 박자 늦게 웃거나 옆사람이 웃을 때 따라 웃었다. 프로그램해설집이 없었다면 그마저도 뭔지 어떤 상황인지 몰랐을... 이 놈의 영어는 이런 데서도 나를 힘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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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모든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들의 커튼콜 인사/ 우) 박수로 끝나는 줄 알았더니 느닷없는 춤판이 벌어지고

드디어 모든 공연이 끝났다. 저 비비드 한 색깔의 무용수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했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과 함께 인사를 끝내고 퇴장할... 줄 알았던 무용수들은 느닷없는 막춤 퍼레이드를 펼쳐 또 한 번 관객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45분 1부 공연, 중간 휴식 30분, 2부 공연 45분의 두 시간 공연이 끝이 났는데 아직도 머릿속엔 무대를 겅중겅중 날아다니는, 또는 무대를 기어 헤매는 것 같은 무용수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또 광란의 춤판이 머리에서 윙윙 거리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과의 대화가 있다는데 어차피 영어

대화를 진행하는걸 내가 남아서 구경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해서 밖으로 나오니 아직 가을 해는 지지 않고 서쪽 하늘에 걸려 있었다. 서울 식물원 더 멀리까지 걸어갔고 그곳은 더 가을이 깊어 있는 듯했다.

호숫가에 오리 떼도 가을의 마지막 자락을 잡으려는 듯했고... 단풍잎을 떨구는 나무들이 아직은 을씨년스럽지 않았지만 가는 가을의 아쉬움과 너무 강렬한 공연의 잔상이 머리에 남았다. 오는 내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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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현대무용단으로, 스웨덴 예테보리 오페라 하우스에 상주하고 있다고... 20개국 출신 36명의 무용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테보리 발레단’을 전신으로 하고 있어 고전부터 현대무용까지 춤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 강점이라 한다. 연간 3~4편의 신작을 발표하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2023년에는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는 이곳 LG아트센터 서울에서 한국 관객과 첫 만남을 가졌다. 그땐 공연은 보지 못했고 공연평만 봤고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워싱턴 D.C., 시드니, 타이중 등 전 세계를 누비며 매 시즌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이들은, 알렉산더 에크만의 ‘해머’로 2년 만에 LG아트센터로 돌아왔고 나는 지난여름 이미 예매를 하고 기다려왔다. 에크만은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를 “함께한 무용단 중 단연 최고”라고 평가한 바 있으며, 그와 컴퍼니가 함께 구성한 이번 작품은 다시 한번 대담한 상상력과 강렬한 리듬, 정교한 무대 구성. 예측불허의 광란적(?) 막춤등으로 한국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 환호가 아직도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https://youtu.be/16PvptboI9I

LG아트홀 홈페이지에서

저런 춤을 90분간 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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