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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ins Mar 06. 2021

세 번째 독일 직장 이야기

나의 물맷돌을 들던 시간

2014년 9월 드디어 독일에서의 직장생활이 시작된다.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은 내가 처음 인턴을 했던 회사인 Mercedes-Benz Technology(MBtech)라는 기술개발 서비스 회사였다. 내가 인턴을 했던 부서와는 다른 부서였지만 그래도 이전에 경험해 보았던 회사였기에 처음 입사한 후에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근무시간을 입력하는 것이나 회사 구내식당 이용방법 등 회사 내에서 일하는 가운데 알아야 할 사항들은 조금 알고 있는 상태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후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성격으로 신입사원들에게 회사를 소개하고 사원증을 주고 회사 건물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같이 입사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알게 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 각자가 속한 부서로 편입되어 업무를 배정받았다. 


내가 일하게 된 부서는 엔진을 포함한 파워트레인 설계를 서포트하는 부서였다. 주로 하는 업무는 CAD로 설계되는 파워트레인 부품에 대한 설계를 의뢰받아 처리하고 고객에게 넘겨주는 일을 하는 부서였다. 이 외에도 부서가 맡아서 하는 프로젝트 중에 CAD 서포트 업무가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고객사가 있는 곳에 파견되어 직접 고객사 직원들이 원하는 때에 CAD 설계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학업을 할 때부터 관심 있게 배웠고 처음 인턴을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CAD를 통해 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 입사를 할 때 아니… 내가 면접을 보면서 내게 주어질 거라 했던 업무는 의뢰받은 부품의 설계를 직접 내가 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결정사항에 대해 고객사와 직접 이야기하며 최종적으로 부품 설계를 마치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이 내가 직접 고객사의 자동차에 들어갈 부품을 설계하고 또 설계과정 중 고객사와 직접적인 논의를 통해서 방향을 결정해 나갈 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력적인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 고객사로부터 의뢰받은 부품 설계가 없어 나는 직접 고객사에 파견되어 CAD 프로그램으로 하는 설계를 서포트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파견되는 모든 준비가 마치고 난 뒤 나는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가 위치한 슈투트가르트 운터튀어크하임에 있는 엔진 설계부서를 위한 CAD서포트팀에 합류하게 된다. 그곳에서 이미 서포트 일을 하던 우리 회사 직원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참 많은 것을 도와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함께 했던 직원들은 정말 유쾌하고 외국인이고 말도 잘 못하는 나를 참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친절한 동료들로부터 차근차근 일을 익히고 배우며 CAD서포트 일을 해나갔는데 사실 CAD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그 시스템을 익히고 고객사에 직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역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서포트를 위해 파견된 나와 내 동료들은 고객사와 철저히 분리되어있었고 간단한 의사결정조차 고객사가 지정한 사람과만 이야기를 나누고 진행해야만 했다. 처음에 일을 익히는 과정 중에는 서포트를 해야 하는 경우에 나는 그저 동료들을 따라가고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기만 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내가 혼자 고객사의 설계 엔지니어들을 도와주면서는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기억나는 일들은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일들이다…

어느 날은 나 혼자 서포트를 하기 위해 서포트를 요청한 직원이 있는 자리로 갔다. 그리고 CAD 설계를 서포트하며 어떤 기능으로 어떻게 원하는 부품의 형태를 설계할 수 있을지를 가르쳐주던 중 모니터를 손으로 짚어가게 되었는데 고객사 직원이 그걸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며 나에게 손을 모니터에 대지 말아 줄 것을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조금 놀라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내 내 모니터에 누군가의 손자국이 남아있으면 좋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이후부터는 모니터의 어느 부분을 가리킬 수 있는 작은 막대를 하나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또 어느 날은 한 직원이 서포트를 요청해서 갔는데 처음부터 무엇이 궁금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물어보지 않고 바로 나에게 자기 옆에서 이 설계를 좀 빨리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앉아서 만들어진 모델을 보면서 옆에서 그 직원이 이야기하는 대로 설계를 하고 도와주었는데 나중에는 그 직원은 아예 자기 일을 하고 나는 그 옆에서 앉아 그 직원을 위해 부품 하나를 설계하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머릿속에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는 통로 쪽에 작은 의자에 앉아 그 설계를 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긴에 흡사 그 직원이 자기를 위해 고용한 인턴 같아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창피했다. 또 한편으론 어떻게 이런 설계조차 진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회사를 들어왔을까 하며 화도 났고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기억에 2시간을 훌쩍 넘겨 겨우 첫 모델링을 마치고 그 직원에게 보여준 뒤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서 나중에는 꼭 저 일을 이 고객사에서 내가 직접 할 수 있게 이 고객사의 정직원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을 품었다. 


처음 내가 투입되어 일했던 CAD서포트 프로젝트를 돌아볼 때 참 힘들었고 아쉬웠다. 누군가 나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그냥 그렇게 수동적으로 누군가가 서포트를 요청하기를 기다리던 시간들… 내가 지원했던 자리의 성격과 달랐고 내가 기대했던 업무가 아니었기에 너무 긴장되는 첫 프로젝트였음에도 일에 대한 동기가 많이 떨어졌던 시간이었다. 처음엔 서포트 하나하나 하는 것이 너무 긴장되고 또 한편으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재미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자동차를 직접 보고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어려워졌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 1년 반 동안 했던 CAD서포트 일을 통해 난 CAD 프로그램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배울 수 있었다. 정말 서포트라는 업무는 내가 그 프로그램을 전문가 수준으로 알지 못하면 하지 못하는 일이었기에 내가 그 프로젝트 업무를 마치고 다른 곳에 투입될 때에는 정말 난 그 CAD 프로그램에 전문가가 되어있었고 그 이후에 이어진 다른 프로젝트에서 CAD 프로그램을 통한 설계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그가 매일 같이 던지던 물맷돌을 가지고 나가서 자기보다 훨씬 큰 골리앗을 맞춰 쓰러뜨린다. 그가 자기 손에 들린 물맷돌을 가지고 던져서 골리앗을 맞춰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그가 매일같이 양을 돌보며 물맷돌을 가지고 자기 양을 해치려는 동물들을 쫓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돌을 들고 맹수들을 쫓는 게 일상이었던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에겐 돌을 던지는 일은 익숙하고 능숙한 일이었고 결국 매일 던지던 물맷돌을 가지고 큰일을 이룬다. 나에게도 내 직장생활의 첫 번째 업무였던 CAD서포트가 내게 주어진 물맷돌을 던지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때 그렇게 매일 할 수 있었던 일은 CAD 프로그램을 켜고 매일같이 그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익히며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그로 인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물맷돌과 같은 CAD 프로그램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지금도 CAD를 이용한 시스템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때의 시간이 이제는 고맙다. 그 일을 하며 매일같이 불평하고 힘들어하던 내가 부끄러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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