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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Jan 18. 2023

'H.O.T.'와 '뉴진스'

내 나이가 어때서



난 슬플 때는 힙합을 춰


<언플러그드 보이> 현겸이는 슬플 때 힙합을 추었다. 그리고 난 슬플 때나 기쁠 때 아이돌 음악을 들었다.

아이돌 음악은 보통 접근하기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곡이 많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 복잡하고 심오한 노래보다는 그게 좋았다.

단순하고 신나는 비트와 화려한 볼거리 들로 무장한 그들의 무대는 언제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즐겨 들었다.


누군가 '요즘 노래'는 정신없다며 불호를 외치는 사람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어른들 기준 '정신없는 음악'을 주로 들어왔던지라 거부감 없이 새로운 곡에 빨리 적응했다.


룰라, 언타이틀, 듀스 등 댄스음악으로 인기가 치솟던 여러 그룹들 중에 나의 십 대 시절을 뒤흔들었던 가수는 단연코 H.O.T. 이 다섯 오빠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십 대들의 우상을 표방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오빠들의 노래와 춤은 말 그대로 돌풍이었다.

 

보는 순간 필연적으로  빠져들어 한 마리의 불나방처럼 모든 걸 던지고 달려들었다.

평생 누군가를 그렇게 맹목적으로 좋아해 본 적은 처음이었고 음악을 그렇게 많이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단지 널 사랑해

별거 없는 가사 하나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단지가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티브이방송에서도 심도 있게 토론했던 그때 그 시절 H.O.T. 의 인기는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가사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세상에 그보다 더 훌륭한 노래는 없었고 애절한 노래는 없었으며 내 영혼을 울리는 음악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싱글앨범, 디지털 앨범이라고 일 년에 몇 번씩 컴백하는 것과 다르게  앨범과 앨범 사이에는 준비기간이라는 명목으로 긴 휴식이 있었던 때였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오빠들의 음악으로 달래며 가사를 곱씹고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수백 번 돌려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컴백날이 다가오면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잃어버린 부모를 찾았다고 해도 그렇게 반워 할 수 있을까.

아침 일찍부터 음악사 앞에 줄을 서서 1분이라도 더 빨리 오빠들의 앨범을 접하려는 마음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게 간절했다.


전사의 후예를 시작으로 캔디의 귀여운 모습까지 19살, 18살, 17살 오빠들의 음악은 그렇게 소녀의 여린 마음을 홀랑 가져가 버렸고 뒤흔들었다.


출처: 응답하라 1997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게 당연하지만 갑작스러운 해체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인생을 걸정도는 아니었는지 오빠들 없이 죽네 사네 울부짖었던 것 치고는 하루하루 잘살았다.


첫 음악의 기억이 아이돌 음악이었던 것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음악 취향이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의 해체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아이돌음악을 들었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했다.

세상은 새로운 음악을 꾸준히 내놓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플레이 리스트는 다른 아이돌로 채워졌다.



어릴 때는 엄마들은 다 트로트만 듣는 줄 알았다. 아니면 잔잔한 통기타 음악이라던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노래취향이 달라지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스스로 제 앞가림하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내 mp3플레이어 리스트는 항상 아이돌들이 부르는 음악이 차지하고 있었다.

신나는 음악과 춤이 있는 노래를 들을 때면 흥겹기도 하고 벅차오르기도 하고, 마치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좋았다.

삭막한 출퇴근 시간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출처: ditto mv


최근에 즐겨 듣는 노래는 마침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콘셉트 '뉴진스'의 ditto.

어깨에 뽕이 들어간 교복재킷이 친숙했고 소품으로 나오는 '마이마이'가 그 옛날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북적이던 매점, 하얀색 체육복, 친구와 한쪽씩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들었던 노래.


바로 어제 같았던 십 대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아련한 노래를 무한반복 하고 있을 때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친구들 나이가 04년생, 05년생.. 08년생구나

어제 태어났네.


따지고 보면 '뉴진스'의 나이는 그때의 오빠들의 나이와 비슷하다. 그에 반에 내 나이만 하염없이 먹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슨 음악을 듣던 그게 나이와 무슨 상관이야 싶지만

아이또래의 친구들이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걸 듣는 이 들어 기분이  민망했다.

아줌마가 주책이구나. 싶었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됐음에도 여전히 트로트 음악은 듣지 않는다.

계속 어릴 때 듣던 음악과 비슷한 노래를 듣고 있으며 음악 취향은 예상처럼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우아해질 줄알았것만 이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철은 없고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고 있는 사춘기 소녀만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 할머니가 세월이 흘러도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고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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