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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Feb 07. 2023

마스크 해제 후 우리는

마스크 착용 3년

설 연휴 이후 1월 30일부터 1단계 의무 조정 시행으로 실외에 이어 실내에 서도 마스크를 자율적으로 착용하도록 권고로 전환함
     -다만, 고위험군 보호 등을 위해 감염 취약시설, 의료기관 약국 및 대중교통수단 내에서는 착용의무 유지(중앙방역대책본부)

설 전부터 마스크 해제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아직 시기상조이다라는 의견과 다른 나라도  해제했는데 왜 우리만 강제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줄다리기 마냥 팽팽했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사람들끼리 많았었다. 마스크를 써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매장 직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 그쯤 유난히 많이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수록 적응했던 것인지 어느덧 마스크  하나의 의복처럼 인식되어 갔다.

정말 해제가 되는 건가, 솔직히 실감 나지 않았다.


어찌 됐건 마스크 해제일은 다가왔다.

시끌벅적했던 것과 달리 해제 후는 오히려 조용했다.

해제가 됐음에도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안 것인가, 오늘부터가 아닌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짝 내렸던 마스크를 조용히 올렸다.


어른의 마스크 해제

설레었다. 이게 얼마 만가 싶었다.

마스크 해제 후 제일 먼저 헬스장으로 갔다.

마스크 쓰고 운동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가. 숨 막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속으로 가는 공기를 가로막는 것 없이 운동할 수 있다는 기대반.

이거 내 표정이 웃겨서 운동이 되려나 몰라, 걱정반이었다.


막상 도착하자 아직 마스크를 벗고 운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에잇, 김샜네. 오늘은 아닌가 보다 포기하고 러닝 머신으로 갔다. 

선두로 벗기에는 나조차도 어색했다. 조용히 마스크를 쓰고 혼자 열심히 달렸다.

아이고 숨차. 숨이 모자라 괴로워하다 속도를 낮추었다.

 양 옆의 사람들을 보니 니, 모두 마스크를 벗고 뛰고 있다.

앗싸, 드디 벗는구나 당당한 그들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


마스크를 내렸다.

한 겹 벗겨직접 콧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그래 이맛이지

좀 더 속도를 올렸다.


아이의 마스크 해제

"이제 마스크 해제돼서 벗고 다닌대 너무 좋다 그렇지"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를 쓰기 싫다 답답하다 난리 쳤던 기억이 생생했기에 아이도 반가워할 거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건넸다.


"아니, 싫어."

"왜? 좋지 않아. 마스크 쓰고 운동하는 거 답답했잖아."

"그냥 마스크 쓰고 있음 안돼?"

"되긴 하는데, 왜? 마스크 답답하지 않아?"

"아냐 그게 더 편해, 그리고 마스크 벗기 부끄러워."


"뭐가 부끄러워?"

"친구들이 내 얼굴 보고 못생겼다 그러면 어떻게 해"

"아냐 잘생겼어, 이렇게 멋진데 왜 그런 생각했을까"

"그냥, 창피해 마스크 벗기 싫어. 안 벗을래"

몇 번 더 마스크를 벗는 것에 대해 권유를 해보았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지난 19일 유튜브 채널 ‘하이니티’에 출연한 도경(왼쪽)과 윤하(오른쪽) 학생 캡처. 세계일보
 얼굴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외모의 호감도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적인 표현, 나의 정체성 구성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코로나 시대에는 이것이 다 막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특히 심리적인 과정에서 자기를 감추면서 어떻게 보면 이 과정을 은밀히 진행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금 마스크를 벗어서 맨 얼굴로 다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서 친구랑 관계하고 자기 자신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일부 마음이 약한 아이들은 많이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보입니다. (뉴스라이더_신의진 인터뷰 중)

마스크를 벗기 싫어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 청소년들이 맨얼굴을 보여주기 싫어 점심을 굶는다는 뉴스기사는 그냥 기자가 조금 살을 덧붙여서 쓴 것이라고만 여겼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내내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었다.

답답하다고 벗고 싶다고 울먹였던 아이가 어느 순간 스스로 잘 챙겨 쓰기에 의젓해졌다고만 생각했다.

바깥공기를 한 겹 덧 씌운 채 느끼는 아이가 안쓰럽지그렇다고 벗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그게 더 잘되었다고만 생각했다.


3년이란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찰나의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태어난 지 10년 된 친구들에겐 3년이란 시간은 인생의 3분의 1이다.

이제 서른 살 된 어른의 10년 세월과 같은 것,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란 뜻이다.


코로나-19가 앗아간 세월 동안 아이들이 잃어야 했던 것은 대면 수업 일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무엇을 견뎌야 했던 것인지 무엇을 잃은 것인지 뒤늦게 체감되었다.


이 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겠지.

마스크 쓰는 것을 적응했던 것처럼 벗는 것도 잘 적응할 것임을 믿는다. 그것 조차도 적응해야 하 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적립해야 한다는 게 좀 슬프지만


그래서 오늘도 아이에게 말한다.

"마스크로 가리지 않아도 정말 멋져"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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