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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Feb 03. 2023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많아지는 나이

삶의 의미

오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고인의 나이는 이제 마흔, 죽음을 입에 담기에 이른 나이지만 그는 지금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연장자가 아닌 이에게 절을 하는 것이 영 어색해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나왔다.

아직 죽음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그의 어린아이가 장례식장 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에 밟혀서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저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아이의 해맑음에 마음이 서글퍼졌다.


20대의 봄은 결혼의 계절이었다.

친한 친구, 회사 동료, 사촌들. 축복받기 좋은 날을 골라 결혼식을 했다.

예쁘게 차려입고 오랜만이네, 반가운 얼굴과 인사를 하며 축하를 나누는 것이 즐거워 결혼식 소식이 있으면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두고 기다렸더랬다.


결혼식이 사라진 자리는 자연스럽게 돌잔치가 채워졌다.

결혼 후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시기였으니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 돌잔치 소식이 들려왔다.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신부들은 이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아이를 안고 있었다.

많이 컸네, 라며 아이의 성장을 축하해 주고 키우느라 고생했어, 하며 엄마의 노고를 도닥여 주며 그들의 이벤트에 기꺼운 마음으로 축하를 건넸다.


우리의 다음 만남은 이 아이의 결혼식 자리에서나 보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하고 헤어졌다.

그다음이 장례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선택지에 없었다.

죽음이란 나와 거리가 아주 먼, 타인 같은 것이었다.


아직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염정아역의 세연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은 상관이 없었는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생은 두 달, 시한부 환자가 된다. 그제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첫사랑을 찾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모님이 돌아가셨다. 팔십을 앞둔나이었지만 꽤 정정하셨기 때문에 그 나이까지 건물 청소 일을 하셨다.

나이가 있으시니 그만 두시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올해만, 이번달만 하다 쓰러지셨다.

병원에 입원에 계시면서도 일터의 공백만 걱정을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야 진작 그만두고 인생을 즐길 걸 하며 후회하셨다.


지인의 부인이 돌아가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교육열이 엄청난 분이시라고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은 아이의 생활 중심으로 돌아갔고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그야말로 열정이 넘치는 분이라고 했다.

평범하고 무난한 삶이 이었으나 병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의 중학교 가는 길도 보지 못하고 떠나셨다.




죽음이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결혼식처럼 날짜를 정해둘 수도, 돌잔치처럼 미리 준비할 수 없다.

한 여름날 여우비처럼, 하늘이 맑아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소나기가 들이닥치는 것. 그것이 죽음이었다.



나 회사 그만두고 싶어


이제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남편의 한마디.

이십 년 가까운 직장 생활이 이제 너무 버겁다고 했다. 더 하다가는 죽을 것 같다고.

남아있는 대출금과 아이들 학원비에 꾸준히 들어가는 보험비 생활비 공과금 내야 할 돈 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일을 그만두게 되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제대로 맞물리지 않고 돌아가는 시곗바늘처럼 불완전한 기분에 덜컥 짜증이 밀려왔다


이제껏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다.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고 토익학원을 다녔다. 취직을 하려고 면접을 보고 만원 버스에 몸을 실어 출근을 한다. 돈 한 푼 아끼려 마트 세일 코너를 기웃거리고 이자를 더 많이 주는 은행을 찾아 적금 들며 조금이라도 더 미래의 넉넉한 생활을 위해 준비를 했다.

나중의 안락함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저축을 했다.

그때는 그것조차 즐거웠고 미래의 희망에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같이 보는 이 풍경을 내일도 같이 본다는 보장은 없다. 오래오래 얼굴 보며 산다는 것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는 삶의 끝이 불분명함에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졌다


폭탄처럼 던져 놓은 남편의 말에 "그래 그렇게 해"라고 했다.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세상 마지막 기억이 회사일뿐이라면 억울하잖아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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