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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Jan 24. 2023

조상님은 동그랑땡이 싫다고 하셨어

나흘간의 명절이 끝나가고 있다.

명절상을 준비하기 위해 떠났던 며느리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때? 이번에는 선방하셨나"

"말도 마, 세광주리 꽉 채워 부쳤어. 종류도 다양하게"

"아니 세 식구밖에 없는데 뭐 그렇게 많이 했대"

"내 말이 그 말이다."


항상 명절 때마다 화두는 전이다.

떡국으로 싸웠다는 집은 못 봤다. 하지만 전 부치다 치고받고 싸우고, 전 부치다 이혼했다는 소리는 굳이 누구한테 듣지 않아도 뉴스에 많이 나왔다.

보다 못한 성균관에서 전부치치 말라고 권고할 정도이니 말 다했지.

명절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내 주변의 며느리들은 서로 얼마나 많은 전을 부쳤는지 배틀이 이루어진다. 다 먹지도 못할 전을 부치느라 몸에 기름냄새가 배었다는 한풀이가 쇼미 더 머니를 방불케 한다.

진정한 힙합은 명절을 지내고 온 대한민국 며느리들 입에서 탄생할 듯하 자, 비트를 주세요.


출처:경북일보 기사 일부 편집

진정한 조상님의 자세

어릴 적 명절 전에 친가에 가면 바닥에 신문지를 넓게 펴고 쭈그리고 앉아 공장처럼 전을 부쳐댔던 것이 기억난다.

동그랑땡부터 고추전 녹두전 두부부침 그리고 목적을 알 수가 없는 다시마 붙은 전까지

렇게 뼈대 있는 가문은 아닌 거 같은데 명절 차례상만큼은 대감집 마냥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댔다.

그때는 옆에서 집어먹을 줄만 알았지 그게 엄마와 숙모의 피 땀 눈물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십 년도 훨씬 에 그러고 있었는데 아직도 전 때문에 이러고 있다니, 그마저도 내가 며느리가 되지 않았으면 그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전은 맛있으니까

조선시대에는 식용유뿐만 아니라 밀가루도 비싼  재료였다고 해요. 조선후기까지만 해도 밀가루 음식은 중요한 날에 먹는 귀한 요리 중 하나였고 밀가루로 쑨 소스( 묽은 밀가루풀)를 요리에 붓는 것은 고급요리의 조리법 중 하나였다고 해요 밀가루 부침개는 부잣집이 아니면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설날  정성이 가득한 맛있는 설날  모둠전 전의 유래 명절엔 왜 전을 먹었을까요?|작성자 두현


백번 양보해서 옛날에는 먹을게 귀했으니까, 명절에만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하니 그렇다 치자.

삼시세끼 꼬박꼬박 잘 차려먹는 현대인들이 명절에 까지 기름진 전에 갈비, 생선에 고깃국까지 조상님 핑계로 평소에 굶었던 거 마냥 을 차리는 것을 보고 진정한 조상님들이라면 후손들의 고지혈증 우려해야 할 수준 아닌가.


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우리 전의 민족이었던가

설 명절 한참 전부터 동네 마트 동태포 판매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매대 한 칸을 동대포들이 차지한 것을 보고 아 곧 설이구나 알아차린다.

간단히 찬을 해 먹으려고 간 돼지고기 한팩이나 살까 고기코너에 간다. 한팩이 거의 한 바구니만 해 진 것을 보고 되돌아온다.

사람들 전에 진심이구나

나모르게 명절에는 전 부쳐먹기 범 국민운동이라도 하는 걸까 싶었다.  


"서운하지 않니?"

네? 뭐가요?

이제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그래도 명절에 전은 부쳤다.

매해 기름냄새 입어가며 부쳐놔도 입 짧아 두세 개 먹음 젓가락을 놓아버리는 식구들.

딱히 누가 먹고 싶다 하지 않고 냉장고에 둬봤자 다시 꺼내 먹지 않아 버리는 게 태반인 전이라 올해는 하지 말자고 했더니 저러신다.

비만 와도 부쳐먹는 것이 전이고 세상에 맛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데 고작 전 하나에 서운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거 같다.


전찌개가 웬 말이니

몇 년 전에 전찌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전과 찌개의 만남이라니 이 무슨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조화인지. 하루 세끼 꼬박 전을 먹고 나니 이제 느끼해서 먹기 싫은데 넘쳐나는 전은 처리해야겠으니 나온 괴식었다.

괴식인 것 치고는 전찌개는  내 입맛에 맞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 많은 전을 해치워야겠다는 고민에 억지로 만들어낸 음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명절 손님을 모두 보내고 점심을 먹었다.

뭘 먹을까 생각하다 매콤한 라면이 생각났다.

칼칼하게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은 라면을 먹다 보니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세상에 사람들 다 아귀찜 먹으러 왔나 봐 바글바글하다"

역시 사람들 다 느끼했던 거야.


내가 조상님이 되었을 때는 이미 차례문화는 사라졌을 것이다. 이미 정리한 집도 많고 있다 해도 아마 우리 대가 거의 마지막이겠지.

그래도 혹시 남아있다면

후손들아 난 명절에 전은 싫어해 참고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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