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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녕 Jan 06. 2023

마음을 비워내는 청소

비우면서 시작하는 하루

“어머님, 양성이네요.”

코로나 해지된 지 얼마나 됐다고 애 둘이 연달아 독감이라니 나도 쉴 팔자는 아니구나

벌써부터 비어져 나오는 한숨을 막고 '어머니 고생하시겠네요'를 길게 늘어트린 주의사항을 대충 흘려듣는다. 5일 치 꼭 다 먹어야 하는 타미플루가 들은 두툼한 약봉지를 받아 들고 또 한 번의 격리생활을 시작하였다.


콜록콜록콜록

“나 열나는 거 같아”

아니 감기가 옮으려면 애들이랑 24시간 붙어있는 내가 옮아야지, 자기가 왜.

아, 나도 같이 들어 누워야 이 꼴 저 꼴 안 보는데 연신 체온계로 귀를 후벼 파본다.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에취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3명분의 기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다들 나한테 왜 이러니

한기가 들까 꼭꼭 닫아놓은 창문 때문에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농축되는 느낌이었다.

바깥에 눈이 내리는데 우리 집은 바이러스가 내리네

공기 중 바이러스가 눈처럼 내려 가구, 바닥, 이불, 옷에 쌓여 간다.

설거지가 쌓였다. 세탁할 수건도 쌓이고 바닥에 먼지도 쌓여갔다.



"얼른 학교나 가"

등교가능 서류 한 장씩 챙겨주고 일주일 늘어지게 잘 쉰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학교에 보냈다.


이 얼마만의 고요함인가, 감격스러운 마음을 딱 5초 만끽한 뒤 팔을 걷어 부쳤다.

일주일 동안 묶여 두었던 청소의 시작이다.

머리를 질끈 묶고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옷으로 갈아입는다.

커피 한잔 진하게 타마시고 전투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제 바이러스를 박살 낼 시간이다. 너네 다 죽었어


세탁기 먼지망의 먼지를 깨끗이 청소하고 밀려있던 빨래룰 돌렸다.

침대커버, 베개 커버, 수건과 내복들.

시원스레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꿉꿉한 집안 공기를 밀어내는 청량한 바람이 밀고 들어온다.


과탄산 소다와 비누세제를 물에 타고 락스를 조금 섞었다.

바닥에 물을 대중없이 뿌리고 그 위에 만들어둔 락스세제를 뿌렸다.

부옇게 일어난 거품을 박박 닦으며 세균을 닦아 내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소파 밑, 방문 뒤 구석구석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 인후

안 쓰는 수건을 반으로 자른 걸레로 바닥을 벅벅 닦는다.


빨래가 다되었다는 소리가 들린다, 부지런히 빨래를 널고 가습기에 고여있던 물을 비우고 박박 닦아 말려 놓는다.


나의 결과물들을 볼 겸 오전 내내 혹사당했던 허리를 쭉 펴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변한 게 없었다. 우습게도 정말 변한 게 없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머리카락이 없어지고 욕실에 물 때는 사라졌지만 그게 뭐,

몇 시간 동안 온몸이 부서져라 공들여 청소한 것치곤 보상이 야박했다.


청소처럼 가성비 안 나오는 일이 또 있을까

공부는 지식이 남고 운동은 근육이 이라도 남는데 청소는 해봤자 제자리, 제자리만 돼도 다행이고 반나절 생활하다 보면 더 엉망일 때도 왕왕 있다.

요령도 안 통한다. 대충 눈 속임으로 가려지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구석구석 사람 손이 안 가는 곳이 없다.

해서 티가 나는 일도 아니고 누가 잘했다고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품은 또 얼마나 드는지 하고 나면 아구구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치워봤자 그대로 인 것 같은 이 짓거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울컥 짜증이 터져 나온다.


청소하는 시간은 나에게 사색의 시간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지난 일들을 돌아본다. 마치 산책과도 같은, 때론 참선과도 같다.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물결치던 마음은 고요히 정돈되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몰랐던 질문의 해답들이 우물처럼 차오른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정리정돈 단순히 주변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리함으로써 집중력을 높일 뿐 아니라 사고력과 학습능력 그리고 자발적인 태도, 책임감, 배려 같은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내 아이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정리 습관

아휴 하기 싫어, 오늘도 툴툴 대며 청소를 한다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묵묵하게 정해진 순서대로 쓸고 닦고 치우고 정리한다. 억지로 꾸역꾸역 몸을 움직이다 보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의외로 정신을 깨우는데 커피보다 낫다.


어지럽게 꺼내져 있는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꽃아 넣으며 내 머릿속에 잡생각을 정리한다.

바닥의 먼지를 쓸고 닦으며 뿌옇게 먼지 쌓인 상념들을 닦아 낸다.

쓰레기를 버리며 쌓여있던 내 안의 걱정을 버린다.

베이킹 소다와 과탄산 소다가 세균을 얼마나 죽이는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상쾌함에는 분명 효과가 있다.


그래, 내가 개운하면 됐지

오늘도 나는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공간을 구석구석 청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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